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에게만 관대한 리더는 어떻게 사회적 난쟁이가 되는가

Ⅱ.수오지심_ Integrity_ 3. 이중잣대

by 릭스leexㅡ캐리컬처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누구나 자기 중심성이 있다. 그 편차가 크고 작을 뿐. 대체로 사람은 스스로에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하다. 그게 자연스러운 섭리다. 나를 보는 IQ는 50, 남을 보는 IQ는 5만이란 말도 있듯, 나의 단점은 잘 못 보고 상대의 단점은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이런 성향은 나 자신뿐 아니라 내 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확대된다. 내편인 누군가 잘못을 하면 너그럽게 봐주고 남의 편의 잘못이면 가혹해지는 이유.


당연히 과하면 문제가 된다. 특히 직장생활에서 내편 네 편을 가르는 과도한 습성은 공동체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불안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높은 자리에 올라 권한과 책임의 무게가 커질수록 나 스스로와 내편에게는 관대하고 타인과 남의 편(그렇게 스스로 선을 그은)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한 이중잣대에 빠진 이들을 심심찮게 목격하게 된다.


2017년,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픽사>가 발칵 뒤집혔다. 창업주역이자 디즈니/픽사 CCO(Chief Creative Officer)인 존 라세터 John Lasseter의 성추문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당시 픽사 직원들은 라세터가 수년간 부적절한 신체 접촉(허그, 키스 시도, 신체 접촉 등)을 해왔다는 내부 고발을 감행했고 라세터는 고의는 아니었지만 신체 접촉 사실은 인정하며 회사의 첫 번째 조치인 6개월 휴직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라세터의 성추문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2018년 모기업 디즈니의 CEO 밥 아이거는 존 라세터의 해고를 전격 발표하며 업계에 충격을 준다.


존라세터가 누군가? [토이스토리] [카] 시리즈등을 대히트시키며 오늘날의 픽사를 있게한 전설적 애니메이터, 픽사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이라고 불렸던 핵심 중 핵심이었다. 설마 존을 해고한다고? 그 누구도 디즈니가 라세터를 전격 해고할 것이라고는 예상 못했을 것이다.


당시 밥 아이거는 존 라세터 해고 사유에 대해 단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게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할까? 물론 내부적으로 존 라세터의 해고와 그 부재에 대해 이런저런 계산도 있었을지 모른다. 존 라세터가 회사의 핵심 역량인 크리에이티브의 상징적 인물이기에 그가 벌인 행위가 역설적으로 조직 내 크리에이티브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는 본질적 우려, 아무리 회사의 핵심 자원이라도 오히려 더 가혹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단호한 액션을 보여줘야 회사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장기적 판단 따위.


그 속내가 어떻든 디즈니와 밥 아이거의 존 라세터 해고 조치는, 회사와 구성원에 해악을 끼친다면 제 아무리 능력있고 비중있는 인사라도 더 이상 함께 할 수없다는 단호함을 보여준 사이다 조치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솜방망이 조치를 반복하며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우리 사회 곳곳의 부조리가 부끄러워지는 순간.




내가 맡은 조직문화 파트가 인사팀에 세 들어 살던 시절, 나는 인사팀의 편파적 평가를 직접 목격한 바 있다. 인사팀이 각 부서에 공지한 팀별 평가등급 배분 기준은 S:5 A:15 B:70 C:10 으로 팀별 배분 비율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S와 A비율(총합 20)이 지나치게 타이트하다는 현업의 불만이 있었지만 회사와 인사팀의 입장은 완고했고 각 팀은 어떻게든 이 기준을 지켜서 그해 평가를 완료했다.


문제는 평가 주관 부서인 인사팀의 평가결과였다. 내 경우 조직문화 파트를 이끌고 있었지만 공식적인 소속은 인사팀이었기에 평가 시스템에 접근할 권한이 있었고 그곳에서 확인한 인사팀의 평가 결과는 한마디로 놀라웠다. 인사팀 인원들의 평가는 특혜 그 자체였다. A이상이 무려 80% 에 달했다. 어떻게 이럴수가?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제도를 운영하는 주관부서인 만큼 적어도 그 기준만은 스스로 명확히 지킬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오히려 제팀에는 더 엄격하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일말의 기대는 정말이지 우스운 착각이었다.


제도의 운영주체로서 정보의 독점이라는 이점을 이용해 그 당사자가 특혜를 몰아 받는 행위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만에 하나 외부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그땐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그 답은 심플했다. 절대 알려질 리 없다. 오히려 고생하는 자신들에게 주는 당연한 권리라고까지 생각하는 듯 했다.


