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투덜이들은 왜 블라인드로 튀었을까?

Ⅳ.시비지심_ Revision_1. 균형감

by 릭스leexㅡ캐리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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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차 앞 유리창을 통해 동네를 보면 늘 범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뇌과학자 프리데리케 파브리티우스는 자신의 책 [뇌를 읽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무릎을 쳤다. 그리고 이내 간신들과 그들에 둘러싸인 무능한 군주가 떠올랐다.


"전하~세상은 온통 태평의 시대이옵니다. 이게 다 전하의 성은 덕분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한가? 이 모두 경들의 충성심 덕분이오."


서로 자화자찬을 주고받는 동안 정작 궐밖 백성들의 삶은 피폐 그 자체다. 썩어 문드러진 탐관오리들은 마른 수건에도 짤 것이 있다는 듯 수탈에 여념이 없고, 국경의 위로 아래로 틈만 나면 호시탐탐 쳐들어오는 외적의 침략에 여차하면 징병으로 끌려가기 일쑤다. 당장 먹고살기 힘들어진 민초들은 나무껍질을 씹으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견디다 못한 이들은 산으로 숲으로 들어가 스스로 도적이 된다. 곳곳에 격문이 나붙고 민란이 끊이질 않지만 대궐 안만은 천하태평이다. 간신들에 의해 눈과 귀가 가린 무능한 군주는 날마다 연회를 열고 국고는 탕진된다.


지금이 조선시대는 아니지만, 기업마다 일반 구성원의 진짜 목소리에 눈 감고 귀 닫은 채 스스로를 괜찮은 경영진으로 착각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블라인드, 잡코리아 등 직장인 커뮤니티에 가보면 안다. 배설물에 가까운 회사 까기가 만연하다. 자신의 회사를 인증해야 글쓰기가 가능한 점을 감안하면 사칭이란 있을 수 없다. 물론 일부 불평분자의 폭주일 뿐이라며 그 의미를 애써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 목소리가 엄연한 내부의 시선, 적나라한 조직의 민낯임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라고 이는 전반적으로 망가진 조직의 내부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소하지 못하고 외부로 돌출되는 필연적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 구성원이 공개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통로가 원천 차단될 때, 불만은 우회로를 찾아 밖으로 새어나가기 마련이다.


아무리 뛰어난 경영자, 문제없어 보이는 조직일지라도 100% 완벽할 순 없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그렇다. 그런 인간들이 모여 만든 조직인만큼 크고 작은 문제는 반드시 생기게 마련이다. 더구나 인간의 모든 관계는 작용과 반작용으로 이루어진다.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으면 언젠가는 터진다. 숨구멍을 만들어놓거나 임계점에서 멈추지 않으면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조직이라고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상사의 오더, 동료와의 경쟁, 가십 등 수많은 종류와 형태의 pressure가 작동한다. 특별히 악한 누군가가 있어 비인간적이고 상스러운 폭언을 반복하지 않더라도 이런저런 압력은 올라가게 마련이다.


자연히 이 압력을 안전하게 빼낼 밸브가 필요하다. 조직 내에서는 익명게시판이 그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익명게시판을 건강하게 활성화하고 유지하는 기업 조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명분은 뻔하다. 지저분해진다는 것이다.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의견, 즉 악플이 싫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명분에는 사실 감추어진 속내가 있다. 그 누구의 견제와 감시도 받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다는 음흉한 마음 말이다. 익명 게시판을 필두로 누구나 마음껏 의견 개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막기에 급급하다면, 조직의 문제는 더 깊숙이 잠복하고 결국 더 큰 비용으로 되돌아온다.


인터넷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각종 커뮤니티, SNS 채널 익명 게시글의 폐해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서류와 면접으로 직접 검증한 사람들만 모인 한정된 집단내에서 익명을 걱정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모순일지도 모른다. 익명으로 언로를 열어뒀더니 정말로 배설 수준의 악플밖에 달리지 않는다면, 스스로 조직의 수준을 증명하는 꼴밖에 안 된다. 자체적으로는 자정작용이 불가능할 정도의 문제적 인간들을 검증하고 심지어 합격시킨 건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일 테니 말이다. 그들에 의해 조직 전체가 잠식되고 말았다는 선언. 그게 사실이라면 스스로의 안목을 부끄러워할 일이다.




현역 시절 한때 존경했던 D대표가 있었다. 공대출신에 종합상사 계열사에서 철강영업을 하다가 Hosptiality 계열사 임원으로 오게 되어 어리둥절하다는 첫인사가 인상 깊었던 사람. 조직문화 업무를 하며 간접적으로 그를 지켜볼 수 있었고 마케팅팀으로 6개월간 유배를 간 기간 동안에는 직속 임원으로 모시기도 했는데 이후 전무, 대표까지 승진하며 무려 8년의 인연이 이어졌다. 그 결과 그 이전 임원들과는 다르게 진정성이 있어 보였다.


D대표는 매우 부지런한 사람이기도 했다. 업장 곳곳을 수시로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스몰톡 하기를 좋아했다. 특이한 점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것이었다. D대표는 어느 날 미팅에서 그 수첩의 정체에 대해 말해주었다.


"이거 너희들 관찰한 기록이야."


