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가 빠른 반려견, 그렇게 무한한 위로와 신뢰를 건네는 너.
사실, 요즘 제가 많이 힘듭니다.
부모님께 전화를 해서 사실을 지난 몇 달간 힘들었다고 털어놓았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학부시절 필수교양으로 수강해야 했던 철학수업에서,
벼락치기를 하고 시험을 보고 나면 시원하게 모두 날려 보냈던 지식들 사이에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문장이 하나 있는데,
그건, '사람은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이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서 이 나이에 힘들다고 말하는 게
실망감을 안겨드리는 불효로 느껴지기도 했다.
나의 불안과 우울을 '관계'로 풀어보자면,
지금 꽉 막혀있는 내 일들이 날 실패자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이 날 다르게 보거나 내게 실망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이들과의 관계에서도 나의 끊임없는 반추와 자책으로 인해,
나 스스로 자존감이 떨어져 스스로 거리를 두고 고립시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모든 관계가 어느 정도는 불편하게 느껴졌다.
내게 편안함만을 주는 관계는 나와 이제 갓 16주를 넘긴 우리 집 강아지의 관계였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 친구와의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관계가
왜 이렇게도 위로가 될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귀여운 외모와 따듯한 체온에,
매일 내가 아침에 일어나면 내 침대 밑에서 쏙 나와 꼬리를 흔드는 이 녀석은
용서가 매우 빠르다.
산책하다가 실수로 발을 밟혀도,
자꾸 줄을 끌다 신경질적으로 줄을 잡아당기는 내게 목을 채여도,
너무나도 싫은 귀청소를 억지로 하고 나서도,
내게 혼을 나고 나서도,
이 친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고 남은 감정의 찌꺼기에,
죄책감을 얹어 불편해하는 내게,
이 친구는, '괜찮아. 내가 용서할게.'라고 말을 건네듯 내게 또 다가온다.
용서받는 느낌. 아니, 언제나 용서받을 것 같은 이 느낌은.
이 친구는 내가 어떤 실수를 해도 조건 없이 날 좋아해 줄 것만 같은,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큰 위로와 안정감을 선물한다.
내가 날 용서하고 괜찮다는 말을 의구심 없이 들을 수 있으면 어떨까.
내가 날 먼저 용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