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짧은 소설
보이지 않아 (1)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교실
교탁에 차분하게 서있는 서선생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며칠 전의 그것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오늘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서선생은 잔잔한 미소로 아이들의 눈을 하나하나 맞춰본다. 그리고 떠오르는 단어들.
-무엇을. 어떻게. 왜...
"선생님, 범인 잡았어요?"
학생하나가 손을 번쩍 드는 것과 동시에 큰소리로 묻는다.
평화로운 척하던 공기에 일순 긴장감이 돈다.
서선생은 눈을 한번 감았다 뜨고는 말을 시작한다.
"먼저, 교실에서 일어난 분실사건에 대해 모두 적극적으로 협조해 줘서 고마워."
본론부터 말하세요.
아이들의 눈빛은 직설적이야.
"지금까지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거나, 후회할 행동. 한 적이 없는 사람 손 들어볼래?"
웅성웅성-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눈을 번갈아 쳐다본다.
그중의 한 두 명은 손을 번쩍 들었다가 멋쩍게 웃으며 다시 빠르게 내린다.
"이렇게 정직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는데, 대단해 너희들?"
시선도,
마음도,
서선생에게 집중된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 그때 그러지 말걸. 하던 순간. 다시 그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참 어려울 때가 있지?"
"저는 바로바로 잘못했다고 말하는데요."
창문가에 앉은 강훈이 팔짱을 낀 채 말한다.
"너는 맨날 지각하면서, 언제 잘못했다고 했냐?"
태수가 지우개를 던지며 말하자 아이들이 돌아보며 웃는다.
빙긋 웃으며 보던 서선생이 다시 말을 이어간다.
"선생님 책상 위에 현금을 올려놔줘서 고마워. 과정은 틀렸을 수도 있지만, 마무리를 스스로 바꿀 수 있다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솔직할 수 있다는 건 용기 있는 행동. 선생님에게도 그런 용기를 가르쳐주는 게 너희들이야."
말을 마치고 한 바퀴 두루 훑어본다.
나는 너를 믿는다.
그러다 뒷 문 유리창 너머 방망이로 목을 딱딱 치며 쳐다보고 있는 김선생과 눈이 마주친다.
-뭐?
서선생이 눈썹을 치켜올린다.
김선생은 하얀 커피컵을 들여 보이고는 무심히 사라진다.
교무실
"하아아아아아아."
들고 있던 책을 교무실 책상에 탁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뱉는다.
"그래가지고 어디, 땅이 꺼지겠어요?"
"김선생님."
"네, 서선생님."
"멘트 좀 바꿔주시면 안 돼요?"
김선생이 헛기침을 한다.
"얘기 잘 된 거 아니에요?"
"얘기... 하... 저는 임용은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문제 터질 때마다 답 하나 제대로 맞추는 게 없는데."
노총각 김선생은 고개만 끄덕이며 꼬아놓은 다리도 까닥까닥 흔든다.
"그래도 선생님 말씀. 도움이 됐어요. 선생으로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풀지. 결국. 저도... 거짓말한 게 되었지만. 그 말을 듣고 정말 느끼는 바가 있을까요?"
"없어졌다가 이꼬르 훔쳤다. 라는 공식으로 풀지 않는 방법도 있구나. 전 그런생각이 들었는데요?"
표정변화라고는 일도 없는 짙은 눈썹, 하지만 그 안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다.
"십오만 원 아니고 백오십만 원이었어도 제가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하아아아아아. 제대로 한 건지. 자신이 없네요."
"공 하나 더 있었으면 경찰서 가야죠."
무심히 툭 던지는 말.
무엇을 어떻게 왜 하랄 땐 언제고.
"서선생은 서선생 방식대로 잘한 거예요. 고생했으니까, 커피, 마실래요?"
아까의 그 하얀 커피컵을 눈앞에 흔든다.
"전 아아만 마시는데..."
"아아도 있어요."
"오, 정말요? 감사해요 쌤~"
"카페에. 카페 가서 사드시면 되겠네요. 저는 따뜻한 커피만 마셔서."
김선생은 교재와 방망이를 집어 들고 유유히 교무실을 나간다.
"하... 방망이에 껌이라도 붙이까..."
하굣길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걷는 유리 옆으로 들고 있는 보조가방을 무릎으로 툭툭 차대는 난이가 있다. 그리고 가방도 메지 않고 체육복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걷는 우유.
셋은 모두 다른 듯 닮은 듯 한 방향으로 함께 내려간다.
"선생도 거짓말을 하네."
교실에서 나올 때부터 아무도 말을 꺼내지 말자라고 약속이나 한 듯 걷던 분위기를 난이가 날려버린다.
"우리말고도 있는 거 아냐? 돈 가져간 사람."
"정확히 십오만 원을? 말이 돼?"