얼핏 살펴본 수첩은 정말 구성원의 이름과 날짜 그날의 인상이 담긴 기록들이 빼곡했다. 그는 그 내용을 토대로 대표 간담회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화의 재료로 활용해 구성원들로부터 평판이 나쁘지 않았다. 나 역시 조직문화 책임자로서 D대표와 직접 소통하는 일이 잦았다. 직속상사는 기업문화실 임원이었지만 조직 내 문제점, 구성원의 목소리를 전할 때는 장문의 메일을 정리해 주기적으로 직접 D 대표에게 송부했고 그는 그때마다 나를 불러 피드백을 주거나 여의치 않을 때는 회신메일을 보내 응답하곤 했다.


D대표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대표를 맡고 2년이 지난 후부터였다.


"상무를 건너뛰고 이렇게 다이렉트로 소통하는 거 좀 불편한데?"


그 피드백을 시작으로 D대표는 구성원의 목소리를 듣지 않기 시작했다. 현장을 도는 발걸음도 뜸해졌다. 익명 게시판도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매번 똑같은 불평불만, 일부 불순분자의 의도를 가진 분탕질일 뿐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D대표는 소위 '작전'을 잘 짜는 노무 전문가, 오너의 오른팔격인 임원과 밀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활발히 운영되던 익명게시판은 전격 폐쇄됐고 그룹 차원의 컬처서베이에서 3년 연속 꼴찌를 도맡아 했다. D대표는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신사업 프로젝트를 기획하지만, 수년째 검토만 거듭하며 수십억 비용만 날린다. 결국 조직은 전반적으로 망가지고 계획한 프로젝트는 첫 삽을 뜨지 못한 채 좌초되고 만다. 정성스레 구성원의 이야기를 수첩에 옮겨 적던 D대표는 불통의 이미지만을 남긴 채 초라한 모습으로 회사를 떠났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 라고 외치게 하라

구성원의 객관적 시각을 확인하려 할 때, 익명 게시판만큼 확실하고 직접적인 채널은 없다. 구린 구석이 많은 경영진 조직일수록 폐쇄적이 되고 익명의 힘을 두려워한다. 일부 수준 낮은 악플성 댓글들을 콕 찍어 익명 게시판의 폐해를 침소봉대한다.


대신 구성원의 의견을 듣는다며 '사장님과 점심시간'같은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조직문화팀은 예상질문지를 이미 뽑아놓고 비서실에 전달한다. 참석자들은 대본을 미리 받고 누가 어떤 질문을 할지 분배받는다. 참석자들 역시 공들여 선발한다. 말 잘 듣고 소위 모범생에 가까운 이들이다. 이들은 경직된 자세로 오늘의 메인 호스트를 기다린다. 근엄한 표정으로 사장님이 등장하면 일제히 일어서서 깍듯이 인사를 하고 식사가 시작된다. 참석자들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상태로 사장님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는다.


질문의 내용들도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고 들었을때 딱히 문제 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얻을 것도 없는, 왜 하는지 모를 겉도는 이야기들 뿐. 체력이 좋으신데 어떻게 체력관리를 하시느냐, 걷고 운동하고 많이 안먹는다. 충분히 예상되고 아~ 이건 좀 대단하네 라고 할 만한 것도 없는 그런 답변. 그게 정말 궁금했어? 연말 술자리, 주량이 얼마인지 어떤 종류의 술을 좋아하는지 따위, 알게 되도 세상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할 질문과 대답의 연속. 구성원의 이야기를 듣고 조직의 문제가 뭔지 파악하고 진짜 구성원들이 고민하는 지점이 어딘지를 듣고자 하는 의도도 느껴지지 않고 마치 맹물처럼 냄새도, 색깔도, 취향도 느껴지지 않는 자리일 뿐이라면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 자리 누구도 그 시간을 통해 얻는 게 하나도 없다.


이런 형식의 짜고 치는 약속 대련이야 말로 최악이다.


가능한 모든 방향으로 언로를 열어야 한다

위성사진으로 전체를 훑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직접 찍은 사진의 조합처럼, 큰 그림과 디테일을 균형 있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만 편중된 리더는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다. 전투에서는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부분최적화의 위험성. 큰 그림만 보면 명분의 늪에 빠지고 디테일만 보면 자잘한 수단에 갇힌다. 팀원처럼 일하려는 임원, 임원처럼 일하려는 팀원 모두 문제다.


지혜로운 리더는 모든 방향으로 오가는 언로를 사랑한다. 하나라도 놓치는 게 있을까? 고민하고 더 듣기 위해 밤잠을 설친다. 모자란 리더는 '내 귀에 캔디' 달콤한 말만을 골라 듣는다. 마치 고농축 과당이 체내 혈당을 높여 혈관을 딱딱하게 만들고 경화로 이어져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과정처럼, 듣기 좋은 말일수록 악마의 속삭임이라는 진실을 곧잘 잊는다.


미리 준비된 대본과 경직된 미소만 오가는 식당 테이블은, 범죄 없는 거리만 비추는 경찰차의 앞 유리창과 다를 바 없다. 그 유리창을 깨고 나오지 않는 한, 진정한 시비지심을 갖춘 리더십은 요원하다. 시비지심은 옳고 그름을 가르는 재판관의 마음이 아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불편하더라도 봐야 할 것을 보려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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