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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빌런

빌런은 과연 누구.

by 아는개산책

신입을 충원하기 위한 인터뷰 자리의 인터뷰어들은 각자의 역할이 있다.

어떤 이는 그의 소개서를 보며 자라온 환경을 바탕으로 성실함을 볼 것이고, 어떤이는 그의 학력을 바탕으로 능력치를 가늠하겠다 했다.

그 중에서, 내가 맡겠다 자처한 역할은 '관상' 이었다.


물론, 실제로 관상을 볼 줄 아는 것은 아니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말이다.

하지만 나이 스물이 넘어가면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그 이야기가 얼굴에 드러나기 시작한다고 믿었고, 그것은 단순히 어로와 빌런으로 나뉘는 개념은 아니었다.


어디.. 왕이 될 관상인가-?



재수없는 아이


"저는 재수 없는 아이에요"


-끝으로 자기 PR 한번 해보세요. 하고 의례 던지는 마지막 질문에, 검은 가죽자켓에 딱 달라붙은 검정 진을 입은 지원자가 대답한다.

오늘만 5명째 진행되는 면접에 지루해진 나는 '미역국, 제육볶음...' 이라 끄적이며 저녁 메뉴를 생각하다가 퍼뜩 고개를 들어 지원자를 바라본다.


시선을 끌어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어 던진 말이라면, 너는 단연 성공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분명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척 팀장이 묻는다.


"제가 생각하는게 아니고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뭐 부모님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친구라 할 만한 색히들도 없지만. 크큭, 주변에 사람이 없어요., 그래도 그래서 집중 할 수 있는게 일 밖에 없어서 한번 시작한 일은 끝장 봐요. 폐 끼치진 않을꺼에요"


-끝장...을 좋은 쪽으로인지 나쁜 쪽으로인지..?


어투도, 복장도, 까닥거리는 발로 보이는 태도도, 거기다 비속어까지 섞어 가며 '면접' 을 보러 온 그 아이를 보며, 어릴때 읽었던 정글북의 주인공 모글리가 문득 떠올랐다.


1년전 가을, 태수의 첫인상 이었다.



사무실 킬러


오전 출근 시각 ,9시가 되려고 간당 간당 한 초침에 내 마음도 콩닥 콩닥 한 , 세이프 -

아직 팀장은 자리에 없고, 자연스럽게 미리부터 도착해 있었던 듯 호흡을 가다듬는다.


출퇴근 시간 가늠을 못하게 하기위해 가방은 이미 가지고 다니지 않은지 오래다.


몇달 전 입사한 막내 현주가 쪼로롱 아기새처럼 날라와 의자옆에 몸을 숨기듯 쭈그려 앉는다.


"과장님, 난 진짜 태수씨랑 안맞아요."


"-나도 너랑 안맞는데"

컴퓨터 본체를 키며 대답한다.


"아니이 -! .. 어제 나한테 뭐랬는지 알아요?"

"내가 몰라도 될 말"

"귀 대봐요"

'(속닥) 나한테, 상×, ×지 마라'


두 귀를 의심할 만한 문구긴 하다.

그런데 회사에서 굳이. ?


"걔 너 좋아하나?"


"미쳤어요! 이거 농담으로 그렇게 한 말아니고 진심으로 내가 싫어서 한 말이라니까요."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속닥인다.


"뭘 깝쳤는데"

"아니이-! 아무것도 안했어요 난"


현주를 본다.


"어제 퇴근 직전에 서류 툭 던지면서 니가 하라길래 못한다 했죠. 그거 내가 할 일도 아닌데"

"그럼 누가 할 일인데?"

"그거 김과장님이 태수씨 시킨거에요. 근데 갑자기 바쁘다고 그걸 왜 날 주냐고요 같은 막낸데"

"그래서"

"아니이 그래서가 아니고요.. 과장님이 아셔야 할 것 같아서,, 진짜 남들 다 듣지도 못하게 와서 귓속말로 그랬다니까요"


"현주야"

아나운서가 꿈이었다던 예쁜 아기새 현주가 물끄러미 드디어 공감 하냐는 듯 올려다본다


"일 해.."