휴대폰만 보던 유리가 답한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지 않아? 어떻게 매일 오만 원짜리가 같은자리에 떨어져 있었는지."
우유는 며칠 전 늦은 시각까지 교실에 남았던 일을 떠올린다.
"오늘 나 미술 있어. 기다렸다 같이 가."
오후 스케줄이 따로 없는 우유는 가끔 늦은 시간마다 마주치던 유리가 싫지 않았다.
-공부만 하는 부잣집 따님인 줄 알았더니.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본 그녀는 매사 솔직하고 표현에 거침이 없다.
오히려 그게 나아.
그리고 우유에게 호감을 느낀 건 유리도 마찬가지.
-조금 부족하다고 자기 연민만 해대는 애들이랑 달라.
유리가 보는 우유였다.
그렇게 어느 날부터인가 유리와 우유, 그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이던 난이까지 셋은 함께 집에 가는 날이 많아졌고, 그날도 교실에 오만 원이 떨어져 있었을 뿐, 특별할 건 없던 평범한 날이었다.
"왜 여기 오만 원이 있지?"
"일단 가져가서 내일 담임 주던지."
그리고 다음날, 다시 같은 자리에 오만 원이 떨어져 있다.
유리의 책상 아래.
"이거 진짜 뭔데. 이러다 도둑으로 의심받는 거 아냐?"
"어차피 없이 산다고 제일 먼저 의심받을 거 그냥 가져갈까 봐. 크크"
우유는 말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셋째 날. 여전히 떨어져 있는 오만 원.
"총 십오만 원이네. 내일 또 있을까?"
망설이는 사이 담임이 먼저 신고를 듣고 반 회의를 열어버렸다.
그리고 오늘.
다시 되돌려 받았다는 그 돈.
우리는
돌려놓은 적이 없다.
"졸지에 범인 됐어. 재밌네."
유리가 피식 웃자, 난이가 바닥의 돌멩이를 세게 걷어찬다.
"그렇다고 담임한테 거짓말은 안 했지. 그냥. 말을 다 안 한 거지."
"상관없는 얘기만 해대면 알아서 포기할 줄 알았더니."
"차라리 네가 그랬냐고 했으면."
우유가 대꾸한다.
"맞어, 차라리 네가 늦게 남았다매. 너밖에 없잖아 그렇게 말하지."
그럼.
편하게 써버릴 수 있었는데.
"짜증 나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셋은 같은 말을 내뱉는다.
짜증이 나네.
어떻게
말하지 않아도
생각의 흐름에
동일한 규칙이 보이는지.
학교
꼬깃해진 오만 원 권 세장을 올려놓는다.
교무실 문을 닫고 나오는 우유의 발걸음이 오늘만은 무겁지 않다.
학교가.
좋다.
"응?"
작은 불빛 하나가 우리 반 유리창으로 번졌다가 사라진다.
우유는 훨씬 더 조심스럽게 복도를 걸어 반으로 간다.
뒷 문 유리창 너머로 바라본 교실 안에는,
-저거, 금선희?
선희가 바닥에 닿을 듯이 웅크린 자세로 유리의 의자옆에서 꼼지락 댄다.
문을 벌컥 연다.
"금선희"
선희가 엉덩방아를 찧는다.
"아 나, 나는 여기 내가 흘렸던 거, 아니 혹시 여기 떨어졌나 찾아볼.."
"선생님이 이미 찾아준 거 아니었어?"
"어? 그랬지 그래서, 아니 혹시 몰라서."
한 달 전인가, 노트 좀 빌려주면 안 되냐는 선희의 부탁에 수업시간에 제대로 듣기나 하라고 핀잔하던 유리가 떠오른다.
말없이 선희를 노려본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정리가 안돼.
"넌 왜 다시 왔어? 아까 간 거 아니었어? 아휴 나도 학원 늦었는데 빨리 가야겠다, 잘 가 유리, 아 우유야."
선희는 가방을 집어 들고 우유를 지나친다.
"그만해 이제."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뭐를"
선희가 날카롭게 대답한다.
"선생님이 믿고 있잖아. 나뿐만 아니라 너도."
입술을 꾹 깨문 선희가 문을 활짝 연다.
"너네나 잘해."
복도를 달리는 발소리가 금세 멀어진다.
심장이 쿵쾅댄다.
-내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알 수 없는 기분.
지금이라도 돈을 돌려주자며 했던 얘기들이 떠오른다.
"이러면, 담임이 했던 말도 사실이 되는 거네."
난이가 말하며 오만 원 권 세장을 유리에게 건넸다.
"웃기지 않냐. 믿어주면 그대로 하고 싶은 거."
여전히 휴대폰만 보고 있는 유리의 한마디.
정확히 보이지 않아도 돼.
뭘 하는지 정확히 몰라도.
이렇게 하면 담임이 틀리지 않은 거야.
우리도.
틀리지 않을 수 있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