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가 끝나도 우리는 여전히

by 초록글씨

성이 나서 세차게 날아왔다. 통통 튕겨져 나갔다. 자주색 체육복을 입은 선생님은 컴퍼스로 원을 그렸다. 네모난 운동장은 발이 먼저 움직이느라 동그랗게 보였는데 선생님과 나의 거리가 작은 원을 만들었다.


선선하게 불어오던 바람이 땀을 식혀주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하늘색 풍선이었다. 정리는 뒷전이고 하하하 웃고 있었다. 별안간 묵직한 손이 나를 불렀다. 이유 모를 공은 컴퍼스로 그린 원으로 들어왔다. 하늘색 풍선들은 하늘 위로 떠나갔다.


"왜 공에 앉아있어?" 선생님이 물었다. '정리는 하지 않고 왜 그러고 있냐'는 질문 같아서 답할 수 없었다. 나만 그러고 있지 않았는데.. 억울한 말만 맴돌았다.

정적이 흘렀다.

하필 똑같은 체육복은 소용없었고, 숨이 막혔다.


그 공. 공이 문제였다.

하필 그 타이밍.


선생님의 언짢은 기분은 공에 앉아 해맑게 웃던 내가, 못마땅한 타이밍이었다.


벌을 섰다. 유쾌한 선생님은 무서운 선생님이 되었다. 매일매일이 좋을 수만은 없는지, 불만과 의구심이 생기면서도 웃음이 많을 때였다. 역시나 매일 좋을 수 없는 하루란.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날이라 힘이 빠졌다.


시간이 멈춘 채로,

선생님이 그린 원 밖으로 공을 뻥 차고 싶었다.

그래도 기세 냥냥한 명랑 18세였으니깐.


금세 어른이 될 것만 같았던 착각은 왼손에 쥐고 자유로운 오른손이 거둬들였다. 어른이 되기만 하면 뭐든 될 것만 같았던 기대나 희망은 좋은 것이다, 가만 보면 좋지 못한 것이다. 잡스러운 희망은 기대하나 마나 한 켜켜이 쌓이는 가루 먼지 같은 것이라고 보이고 보여주는 삶이 전시되는 삶이, 도토리 열심히 모으는 정직한 삶이 희망이라고 다시 거둬들였다.

(마른하늘에 번개는 예측이 어렵고 다람쥐가 만질 수 있는 희망이 비에 젖더라도.)




몇 시간 후면 둘째 장기자랑을 보러 간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매번 기대하게 된다. 처음 발표회를 보던 날 아이들 무대라고 얕잡아 보기도 했지만 공들인 무대에 빠져 두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준비했던 무대를 앙증맞게 즐기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꼼짝도 하지 않고 얼음이 된 아이도 있다.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끝까지 서 있는 아이도 있고 중간에 무대에서 내려온 아이도 있다. 그 모습 그대로 무대가 되는 희한한 장면이 연출된다.


다 큰 어른도 반짝거리는 무대라면 낯설고 어색할 텐데 장기자랑이 뭐라고 하기 싫다고 우는 아이를 억지로 시키나 싶었지만, 잘하고 못하고 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낯설고 두렵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느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이제는 그 모습마저 귀엽게 바라본다.


지금도, 해가 바뀌면 나이 한 살 먹고 외형이 변하는 건 당연한데 매번 언제 이렇게 컸을까란 말을 달고 사는 것 같다. 작년에도 그랬고 지나간 사진을 보면서도 자동으로 내뱉었는데 아마 오늘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언제 이렇게 엄마 없이도 잘 해내고 있는 거야.. 언제 이렇게 사람이지만,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거야.. 하고.


코끝이 찡해질 듯싶다.


잠들기 전, 아들에게 "장기자랑 떨리지 않아"라고 물으니 "부끄러울 것 같아"라고 말한다. 부끄러움은 이제 어쩔 수 없고 반짝이는 조명이 환해서 도망칠 수도 없으니 어쩌나.

즐기길 바랄 뿐이다.




현실과 환상, 선명하고 흐릿한 기억, 누가 먼저 그렸을까 모르는 동그라미 경계의 모호함, 안과 밖, 밖과 안. 흐릿한 경계 너머로 이어지는 너와 나를 마주할 수밖에 없으니깐.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