아우잉- 알아듣지 못할 옹알이를 하며 휙 일어서더니, 태수의 빈자리를 향해 기어코 마지막 한마디를 던진다. 아주 작은 새소리로.


"김태수 진짜 재수없어"


음..

저 감정 고이지말고 흘러가줘야할텐데.


타인의 평가에 함몰되어 스스로를 '재수없다' 로 표현 하던 그에게 직접 들여다보겠다 고 대답한게 어설픈 판단이었나 돌아보게 할 정도로, 그는 화려한 전적을 쌓며 빌런으로 명성을 쌓고 있었다.


유난한 하소연과 소란은 이미 여러번 들어본 바였다.

그렇다고 굳이 링에 올라가 심판관 역할을 하지 않았던 건 한 켠의 이야기만 들은 것이 전부이기도 하고, 정을 어겼다 할만큼 직접적이고 심각한 사안은 아직 없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건, 잘 알지 못하는 제3자, 그것도 그들의 상사가 개입하게 되면, 당시엔 특별 할게 없었던 각자의 행동의 근거를 만들어내기위해 험담과 폄하, 편가르기로 상처를 더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을 이미 수차례 경험 했기 때문이다.


얼마엔 이번엔 임신한 총무팀 대리 의 눈물까지 쏙 빼놓아 기록을 갱신하는 그 다.


회사의 평범한 직장인들의 바람은 그저,

오늘 하루도 평안히-

일도 평안 사람도 평안, 그저 고요한 공기를 원하는 한 가운데 모글리가 폭풍의 눈처럼 들어 와 있었다.


덕.분.에,?

그가 실무자로 진행하고 있는 전시회의 출장이 확정 되었을때, 팀원 중 아무도 함께하려 하지않았고, 엉뚱하게도 전혀 연관도 없는 옆 팀의 나에게 필리핀 출장 티켓이 주어졌다.


(갑자기? 왜, 나?)


"너가 제일 아무 생각 없으니까."


팀장의 말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그리고 출장이라면 난 좋아.

필리핀은 더 좋고.



님아, 그 입을 닫아주오


이번에도 단벌신사.

출장에 여러옷은 필요없다.

작업복과 갈아입을 속옷, 잠잘때 입을 옷. 챙기다 보니 기내용 14인치 캐리어 하나면 충분하다.

가벼움 그 자체인 캐리어를 보고 공항 입국장 먼 발치에, 먼저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던 태수가 뛰어온다.


-뭘 뛰어.


"과장님! 캐리어 이게 뭐야?. 짐 안가져가요? 아 쪽팔려"


다른 사람한테는 그러지 않으면서도 꼭 나한테는 반말과 존대를 섞는다. 물론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만이지만. 오히려 주변에서 깜짝 깜짝 놀라도 내가 굳이 그에게 따지고 넘어가지 않는건, 어차피 관계에서 나이는 크게 상관없다 생각하는 나의 성격 탓이도 했기 때문이다.


"왜 뭐가"

"아니 과장이나 되가지고 이 조그만 화장가방 같은게 다에요? 대단하다 증말"

"너야 말로 가방이 왜 그렇게 커"

"옷도 있고 책도 있고 가져갈 게 많지"

"너가 책을?"

"왜, 난 책 보면 안돼요?"


궁금해하지말자.

프라이버시 까지 들어갈 생각은 없다.


각자 수속을 밟고 각자 알아서 티켓을 끊자고 하는데도, 기어코 따라와 옆자리를 발권한다.


"와 필리핀 진짜 오랜만이네"


항공권과 휴대폰을 앞주머니에 넣고는 잘 준비를 하는 내 옆에서 잔뜩 들떠 어린아이 같은 모습의 그를 듣는다. 대답은 하지않고 눈을 감았다.


"과장님, 필리핀 가본 적 있어요?"

"왜"

"왜가 뭔 왜야. 나 필리핀에서 살았었거든"


필리핀 하면 나도 한 추억 하지만, 맞장구를 치면 왠지 끝나지 않을 대화가 될까 대꾸를 참는다.


"아, 나 필리핀 살았었다니까.! 장사했어. 아니 안해본 일 없이 다했지... 와..진짜 오랜만이네.."


