Ⅳ.시비지심_ Wisdom_3. Risk Taking
김 부장의 별명은 '문턱주의자'다.
뭔가 결정하기 전까지 이리저리 재고 따지고 신중을 거듭하지만, 한 번 결정이 되면(문턱을 넘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행동한다. 실행 중에는 절대로 흔들리는 법이 없고, 결과 앞에서는 초연하다. 결과야 어찌 됐든 모른다는 무책임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좋은 결과 앞에서는 뒤로 물러서고 나쁜 결과는 당당히 앞에 나선다. 어떤 결과든, 그 해석과 후속 조치까지 내가 온전히 책임지겠다는 선언.
박 차장의 별명은 '이알무새(이럴 줄 알았어 무새)'다.
어떤 일이든 진행과정에서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법은 좀처럼 없지만 일의 결과에 대해서는 뒷말이 많다. 특히 그 결과가 부정적이면 목소리가 높아진다.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처음부터 안될 거 같다고 했잖아." 듣는 사람들은 어리둥절한다. 좋은 결과에도 빠지는 법이 없다.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처음부터 잘 될 거 같다고 했지?" 라며 슬쩍 젓가락을 얹는다. 역시나 듣는 사람들은 갸우뚱한다.
김 부장은 눈에 띄는 성공적인 경험도 많지만, 꽤 큰 실패도 여러 차례 맛봤다. 그래도 위아래로 신망이 높다. 김 부장을 공공연히 롤모델로 여기는 부하직원들도 상당하다. 반면 박 차장은 큰 실패 없이 무난한 실적을 쌓아왔다. 승률은 높지만 결정적 한방이 없다. 사내 평판도 썩 좋지 못하다. 한 번이라도 같이 일해본 동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과연 무슨 차이일까?
“리스크 테이킹하라”는 구호는 요란하지만 실제 기업현장에서 행동으로 옮기기 힘든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조직이 실패를 금기시하고 공개적으로 그 당사자를 제재하는 문화라면 누구도 모험을 택하지 않는다. 제한된 자원과 단기 성과 중심의 보상 구조가 결합하면, 조직은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하고 지난한 과정이 필수인 장기적 관점은 옅어진다. 개인 역시 그 환경에 순응한다.
[두려움 없는 조직]의 저자 에이미 애드먼슨은 조직의 '심리적 안전감'을 연구해 온 학자다. 에이미는 자신의 책에서 건강하고 팀십이 원활한 조직일수록 실패의 보고 빈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 바 있다. 이는 언뜻 상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 반대여야 하지 않을까? 사실은 이렇다. 실패 그 자체가 많아서라기보다 건강한 조직일수록 실패와 실패를 유발한 문제를 드러내고 공론화하는데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실패를 학습의 기회로 활용한다는 마인드까지 장착하면 조직과 개인은 동반 성장이라는 선순환에 올라탄다.
반면 건강하지 못한 조직은 작은 실수나 문제라도 숨기기 바쁘다. 실제로는 엄청난 문제를 내포하고 있지만 표면상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결국 진짜 문제는 숨겨지고 봉합된다. 적절한 조치 없이 서둘러 봉합된 문제는 반드시 더 큰 문제로 악화되고 결국 조직과 개인 모두 큰 피해를 입는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문제가 아예 없으면 좋겠지만, 온갖 종류의 인간군상이 모여 함께 일하는 기업조직에서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 무균실에서만 자란 생명체가 오히려 면역력에 취약해지는 것처럼, 크고 작은 문제가 속속 드러나고 실시간으로 보고되고 조치되는 팀, 실패도 해보고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통찰이 많은 조직이야말로 건강함의 표상임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인간의 일은 지나고 보아야 옳고 그름을 알 수 있는 판단이 태반이다. 이때 리더가 할 일은 불확실한 결과 예측에 매몰되지 않고 원칙과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나는 왜 이 역할을 맡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이 의사결정의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확정되지 않은 결과를 이유로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누군가는 반드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다. 리더는 바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이다.
