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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범수 Nov 13. 2015

#.1 파리 도착, 설렘 시작

나와 아버지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35일의 여정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종교의 길이지만 꽤나 오랜시간동안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순례자]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길이다. 소설이 출간된 이후 산티아고 길을 찾는 사람들이 몇배로 늘었고 그에 따라 산티아고 길도 사람들이 걷기좋은 길로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기사로 보고 글로만 접하게 되는 산티아고 길, 그 길을 내가 걷게 되었다. 내가 길을 걸은 기간은 총 28일 동반자는 나의 아버지였다. 유럽 첫 도착지 파리에서의 이틀 산티아고 길에서의 30일 그리고 마드리드에서의 사흘 총 35일 간의 청춘 조범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한다.

  파리로 향하는 내내 사실 기대감보다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출발전부터 들은 파리의 괴담들 때문일까. 파리에서는 네가 아무리 조심해도 너의 핸드폰은 이미 집시의 손에 있을거다. 카메라는 본체를 들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카메라 선을 끊어가 버릴 거다 등등 의 괴담들로 나는 소매치기와 절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가득차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리행 tgv 안에서도 나는 편히 잠을 잘수 가 없었다. 혹여나 누가 내가 잠든 사이 가방을 훔쳐 달아날까하는 걱정에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잠을 참을겸 파리에 대한 설렘을 불어 넣을겸 미리 태블릿에 넣어 왔던 영화를 감상하기로 했다. <미드나잇 인 파리> 파리로 출발하기전 어떤 친구가 파리의 감성을 제대로 느끼고 싶으면 꼭 보고가라고 추천해 주었던 영화이다. 실제로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이 감성에 죽고 못사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파리의 감성을 미리 느끼며 파리로 점점 다가서고 있었다. 어느새 오후 9시50분 우리는 파리 리옹역에 발을 내렸다. 언제나 처럼 바짝 긴장 태새, 흑인 형님들이 보일때마다 나는 긴장의 끈을 더욱 조였다(실제로 정말 무섭게 생기셨었다.) 우리는 다행히 지하철표를 역무원에게 쉽게 구입할 수 있었고 우리 숙소가 있는 역까지 생각보다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파리 지하철의 모습은 10년전 우리나라 지하철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역무원에게 가서 표를 사고 표를 넣고 빼는 기계 스크린 도어가 없는 음습한 지하의 모습이었다. Boissere 역에 도착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숙소 옆 골목으로는 에펠탑이 살짝 보이는 괜찮은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숙소에 들어가 주인에게 전화해 이것저것 물어보고는 난방을 틀고 허기진 배를 부여 잡고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부터 가져온 라면이 귀찮기도 했고 또 언제 이렇게 끓여 먹을까 싶기도 해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긴 여정끝에 들어온 첫 숙소라 그럴까, 시차적인 문제고 뭐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에 들었다.    


  파리 이틀째의 아침이 밝았다. 시차적응 없이 일찍 잠에 든 까닭일까, 아침 6시가 되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아빠는 물론 그 전부터 일어나 글을 쓰고 계셨다. 나도 다시 잠이 오지 않는 틈을 타서 우리가 파리에 있을 수 있는 오늘 단 하루를 어떻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 와이파이가 안되는 숙소였기에 태블릿에E-book으로 담아온 파리 관련 책과 지도를 참고해서 하루 계획을 짰다. 나의 계획은 이러했다.    


에펠탑-사요궁-개선문-샹젤리제 거리-튀러공원-루브르 박물관-오르세 미술관(관람)-노틀담 성당-생미셀 광장에서 저녁    


  사실 하루만에 돌기는 굉장히 많은 일정이었다. 하지만 파리의 아름다움을 될 수 있는 한 담아 가고 싶은 나의 욕심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지 않았다. 원래 계획은 어제 너무 고생을 했으니 충분히 쉬고 나가려했으나 이른 아침 말똥말똥 깨어버린 우리의 정신은 우리를 이른 시간, 파리의 출근 시간에 우리를 거리로 내보냈다. 우리는 그렇게 에펠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파리의 아침은 비현실적이었다. 

직장으로 출근 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의 화보를 찍고있는 듯했고 골목 두개를 끼고 있는 중세식 빌딩은 이 도시의 분위기를 사로잡았다. 에펠탑을 보러가는 일상의 길조차 아름다운 이 도시는 대체 무엇일까.

 

  에펠탑이다! 

부루마블속 랜드마크가 아닌 헐리웃 영화속 에펠탑이 아닌 진짜 에펠탑이 내 눈 앞에 있다. 에펠탑을 실제로 본 순간은 벅찬 감동으로 가득했다. 진짜 너무 뻔한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왜 에펠탑을 프랑스의 상징으로 하는지 왜 에펠탑의 경치를 사람들이 손에 꼽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에펠탑은 웅장함과 섬세함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내가 이제껏 본 탑중에 가장 크다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높게 솟은 에펠탑은 그 존재 만으로도 나를 압도 했다. 하지만 그 거대한 탑이 품은 섬세한 철골 구조는 에펠탑의 셀 수 없는 아름다움을 조형해내고 있었다.

