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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범수 Dec 01. 2015

#5. 벌써 비를 맞다니, 수비리 가는 길(2)

나와 아버지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35일의 여정

 


 조금 많이 늦어졌는지 수비리로 향하는 마지막 숲길에는 나와 아버지 단 둘 밖에 없었다. 사실 아버지와 여행을 떠나면서 아버지와 걸으려 했던 길인데 정작 순례를 시작하고 아버지와 걸은 적이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도 둘이 오붓하게 함께 걷는 길이 좋으셨는지 미소를 입에 머금고 “좋다”라는 단어를 연신 내뱉으셨다. 나도 정말 좋았다. 아빠가 먼저 밟고 지나가는 걸음걸음을 따라 걸으며 아빠의 뒷모습을 따라 걷기도 하고, 넓직한 숲길은 나란히 걸으며 높게 자란 고사리 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도 했다. 


  아빠는 우리 집의 천덕꾸러기였다. 


  작가라는 직업 탓에 나와 누나가 어렸던 시절부터 아빠는 많은 곳을 돌아다니셨고 우리를 키우고 가사를 이끌어 갈 고생은 고스란히 우리 엄마의 몫으로 돌아갔다. 사실 지금도 아버지가 하고 싶은 일을 하시며 살고 계시지만 그나마 집안일을 도맡아 하시고 가족들을 많이 챙기시는 편이다. 하지만 옛날부터 쌓여온 철부지같은 성격 탓에 집안에서는 항상 타박을 받기 일쑤였고 심지어 나와 누나에게도 버릇없는 꼬장을 많이 들으셨다. 그랬던 탓에 우리, 특히 어린 시절의 나는 아빠와 가깝지 않았다. 아빠와 가까워져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스무살이 지나며 아빠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고 5년이 지나 스물다섯이 되어 아빠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 여행을 아빠에게 제안했고 우리는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물론 여행을 떠난 이 후 전혀 다른 아빠를 발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알던 그 아빠다. 하지만 아빠를 ‘아빠’라는 단어에 메이지 않고 한 ‘사람’으로서의 아빠를 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함께 걷고 함께 먹고 함께 이야기하는 길 위의 한 사람 혹은 동행으로서의 아빠, 이제 시작인 이 길 위에서 아빠의 많은 모습을 함께 할 수 있고 하고 있는 것 같아 나또한 정말 행복했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더 걸어 우리는 수비리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수비리도 지나는 순례자들을 위한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에 도착하니 저 멀리 바에서 먼저 앞서간 해창이 형과 한국인 아주머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차! 내가 저들의 순례자 여권을 가지고 있었구나. 그곳에는 한국에서 오신 김종원 신부님도 함께 계셨다. 인상이 참 좋으시다. 우리는 미리 해창이 형이 알아본 신식 알베르게로 향했다. 마을과는 5분정도 떨어진 곳이었지만 내부가 정말 깔끔했고 무엇보다 와이파이가 굉장히 잘 터져 모두를 만족 시켜주었다. 우리는 한동안 와이파이를 붙잡고 그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아버지는 신부님을 만나 그동안 궁금했던 종교적인 지식에 대해 신부님과 논의하기 시작했고 나는 얼른 샤워를 하고 빨래를 끝냈다.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마을로 나왔다. 마을에서 우리는 양선이를 다시 만날 수 있었고 함께 순례자 메뉴를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 우리보다 한시간여정도 일찍 출발한 양선이에게 오늘은 어땠냐 물었다. 그랬더니 대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은 슬리퍼를 신고 걸어서 좀 힘들었어요..” 알고보니 비가 왔는데 신발이 방수가 되지 않아 슬리퍼를 신고 걸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혀를 내두르며 어린 소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순례자 메뉴로 빠에야와 닭다리 그리고 요거트를 먹었다. 아버지의 토종 한국인 입맛에는 안맞는지 또 투덜대시기 시작했다. “요거트가 제일 맛있네..” 에휴 또 시작이다. 나도 뭐 그리 맛있지는 않았지만 또 그렇게까지 말할 것 까지야. 또 아빠와 가볍게 티격태격하며 밥을 다 먹고는 일행들과 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드디어 첫 번째 대도시인 팜플로냐로 떠나는 날이다. 내일을 위해 오늘은 체력을 이만 비축해두고 잠에 들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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