이미 눈을 감고 있는 나의 팔을 흔든다.


"아 왜에-"

"과장님 아 왜 대답 안해줘!! 대답 해줘 나 심심하단 말야"

"필리핀 좋았겠다"

"아이씨, 장난해? 됐어. 자요 자"


다시 눈을 감는다.


-이 아이랑.. 전시 잘 끝낼 수 있겠지?...


몇 시간후, 우리는 이내 잔뜩 녹이 낀 전시품, 기계 앞에서 얼어붙은 듯 서 있다.

이제야 그의 하루종일 떠들던 입도 조용해진다.


"하... 이게 뭐에요 대체... 하..어떻게 보고해... "


참가 업체의 담당자는 한숨을 연달아 쉬며 내일 선보여야 할 전시품을 보며 어쩔 줄 몰라한다.


"저.. 이건 저희가 어떻게든 보상 처리 해드리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지금 보상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내일 전시는 어떡하냐구요. 방법 있어요? 이 녹슨거 다 어떻게 해 정말..."


며칠째 비가 왔다더니, 겹겹이 포장했던 박스 사이에도 비가 새어 들어가 결국 기계에 녹이 퍼진듯 하다.


보통 일이 아니네.. 하는데

앗! 갑절은 안절 부절 해지는 그녀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 가방이 없어졌어요.."


느낌이 온다.

진짜 큰 일은 지금 이순간.


어떡해 어떡해 발을 동동 거리는데 나 역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럽다.


"거기 여권이랑 돈 다 있는데에.."

이제 거의 울음이 터지기 직전인 듯 하다.


"제가 찾아 드릴께요"


-책임지지 못할 말 하지마

급하게 그의 발을 밟았음에도 아랑곳 없이 태수는 말을 잇는다.


"일단 진정하시고 여기 계세요, 제가 CCTV 확인하고, 어떻게서든 찾아볼께요"


-책임 못져.

나는 확신했다.


이 넓은 전시장에 , CCTV 가 있다 한들, 이미 가져간 가방을 무슨 수로 회수 할꺼야.



당신이 잠든 사이에


숙소로 터덜 터덜 돌아가는 길의 발걸음이 너무 무겁다.

이번 출장은 이미 망한것이나 진배없다.

함께 전시장 시큐리티 사무실을 찾아가 CCTV 를 확인했지만, 역시나 필리핀의 사정대로 그저 CCTV 만 달려 있을 뿐 아무 녹화가 되어있지 않다고 한다.

태수는 뭐든 해보겠다며 자리를 떴고, 나는 한시간여 전시장 주위를 빙빙 돌며 안면없는 범인을 찾아보다가 숙소로 발걸음을 돌린 상태였다.


-뭔 수로 찾을 건데.


이 와중에 배는 고프다.

시간은 의리가 없으므로-


탁, 소리나게 작업복을 소파에 벗어던진채 , 햇반을 돌린다.

트렁크를 열어 주섬주섬 싸온 일회용 반찬 깻잎과 무말랭이를 꺼내면서 다시 중얼거려 본다.


-에휴, 니가 뭔수로....그런데... 돌아는 오겠지?


'대서특필! 필리핀으로 출장온 한국인 20대 남자 행방불명!'


이미 뉴스를 확인하고 경찰서며 병원이며 찾아다니는 상상에 빠져 허우적댄다,

아..일 보다는 사람이 우선인데....하다가 어느순간,

자고 있다.


부스럭 부스럭, 하는 소리에 잠을 깨보니,

태수가 유령 같은 몰골로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다.


"어? 태수.. 지금 몇시야"

"아? 깨웠어요? 죄송해요 방에서 주무시지 왜,,"


태수가 방 두개짜리 꽤 넓은 단독아파트지만 무척 싼 값에 숙소를 구했더랬다.

그리고 난 거실에서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밥만 처먹은 채 퍼질러 있었다.


"아니.. 너 못올까봐.."

"잉?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장난없네 과장님"


"어,, 밖에서 뭐했어,, 밥도 안먹고.. 얼른 너도 씻고 자. 나 들어간다."


"찾았어요 여권"


분명, 반쯤 감긴 눈이 차마 떠지지 않았었는데 강제로 동공 확장 된다.


