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by 초록글씨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나를 '썬'이라고 불렀다. 단순히 이름에 '선'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썬'이라는 어감이 SUN과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따스한 햇살 같아서 좋았다.


엄마가 된 지금은 이름이 불릴 일이 많이 없다.


아이들 알림장이며 숙제 서명란에 내 이름 석자를 쓴다. 배우 박해일이 정직하게 박해일이라고 쓴 이름이 좋아 보이더라. 이전에 사인할 일이 많지 않아 아무 생각 없이 찍 그었는데, (이것은 음표인가 싶었지만) 일부러 만들 필요가 있나 싶어 내버려 두었다.

똑바로 쓰는 재미로 꾹꾹 눌러쓴다.


"엄마 근데 엄마는 사인이 없어?"

"그게 사인이야 왜 갑자기?"


(1학기때 아무 말 없더니만)


"친구들이 엄마는 사인이 없냐고, 엄마 이름이냐고 물어보길래 창피해서"


(별게 다 창피한가 싶지만)


이름대신 음표 같은 사인을 했다.


"엄마 근데 원래대로 이름 쓰는 게 이쁜 것 같아"

"어제는 이름 쓰지 말라며?"

"선생님이 엄마 이름이 더 이쁘데"


선생님도 똑바로 쓰는 재미를 알아보셨을까, 딸의 요구에 별게 창피하지 않은 이름으로 다시 쓴다.

마음에 든다.




천천히 다가 온 사람은 감정 없는 눈을 했는지 입만 웃고 있었다. 귀신은 아니고, 사람이다. 조용히 내 옆으로 오려는데 꿈이야 알아차렸다.


한참, 창문을 바라보았다. 깜빡깜빡한 눈으로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는지 확인했다. 더듬더듬 손을 움직여 핸드폰을 본다.


새벽 2시가 넘었다. 잠은 자도 자도 끝이 없으니깐 아침 7시가 되기 전에 눈을 감아야지. 어떤 눈으로 나를 쳐다봤는지 모르게 사라졌다. 창문 안을 보던 눈은 없다. 우리 집은 안전하다.


꿈인지, 꿈을 꾸고 있는 나인지, 꿈 안에서 꿈을 먹고 있는 건지 불분명한 날이다.


잠을 잘 자는 편이다. 육체가 말을 듣지 않거나 정신이 말을 듣지 않을 때 꿈인지, 꿈을 꾸고 있는 나인지, 꿈 안에서 꿈을 먹고 있는 건지 싶을 때가 있다.


순간의 기쁨, 순간의 즐거움, 일시적 기쁨, 일시적 즐거움은 죽을 때까지 재생되는 거라서 일상에서 꿈을 먹는 건지 꿈에서 꿈을 먹는 건지 헷갈릴 것 같다. 감각적 자극에 대한 순간의 즐거움(쾌락) 보다 더더욱 의미와 삶의 만족에서 오는 깊은 기쁨(환희)에 가까운 몸부림을 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반응하지 않고 무신경하게 두거나, 알아차리거나,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가만 보면 추위에 몸이 굳은 것인지 내뿜던 에너지, 동력이 주춤한 듯하다. 기세란 말을 떠올린다. 요즘 나는 기세가 없다고 알아차린다. 몸이 피곤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우선 습관적 지겹다와 귀찮다를 지양하기로 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기세를 잡아 올려야겠다.



기세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