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사는 법

by 초록글씨

여름을 정리하다가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잡동사니는 진척되지 않는 명분을 준다. 버려도 버릴 것이 나오고 쓸모가 있을까 없을까 하다가 남겨둔 것이, 남겨둔 것인지도 모르고 잡동사니가 된다.

물건이라 망정이지.

기억 끄트머리에서 잊어버리지 않은 상자였나, 들춰본다. (희한하게도) 정리되지 않은 사진, 편지들이 정해진 자리에 뭉텅이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안심된다.

겨울이니깐. 크리스마스 카드 뭉텅이를 잡고 반가운 글씨, 반가운 얼굴을 본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나 보다. '강하니깐 잘 해낼 거야'란 말이 씩씩한 척했나, 씩씩했나를 더듬어 보건대 그때나 지금이나 그랬을 것 같다.

손에 묻어나는 반짝이를 보며 그 맛인데.. 이제는 손글씨로 카드에 크리스마스를 전하는 맛을 잃어버리기도 했고, 이런 거 참 좋아했는데. 그런 나만 남은 듯하다.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던 말이 눈에 남는다.

뜨끈해지는 그 맛이지. (암요 암요)


기억하려고 애쓰다가 기억해 낸 얼굴, 기억해 낸 우리. 이름을 되뇌어봐도 떠오르지 않는 얼굴, 장면들까지. 이렇게나 시간이 흘렀고 이렇게나 흘러간 사람들까지.


정리고 뭐고,

잡동사니는 내버려 두자. 내일로 미루고.




지금은 하지도 않을 걱정들이 아기자기했다. 너나 나나 한 귀여움 다, 그렇게 넘겼다. 귀여운 얼굴들을 한참 들추어 읽었다. 손이 써 내려간 목소리로 그 사람을 읽었다.

향취가 그때를, 그 얼굴을 기억한다. 기억해내지 못한 얼굴은 읽다가 읽히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나를 기억할까?

아무렴, 지나간 것은 지나간 데로 상관없었다.


누가 찍었는지 알 수 없는 사진을 발견하고는 딸을 보여줬다. "봐봐 엄마 풋풋하지 않니?"

아마 제품사진 홍보차 카메라를 들고 온 차장이 찍어준 것 같은데, 확실한 기억은 아니고.

이런 사진이 있었나 새삼 새로웠다. 반가운 내가 새로운 나를 보며 들떠서 보여줬다.

딸은 '옛날엔 사과 같았는데, 이제는 유통기한 지난 사과 같아'라고 했다. '엄마, 그래도 여전히 풋풋해'라고 말해 주었지만, 뒷 말은 들리지 않았다. 딸의 신선한 표현이 충격적이라 괜찮았다.

아무렴 지나간 것은 지나간 데로 상관없지. 없지만, 신선한 사과이고 싶었다. 지나 온 시간이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회초년생 얼굴은 생기가 가득했다. 웃는 얼굴, 지나간 발자취는 반가웠고 지나간 시간은 무거웠다.


산다는 건


어찌 보면 쉬울까, 어려울까.

가볍나, 무겁나.

잘 모르겠다.

그냥 그 흐름에 맡기려 한다.

숨 쉬는 일처럼.




나의 이야기는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과거로 이어진다. [쉼 다시 보다, 머물다.]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어집니다.


초록글씨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