"그게 뭔 소리야?"


"찾았다구."

우걱우걱 밥을 집어 넣으며 말을 잇는다.


"나 여기서 살았다 했잖아, 그때 별의별거 다했어, 그러면서 당연히 조폭도 알고 깡패도 알고"

"조폭이나 깡패나 같은거 아니야? 그런데, 그게 무슨 소리야, 니가 어떻게 찾아"

"전에 알던 형한테 부탁해서 깡패 풀었지, 걔네 다 연결되 있어서, 여권 같은거 훔쳐다 팔 때 다 통해통해서 해. 여권도 한개 훔쳐 파는게 아니고. 하루종일 그거만 훔쳐다가 한 장소에서 만나."


와 우...

그건 또 무슨 세계냐...

왜 자꾸 조용하게 살고 싶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거냐고...


다음날, 날이 밝자 마자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준비 되는 대로 전시장에서 보자고 전했다.

못해도 이십분은 걸어야 하는 거리라 태수와 함께 가고 싶었지만, 아무리 불러도 대답없는 그의 방을 열었을땐, 침대위에 책 한권만 덩그러니 놓여있고 이미 나간 뒤였다.


시계를 보니 이게 겨우 7시.


제목은 '어린왕자'.

진짜 보내, 책.


-근데, 얜 또 어딜간거야. 말도 없이..


걷다가 뛰다가 하여 전시장에 도착해보니, 전시 오픈 준비를 다 못 끝낸 업체들이 와서 분주히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곧장 태수의 뒤통수가 보이는 녹슨기계 부스로 걸음을 재촉했다.


부스에는 이미 어제와는 달리 무척 안정되어 보이는 담당자가 카다로그를 테이블에 얹으며 전시 준비를 하고 있다.


-아? 녹이 다 없어졌네?


기계가 깨끗해져 있다.


"어머, 과장님 안녕하세요. 정말 빨리 오셨네요. 아.. 정말 감사드려요, 여권도 찾아주시고 , 기계도 다 닦아 주셔서 진짜 다행히 오늘 전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태수를 돌아본다.

아래 쌓여 있는 박스에서 카다로그를 꺼내며 담당자를 도와주던 태수가 눈을 마주치고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사장님.


일 잘하면 왕이다.



보고싶은 대로 보인다


전시 준비를 마저 도와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풍경은 어제와는 사뭇 다르다.

아니, 180도 다르지.


"야... 너 대박이다 야. 나 깜짝 놀랐다."

"기본이죠오! 원래 이렇게 일 해야 하는거 아냐? 남의 돈 먹기 쉽나"


겸손은 어제 깡패에게 넘긴 듯 하다.

그래도, 새벽부터 기계 닦는 일 같은, 하라고 해도 아무나 선뜻 나서지 않을 것 같은 일을 한 아이는 제대로 생색 낼 줄도 모른다.


왠지, 조금더 우쭐해도 된다고 추켜 세워주고 싶다.


"아니, 기계는 언제 닦았대"

"어제 걔들한테 WD40 구해오랬지. 걔네 못구하는게 없어, 그래서 새벽에 가서 열라 닦았지"

"너 진짜 미쳤다."


낯간지로운 말을 못하는 나로선 최고의 칭찬을 던졌다.


나 좀 멋있어?-

아니, 재수 없어.-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는 물었다.


-그런데 과장님은 왜 나한테 아무말도 안해?


-무슨말 해야되는데


-아니. 뭐 직원들이 암 말 안해? 다 나 재수없다고 싫어하잖아.


-귀찮아...


-그치, 과장님은 그럴 꺼 같아. 귀찮은 거 안하잖아. 사람한테 관심도 없고.


-보고싶은대로 보이는거야.


-오, 난 어떻게 보였는데?


-안봤어.


-쳇.


-그래도 쌈닭질은 고마해.


-일하러 왔으면 일을 해야지, 일도 안하고 맨날 놀고만 있으니까 열받아서 그런거지 이유없이 그런건 없어어어


-그건 너가 팀장되면 직접 얘기해.


-아씨 나 팀장 언제 달아줄건데에에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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