그 이듬해 조직문화 파트는 인사팀에서 떨어져 나왔기에 그 이전과 이후의 평가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미 특혜의 맛을 알아버린 그들이 그 달콤한 유혹을 스스로 뿌리칠 자정작용을 했을까? 라는 합리적 의심. 신뢰는 깨끗한 종이와 같아서 한번 구겨지면 좀처럼 원상복귀가 힘든 법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LMX(Leader–Member Exchange)는 내 사람(In-group)과 남의 사람(Out-group)을 나누는 리더의 습성을 지적하는 리더십 이론이다. 이는 조직 내에서 인간의 본능적인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습성이 리더라는 위치에 서는 순간 훨씬 더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권한이 커질수록 리더는 자신도 모르게 내 편이라고 여긴 사람에게는 너그러워지고, 반대로 남의 편이라고 구분 지은 사람에게는 가혹해진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내편에는 '불가피한 실수', 남의 편에는 '치명적 잘못'으로 재단하는 식이다.


리더라면 늘 이 본능을 경계해야 한다. '혹시 내가 내 편의 잘못은 대충 눈감고 있지 않은가?', '내가 평가하는 잣대가 특정 사람에게만 관대하지는 않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야 한다. 그 작은 기울어짐이 쌓이면 무의식적인 편향이 일반화되고, 결국 객관성을 잃게 된다. 리더의 자리 그 자체가 지난 궤적의 성공을 증명하는 증거로 작용하므로 어느 순간 내 판단과 생각이 다 맞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리더는 늘 구성원의 눈길을 받는다. 광장에 세워진 시계탑과 같다. 늘 같은 시간에 종이 울려야 사람들은 광장의 시계탑에 의존한다. 리더가 내로남불의 함정에 제멋대로 시간을 조절해 버리는 순간, 사람들은 더 이상 광장의 시계탑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리더십은 그렇게 서서히 무너진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을 늘 상기하라.


읍참마속, 더 큰 대의를 위해 단호하라

리더의 자리는 성공의 결과이자 동시에 시험대다. 자리에 오르는 순간, 리더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판단에 더 큰 확신을 갖게 되고, 권력이 주는 힘에 익숙해지며, 점차 비판을 귀찮아하게 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 위험하다. 진정한 리더십은 힘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절제하는 데서 드러난다.


읍참마속(泣斬馬謖) 제갈량이 울며 마속의 목을 베었던 고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삼국지의 제갈량은 전투 패배 책임을 물어 마속의 목을 벤다. 그토록 아끼던 부하였지만, 큰 잘못 앞에서는 사사로운 정을 앞세우지 않고 나라를 위한 대의를 선택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단호해야 한다는 진리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순간의 사적 감정이 행동으로 이어짐을 막는다. 내로남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내 사람만 감싸는 순간, 리더십의 근간인 신뢰는 송두리째 흔들린다는 사실만은 명확하다. 주변은 금세 그 사실을 알아차린다. “결국 자기 편만 챙긴다”라는 인식이 자리 잡는 순간, 조직은 갈라지고 무너진다. 리더의 진짜 힘은 자기 사람을 무조건 감싸는 편향이 아니라, 오히려 가혹할 만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용기에서 나온다. 어렵지만, 그 순간 리더의 무게가 증명된다.


사회적 난쟁이의 역설을 기억하라

편법과 특혜로 쌓은 성취는 생명력이 짧다. 나 자신의 실력이 아닌 꼼수로 매사에 임하면 결국 그 손해는 자신에게 향한다. 성장하고 싶다면 안락한 보호막 안에서 특혜를 누리려 하지 말고, 오히려 스스로를 더 가혹한 환경에 내 던질 줄 알아야 한다. 압박과 제약, 불리한 조건 속에서 몸부림치며 뚫고 나아갈 때 비로소 진짜 역량이 길러진다. 그것은 단순한 성과 이상의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한 훈련이 결국 리더로서의 신뢰를 구축하고, 그 신뢰가 장기적으로 조직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중요한 고비마다 타인의 도움, 정치, 끈 등 외부 도움을 받는 습관이 고착화되면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의 힘으로는 눈앞의 장애물 조차 제 발로 넘을 수 없는 '사회적 난쟁'이로 전락하고 만다.


자신에겐 관대하고 타인에 엄격한 내로남불이야말로 결국 자신을 왜소하게 만드는 원흉이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더 높은 기준을 부여하고, 불편한 길만을 일부러 선택해 걸어라. 발을 땅에 붙이고도 하늘을 볼 수 있는 진짜 거인은 그 과정에서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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