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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범수 Nov 15. 2015

#.2 까미노의 시작, 생장에 도착

나와 아버지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35일의 여정

  지난 밤 일찍 잠에 든 덕에 생장 드 피드포르로 향하는 날 아침인 오늘 일찍 눈을 뜰 수 있었다. 지난 밤 너무 피곤해 준비를 하나도 못해놓고 잤기 때문에 이른 아침 눈을 떴음에도 다시 짐을 싸는 손길은 분주했다. 5시부터 씻고 짐을 싸고 시작했는데 다 끝내놓고 보니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기차 시각은 10시 15분 아침을 먹기에도 애매한 시각이라 아버지는 선식으로 끼니를 해결하시고 나는 일단 기차역에서 간단히 해결할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비록 겨우 이틀 머물렀던 파리 숙소지만 마치 잠시나마 집처럼 느껴졌기에 가는 발걸음 붙잡고 몇 장의 사진을 남기고 출발했다. 파리의 아침은 역시나 아름답다. 5월이었지만 날씨는 쌀쌀했다. 하지만 파리의 사람들은 덜덜 떨면서도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셨고 낭만을 즐기는 듯 했다. 



  가는 길에 약국에서 비누 하나를 구입하고 지하철에 탑승하니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몽파르나스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파리의 지하철은 신기하다! 10초만에 다음 역에 도착하는 경우도 있다는거!) 역에서 기차 시간을 확인 하고 파니니 하나를 구입을 하고나서도 40분 정도 시간이 남아있었다. 서두른 보람이 있다. 다행히 몽파르나스 역에서는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어 덕분에 40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엄마와 누나에게 아빠와 나의 안부를 전하고 여자친구에게 파리에서의 행복한 추억을 보내느라 시간이 어떻게 간지도 몰랐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기차 시간이다. 아빠와 나는 서둘러 승강장으로 향했다. 승강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우리와 같이 트레킹 복장을 한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호,,,혹시! 저 사람들도 순례자들인가! 괜히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드디어 바욘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프랑스길 순례 시작지점인 생 장 피드포르로 가기위해선 바욘까지 이동한 후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순례자의 길 프랑스 길이란?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란 성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걸어가는 순례의 길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의 목적지를 두고 그 도시에 도달하는 다양한 길이 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생장에서 시작하는'프랑스길' 스페인 북부 해안가를 따라 걷는 '북의 길' 포르투갈에서 시작해 스페인으로 넘어오는 '포르투갈 길'등이 있다. 이런 코스들이 있지만 순례의 길이라는 것에 정해진 길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는 자기가 사는 나라(예를들면 네덜란드)에서 여기까지 걸어온 사람들도 있었다. 어쨌든 그 중 프랑스 길은 순례자의 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길로 800km의 거리를 걸어야 하는 길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이기 때문에 알베르게나 쉼터등이 잘 갖춰져 있어 순례를 처음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코스이다. 


  기차에 타고나니 이제 본격 순례 시작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바욘까지 다섯시간정도의 이동시간, 이동 간 바라본 프랑스의 하늘은 역시나 아름다운 구름이 가득했다. 드디어 까미노의 길로 향하는 설레는 나의 마음처럼 부풀어 있었다. 