문제는 제대로 된 원칙, 가치관을 명확히 갖추고 책임까지 온전히 지는 리더가 현실에서는 드물다는 점이다. 꼭 비겁한 리더가 아니라도 '좋은 결과'만 안고 가려는 건 본능에 가깝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겠다는 신중함은 좋지만, 그 신중함이 오직 제 안위를 위한 것이라면 금세 그 속셈은 들통나고 만다. 진짜 비겁한 리더들은 '선명한 결과' 뒤에 숨는데 여념이 없다. 그런데 어쩌나 마치 고개만 땅바닥에 처박고 완전히 숨었다고 착각하는 꿩처럼, 그 비루한 뒷모습은 이내 발각되고 만다. 꽤나 진부하고 클리세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혼자만 모를 뿐이다.
목표의 골디락스존을 명확히 하라
그렇다면 리스크를 감수할만한 도전적 목표란 뭘까? 고리 던지기 게임을 생각해 보자. 목표물이 너무 가까우면 재미없고 너무 멀면 포기한다. 달성확률 49~51프로 수준이면 적당하다. 두 번 실행 해서 1번 성공하는 정도면 충분한 난이도이자 실패해도 기회비용으로 간주할만하다.
리더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도전적 목표를 감행해야 하는 이유는 조직과 개인 전체의 지속적인 성장과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변화는 현재의 것, 세이프티존에서 벗어나 혼돈과 불확실성을 감내할 때 일어난다. 현재의 상태, 불합리를 그대로 두고 새로운 것을 더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반드시 이전의 고착화된 무언가가 오류를 일으키거나 새로운 무언가를 왜곡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위대한 철학자이자 심리학자로 꼽히는 쿠르트 레빈은 변화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변화는 Unfreezing(해동)→ Moving(불확실성의 감내)→ Refreezing(재동결)의 과정으로 일어난다"
해동은 기존 안전지대를 깨는 일이고, 그 자체가 리스크 테이킹이다. 불필요한 것을 버릴 줄 아는 과감함, 혼란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그런 리더의 지혜가 혁신적인 내일을 견인한다.
실패를 재정의하고 범위를 규정하라. 그리고 그 안에서 마음껏 놀게 하라
조직 핑계는 더 이상 대지 말자. 진짜 리더라면 스스로 역류를 일으킬 줄 알아야 한다. 무조건적인 복종, 현실에의 안주는 자기 자신은 물론 내 조직 전체를 고인물화한다. 내 팀만이라도 살아 숨 쉬는, 생동감 있는, 재생이 가능한 조직으로 만들고 싶다면 조직을 거스를 줄도 알아야 한다. 조직의 기조를 거스르는 일 그 자체가 리스크 테이킹이다. 그런 개별조직이 하나 둘 늘어날 때 조직전체가 변한다.
단, 모든 실패를 모두 용인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실패도 실패 나름이다. 부주의, 게으름으로 인해 생기는 '소모적 실패'와 새로운 도전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생산적 실패'. 이 둘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생산적 실패는 '장려/포상'하고 소모적 실패는 '방지/제재'한다. 그 일을 구체화하고 실행하는 게 리더의 역할이다. 생산적 실패마저 용인하지 못하는 조직이라면 차라리 미련을 버려라. 희망이 없다.
리스크 테이킹은 무모한 도박이 아니다. 충분히 숙고하고, 여러 의견을 수렴한 뒤 최종 판단에서 과감히 실행하는 능력이다. 김 부장의 ‘문턱에서 고심하되 문턱을 넘으면 책임지는’ 태도는 그 핵심을 잘 보여준다. 조직이 진정으로 살아 숨 쉬는 변화를 원한다면, 리더는 실패를 받아들이고 생산적 실패를 보호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리스크를 감수할 용기가 없다면, 자리에 연연하는 것도 미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