  앞에서 내가 에펠탑이 파리를 상징한다고 말을 했는데, 이러한 점에서 에펠탑과 파리는 닮아있다. 파리는 많은 것을 품은 거대한 도시 이다. 하지만 그 안에 존재하는 섬세한 아름다움들은 파리를 위대한 도시로 만들어 준다. 우리는 에펠탑 주변에서 사진을 찍으며 햇빛과 파란하늘과 그리고 조각 구름을 즐겼다. 또 하나 느낀점은 파리는 정말 구름이 아름답다. 파란하늘에 잘뭉쳐진 구름 몇점은 여행자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에펠탑에 걸친 구름은 에펠탑을 더욱아름답게 만들었고 개선문 위에 뜬 구름은 개선문을 더욱 웅장하게 만들었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프랑스를 지키고 있는 수많은 조각들또한 아름다운 구름에서 온 것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까지 해본다.


  에펠탑에서 파란 하늘과 구름과 함께 사진을 찍은 후 우리는 사요 궁을 지나 개선문으로 향했다. 개선문으로 향하는 내내 에펠탑의 광경을 놓지 못하고 계속 뒤를 돌며 사진 찍기를 원하던 아버지 때문에 애를 먹기는 했지만, 우리는 길을 잘잡아 개선문까지 수월히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역경은 개선문에서 부터 시작이었다. 개선문 위에서의 파리 경치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개선문을 한 번 둘러보곤 개선문 위로 올라가는 티켓을 사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 순간 신의 장난이 벌어졌다. 맑았던 하늘에서 엄청난 우박이 쏟아 지기 시작한 것이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파리를 즐기려던 나의 머릿속이 하얘지던 순간이었다. 우산도 없었으며 날이 추워 맞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아빠가 감기에라도 걸리면 어쩌나 노심조차 옷가게부터 찾아 긴팔티를 사야하나 생각했다. 그런데 거기서 옷가게가 어딨줄 어떻게 알며 옷가게 까지는 또 어떻게 가는가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집으로 돌아가 있는 옷과 팔토시를 껴입고 판초우의를 둘러쓰고 나오기로 했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로 이동해 숙소로 갔다. 우리는 숙소에 들어가서 우선 찬 우박에 언 몸을 녹였다. 그리고 있는대로 옷을 껴입고 토시도 하고 판초우의를 챙겼다. 그리고 이제 비가 오니 쓸일이 없을 거 같아 선글라스와 카메라도 내려놓고 숙소를 출발했다. 하지만 여기서 신은 다시 한번 우리를 농락했다. 언제 우박이 쳤냐는 듯 저 차림새는 뭐냐는 듯 비웃는 파리의 강한 햇볕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헛웃음 밖에 안나왔다. 그래도 다시 날이 밝아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개선문으로 향했고 우리는 개선문 꼭대기로 올라 갈 수 있었다. 파리의 전경은 취리히의 그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취리히의 무게감과는 다른 무게감을 취하고 있었다. 지붕은 온통 옅은 회색을 띄고 있었고 그것은 회색 대지를 이루고 있었다. 그 사이 우뚝 서있는 에펠탑은 어찌보면 기형적이었고 한켠에 몰려 있는 신형 빌딩들은 다른 공간을 암시하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내가 눈을 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박의 아픔을 모두 잊은 듯 파리의 공간 속에 잠겼다. 개선문을 내려온 후 우리는 샹젤리제 거리를 걸었다. 내가 어리적 오 샹젤리제를 부르며 상상했던 샹젤리제의 상큼함은 없었지만 나름 기분좋은 거리였다. 그곳에서 중동 전통 샌드위치라는 팔라펠을 하나씩 들고 점심 끼니를 해결했다.

모든 것은 완벽했지만 문제는 내 체력이었다. 평소 딱히 운동을 열심히 한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25년을 살며 튼튼한 체력을 보유했다 자신하면 살아왔다. 그런데 왠걸 오늘하루 우여곡절이 있어서 그럴까 루브르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후들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루브르 앞 튀러 공원쯤 도착했을땐 더이상 걸을수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고된 나의 의지와는 반대로 아빠는 너무 멀쩡한 것이 문제였다. 환갑이 한참넘은 아저씨가 왜이리 정정한지 나의 휴식은 아빠의 건강함에 다시 일어나 걸어야만 했다. 사실 우리는 루브르에 많은 시간을 들일 수 없었기에 루브르 앞 부분만 보고 다시 오르세로 이동해야했다. 짧은 시간 루브르에 방문했지만 어마어마한 규모의 박물관을 보고 나니 뭔가 새삼 대단한 걸 보고 난 느낌이었다.