  우리는 점심시간을 기차안에서 보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아무 준비를 하지 못한 탓에 홍삼캔디로 당을 보충하며 주린 배를 달래야 했다. 나는 아버지가 또 당뇨가 있으셔서 가는내내 아빠 당이 떨어지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부여잡아야 했다.(아빠 미안 ㅜ) 그렇게 기차는 프랑스를 관통해 달렸고 긴 시간 끝에 드디어 바욘에 도착했다. 바욘에서 생장으로 향하는 버스표는 쉽게 살 수 있었다. 여기서 부터는 비슷한 차림의 순례자들이 많았기에 그들을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역시 따라가는게 최고!!) 우리는 티켓을 사고 버스시간까지 3시간 정도가 남았기에 바욘 시내를 구경하기로 했다. 일단 우리는 프랑스에 왔으니 파리 바게트를 먹어야지!(파리는 아니지만..) 빵집에 들어갔고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바게트를 구매할 수 있었다. 이때는 몰랐다. 내가 30일동안 먹게될 이 지긋지긋한 바게트의 무서움을... 바욘은 생각보다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나에겐 그저 생장으로 향하기전 마을에 불과 했지만 막상 도착해본 바욘의 거리는 예뻤고 강가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바욘 저 멀리 높이 솟은 성당이 보였고 우리는 지도도 없이 높이 솟은 성당을 찾아 시내를 이리저리 비집고 들어갔다. 성당에 도착했다. 성당에서 우린 순례 시작 전 행복한 순례를 기원하기 위해 적은 돈을 내고 우리 둘의 초를 켤 수 있었다. 아빠는 초 하나를 더 키며 가족의 행복을 기원했다. 바욘의 성당은 고풍스러웠고 조용했다.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오는길 바욘 동네 빵집의 풍미에 홀려 에클레어를 하나 사먹고는 서둘러 돌아왔다. 어느새 시간이 다 되어간다. 버스 터미널에 돌아가니 모든 순례자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첫 번째 한국인을 만날 수 있었다. 조성용이라는 친구였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혼자 온듯 하여 슬쩍 말을 걸어 보았다. “안녕하세요?” 성용이는 뭔가 말을 걸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시죠?” 다부지고 남자다운 외모를 가진 성용이는 신학대학에 다니던 친구로 종교적인 이유로 산티아고 걷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군대를 제대하고 직접 돈을 모아 여행을 떠나왔다고 한다. 그의 첫인상은 바른 생활 청년이었다.(또 만나요~) 우리는 가벼운 첫만남을 뒤로 하고 시간에 맞춰 도착한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러 간 우리는 짐을 싣는 곳에서 부터 또다른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바로 프랑스인 라파엘 이었다. 나는 이곳에 떠나오기전에 많은 후기로 부터 외국인들과 정말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고 친해질 수 있다는 좋은 후기를 보고 왔다. 그래서 나또한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최대한 외국인들에게 다가가려 노력해야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역시나 생장으로 가는 길에서부터 인연의 기회는 찾아왔다. 내가 버스에 도착해 짐을 싣고 있는데 내 뒤에 붉은 후리스를 입은 외국 여자가 짐 싣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산티아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전에 외국인과 빨리 친해져야 겠다는 생각에 말을 걸기로 다짐했다. 굉장히 떨리는 순간이었다. 여행을 떠나오기전 4개월 동안 토플 공부를 하고 그와 함께 2개월 동안 전화영어를 했다. 나의 모든 지식을 총 동원해 꺼낸말은 바로  “Hi! Where are you from?" 오 마이 갓, 내가 들어도 오그라든다 뭔가 이상하게 꼬여버린 발음에 자신없는 목소리.. 망했구나 생각했다. 라파엘은 잠시 고민하는 듯 멈칫하더니 대답했다. 

”Um.. I'm from France..?" 나는 생각했다. 이 여자가 왜 이렇게 멈칫멈칫하지? 생각해보니 아직 여기가 프랑스 아닌가, 그래서 멈칫 했겠구나. 자기네 나라에서 외국인이 프랑스 사람에게 너는 어느 나라에서 왔니? 라고 물어보는 격이 아닌가.(이런!!!!!!!!!!!) 나는 조금 부끄러워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I'm from Korea ah! South Korea..!  HAHA” 그녀는 나의 대답을 들으며 짐칸에 짐을 실었고 그 사이 나는 먼저 버스에 올랐다. 부끄럽다 부끄러워, 부끄러움을 품에 안은채 버스는 드디어 생장으로 향했다.     


생 장 드 피드포르!


  생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린 모든 순례자들은 나처럼 감회가 새로운지 생장을 한번씩 둘러보며 미소를 지어보이곤 했다. 그러곤 하나 둘씩 마을 쪽으로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나도 뭐 아무 정보가 없었기에 아빠와 함께 마을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뒷모습을 좇아 마을로 향했다. 마을에 도착해 순례자 사무소로 향하는 길에 본 생장 드 피드포르는 작고 아담했다. 과하지 덜하지도 않는 곳, 아름다운 순례가 시작되기에 적합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자 사무실은 마침 저녁식사 시간이었는지 문이 닫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예비 순례자들이 사무실 앞으로 모여 기다리기 시작했다. 새로이 순례를 시작하려는 순례자들이 옹기종기 모여들기 시작하자 나는 아까의 부끄러움을 뒤로 한채 신나서 그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이탈리아인 알베르토였다. 우리는 밝게 인사했지만 그의 꼬부라진 이탈리아 영어 발음 때문에 많은 말을 알아듣지 못해 아쉬웠다. 다음으로 만난 이는 벨기에 후베르토 할아버지! 자전거 복을 늠름하게 입고 있는 백발의 할아버지였다. 나는 그에게 까미노를 해봤는지 물었고 그는 이번이 여섯 번째 까미노 종주라 대답했다. 그는 젊었을 땐 자기도 걸어서 순례를 마쳤지만 이제 늙어서 자전거로 순례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후베르토 할아버지는 매력적인 누런 덧니를 드러내며 그의 6번째 까미노를 놀라워하는 동양인 청년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선물해 주었다. 

