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화'였다.
- 괜스레, 톡톡 떨어졌다.
우산을 들고나갔다. 아침에 소리를 지르고는 노란색 차에 태워 보낸 아들을 마중 나가는 길이다.
거울은 때마다 드리우는 양면성이 불편하다고 말한다. 볼에 스며든 볼터치가 생기발랄한 여느 날에 말간 얼굴을 보고 싶다. 우산을 들고 서 있는데,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해지는 것이 손바닥 뒤집듯 감정이 요동치는 날이라 싫지 했다.
눈은 말갛다.
나는 가볍고, 너는 생기발랄하게 가볍다. 그래도, 그래도 0.001초 만에 이쁜 쓰레기가 되는 것에 위안 삼으며.
노란색 차가 보였다. 졸렸는지 눈을 비비며 내리는데, 아침에 툭 하고 건드리던 감정이 쏙 들어갔다.
아들도 내 손을 잡고 짓궂게 걸었다. 졸린 잠을 물리치기라도 하듯 두툼한 모자가 신나서 이리저리 흔들었다.
엄마라는 이름과 나라는 이름의 양면성.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아이에 의한, 아이에 의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얼굴이 아이들은 지킬 앤 하이드 같다고 느끼지 않을까.
물론 나는 상냥한 엄마다, 엄마일 테다. 여느 날은 온도차가 심해서 그렇지.
남자는 남자인지라 아들 녀석은 힘이 세다. 잘못된 행동을 할 때 어흥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를 내면 싫고 무서워 떼를 쓴다. 발을 동동 거린다. 상냥한 엄마가 없어지는 것이 싫은 거다.
아이를 키워보니 말로써 타이르고 달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로 인해 감정이 들어가지 않는 매가 과연 가능할까도 충분히 이해한다.
대놓고 매를 댄 적은 없지만 등짝 스매싱 정도. 굴러다니는 옷걸이를 잡고 하지 말라고 엉덩이 두대 정도. 등원 거부하는 딸아이 들어오지 말라고 문도 잠가봤다. 아이를 돌보는 건 절대적 사랑 없이는 행할 수 없다.
왜냐면 징글징글함을 이겨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만이 이기기 때문이다.
- 중학교 3학년 담임이었던 국어선생님은 동글동글 하얀 얼굴이 선해 보였다. 부드러운 말투 끝에 단호함이 묻어났다. 30대 중반, 결혼하지 않은 선생님은 어린 눈에 결혼도 하지 않고 나이만 먹은 한참 어른이었다.
지금에야 그 나이가 얼마나 어린지, 30대는 적당히 농염해지고 아름다워지는 나인지 가늠할 수 있다.
어려도 한참 어렸던 선생님은 어떤 날은 먹거리를 가져와 고민이 무엇인지 물어봐 주었고, 어떤 날은 노래 하나 불러주세요란 요구에 마다하지 않고 심수봉 노래를 불러 주었다. (왜 노래를 시켰는지는 까마득한 기억이라 떠오르지 않지만) 온화했던 선생님이 화가 난 이유도 크게 납득이 가지 않는 날이었다. 다른 선생님이 자율시간을 담당할 때 아이들이 무단으로 빠져나간 것에 화가 단단히 난 듯했다.
여자 아이 두 명을 교무실로 불러냈다. 반 맞은편 교무실 복도에 매 맞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때, 그 일이 잘못한 건 맞지만 수십대를 때릴 만큼 크게 잘못한 일인가?라고 생각했다. 그 친구들은 거의 기어 오다시피 반으로 들어왔다. 친구들 누구도 괜찮냐는 위로의 말을 해 줄 수 없었다. 그 친구들은 창피함인지 억울함인지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매는 강력했다. 다시는 자율시간에 나가는 일이 없었고, 선생님도 평소와 같았다. 학기가 끝나갈 무렵 앞전에 맡았던 아이들은 하나같이 착해서 평화롭게 보냈다고 솔직한 말을 하고서는 그래도 즐거웠다고, 고등학교 가서도 잘 지내라고 했다. 나쁘지만은 않았다. 원래 괴팍해서 인정해 버리는 선생님은 아니었으니까.
생생했던 장면은,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랑의 매는 아니었다.
단지 그건 선생님의 '화'가 남긴 장면이었다.
가끔 이유는 있지만, 아이들에게 '화' 로만 비치는 건 아닐는지 젊디 젊었던 선생님이 떠올랐다. 한편으론 얼마나 애를 태우셨을까 싶기도 하고.
아이들과 나란히 걷는 모습이 예전을 떠올리게 했는지, 지나가던 아주머니는 "지금이 참 좋을 때야, 이쁘다. 얼마나 이뻐" 사랑스러운 말을 하고선 아이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네, 이쁠 때죠"
이쁠 때란다.
얼마나 커봐야 말을 더럽게 안 듣는지 알 만도 하고.
(두들겨 팰 일은 없겠지요...)
이유는 없었다. 단순히 '화'였다.
명심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