  우린 세느강을 따라 오르세로 이동했다. 오늘 루브르와 오르세 둘 중 하나의 관람을 선택해야 했는데 나의 선택은 오르세였다. 딱히 내가 미술을 전공한 것도 미술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유일하게 관심있게 좋아하는 화가인 '마네'의 올랭피아가 전시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올랭피아는 내 지난 학기 서양사의 사적이해 수업에서 다루었던 작품이었는데, 나는 그 당시 그 작품에 그려진 여성에게 홀딱 반했었다.이 올랭피아라는 작품이 미술사에 주었던 충격만큼 나에게도 큰 충격을 선사해주었다. 특히 서양 미술에 관심과 이해가 전무했던 나에게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을 알게 해준 작품이었다. 오르세 미술관은 루브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다시 세느강변을 따라 오르세에 도착한 우리는 간만에 와이파이의 단맛을 맛볼수 있었다(하지만 전시장 내에서는 바로 끊겼다;;) 처음에는 의욕 넘치게 시작했다. 첫 전시장에서 부터 밀레의 만종과 이삭줍는 아낙들을 보고는 신나서 모든 작품들을 감상하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내 체력은 내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한 전시장 두 전시장을 지나다 보니 내 체력은 바닥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유명한 몇몇 작품 지옥문 고흐의 자화상 그리고 마네의 올랭피아 피리부는 소년 정도를 감상하고 모든 것을 보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오르세 미술관 폐장 시간이 다가와 우리는 그곳에서 나와야만 했다. 후 우리는 너무 피곤하지만 파리에서의 하루가 너무 아까워서 노틀담 성당까진 보기로 했다. 지하철로 이동한 우리는 한정거장 정도를 지하철을 이용했다. 노틀담에 도착해선 아빠는 성당에서의 미사에 참여했지만 나는 남은 체력이 없어 옆에 앉아 졸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노틀담 성당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피곤한 탓이었을 것이다. 미사가 끝나고 나오니 어느새 저녁 시간 파리에서 먹을 수 있는 마지막 저녁 식사였다. 나는 그동안 파리에 가면 꼭 먹어봐야지 했던 달팽이 요리를 먹으러 생 미셸 광장에 있다는 먹자 골목으로 찾아갔다. 생 미셸광장은 다행히 노틀담 성당에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미리 책에서 찾아보고 간 Grand bistro를 찾았다. 

달팽이 요리!

달팽이를 요리 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부르고뉴 방식으로 조리한 요리가 맛있다 하여 찾아간 곳이었다. 음식은 전식 본식 후식으로 나왔다. 전식으로는 갈릭버터와 함께 조리한 달팽이 부르고뉴, 본식으로는 스테이크 그리고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솔직한 평으로 내가 기대한 프랑스 요리는 아니었나, 칭찬할 거리가 있다면 달팽이 요리 정도? 스테이크의 양은 너무 작았고 아이스크림의 맛은 평범했다. 무시무시한 사실은 생수를 하나 시켰는데 그것이 9유로나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추가로 나온 레드 와인을 한잔 곁들이면서 아버지와 한 대화가 의미 있었기에 위로가 된다.

  나는 아버지의 현재 꿈에 대해 물었고, 아버지는 방대한 본인의 계획에 대해 풀어 놓았다. 나는 때론 공감하기도 하며 때로는 아버지의 대담함을 비판하기도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아빠랑 언제 이런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까. 여행과 와인은 사람을 솔직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와인을 한잔하고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좀 더 쌀쌀하게 느껴졌다. 아버지도 추위를 느끼셨는지 나에게 얼른 집으로 들어가자고 제안하셨다. 우리는 지하철역으로 이동했고 어렵지 않게 6호선에 탑승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3정거장 정도 이동했을까 갑자기 사람들은 모두 내리고 지하철은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니 그저 앉아 있을 수 밖에, 한 5분 정도 기다려도 지하철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고 있는데 어느 프랑스 청년이 다가와선 이 지하철은 여기까지 운행하고 다시 뒤로 돌아간다고 말해주었다. 나와 아버지는 깜짝놀라 두번 세번 고맙다고 말한 후 얼른 짐을 챙겨 지하철을 내렸다. 그 청년은 친절하게 어디로 가면 제대로 된 걸 탈 수 있는지 알려준 후에야 자기 갈길을 재촉했다. 여행자에게 친절한 사람은 정말 아름다운 법이다. 아무도 모르는 타지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것 또한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제대로 된 열차를 탈 수 있었다. 그 지하철 안에서 나는 행복한 파리의 순간을 맛볼 수 있었다. 우리가 지하철을 탈 때 마침 에펠탑 근처에서 악기를 연주하던 아저씨가 같이 탑승했고 지하철에 타서도 악기를 연주하셨다. 

  그 순간 지하철 밖으로는 주황색 불이 드리운 에펠탑이 보이고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처럼 그 순간 내가 파리에 녹아들었다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숙소에 도착했다. 파리의 마지막 밤이 아쉽기도 했고 에펠탑 야경이 아쉽기도 했지만 하루종일 온갖 고생을 다 한 탓에 씻지도 못하고 잠에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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