셋 중 가운데가 후베르토! 그와 친구들

  다시 자전거를 손질하려는 후베르토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나는 바욘에서 만난 라파엘을 순례자 사무소 앞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붉은색 후리스를 입고 있었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살짝 위쪽 언덕 벤치에 혼자 분위기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녀가 혼자있는 것을 보고 다가간 나에게 그녀는 파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라파엘이 파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는 순간 산티아고의 햇볕을 쓸어 모은 듯 정말 화사한 웃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첫날 라파엘이라는 프랑스 여인을 만났고. 산티아고 내내 가장 친한 친구가 되는 라파엘이라는 인연을 얻었다. 라파엘과는 처음 만난 거였지만 굉장히 대화가 잘 통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라파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남은 시간을 보냈고 그러다보니 순례자 사무소가 문을 열었다. 

  북적이는 사무소 안에서 순례자 여권을 각 2유로씩 주고 사고 기부금을 내고 가리비를 받았다. 



순례자 여권은 각 마을을 다니며 스템프를 모을 수 있는 종이 이며 이 여권이 있으면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에서 묵을 수 있다. 가리비는 순례자의 상징으로 모든 순례자들이 가리비를 하나씩 가방에 달고 다닌다.


정말 이제 시작이었다. 이제 오늘 여기서 묵고 다음날 출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작이라는 감회를 느끼기도 전에 문제가 발생했다. 알베르게 전쟁이었다. 우리가 조금 늦게 도착한 탓에 남은 알베르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순례자 사무소 직원은 여기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아 주겠다고 했다. 몇 한국인은 그렇게 하길 원했지만, 나는 생장에서 순례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이 주변에 알베르게를 잡겠다고 말하곤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막상 첫시작이라 알베르게를 알아본다는 것 자체도 생소 했고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때 내게 도움을 준 것 또한 라파엘이었다. 라파엘이 자신의 숙소에 빈 공간이 있을 것이라며 25번 숙소를 찾아가라 일러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순례자 사무소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은 25번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갔다. 알베르게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알베르게 데스크에 계신 아주머니가 있기에 방이 있나 물었다. 아주머니는 딱 두 자리가 남았다며 활짝 웃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주머니는 한국에서 왔냐며 내년에 제주 올레길에 갈 거라며 등록이 진행되는 내내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이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일인당 22유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싼 알베르게 가격 이었지만 첫날이기도 하고, 더 이상 찾아보기도 힘들겠다는 마음으로 과감히 지출하기로 결정했다. 생각보다 방은 깔끔했고 나무 향이 가득했다. 우리는 알베르게에 짐을 풀어 놓자마자 긴 여정에 너무 배가 고팠기에 우리는 바로 밥은 먹으러 길을 나섰다. 나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어느 한국인이 알베르게로 들어오기에 너무 반가워 순간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때 만난이가 바로 까미노 내내 큰 힘이 되어준 친근한 형, 해창이형이였다. 나는 급작스레 같이 밥을 먹으러 가지 않겠냐 물었고 해창이형은 흔쾌히 승낙했다. 우리는 10분정도 걸어나가 생장의 분위기 좋은 까페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양고기 스테이크, 형과 아빠는 비프 스테이크를 시키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형은 이미 오랜 시간 유럽 여행을 한 후 마지막 여정으로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걸으러 온 것이라 하였다. 우리는 해창의 형의 지난 여행이야기와 우리가 내일부터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시간은 짧았지만 유럽의 해는 길었다. 많은 일을 하고 밥 까지 먹은 늦은 10시가 다되어서야 기웃기웃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숙소가 닫는 시간은 10시였다. 우리는 9시 50분이 다 되어 까페를 나왔다. 


  레드 와인 한잔씩 가볍게 걸친 우리는 생장의 가녀린 황혼을 뒤로 하고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내일은 드디어 걷는다 두렵기도 설레기도 하다. 알베르게엔 은은한 나무향이 풍긴다. 정말 기분 좋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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