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의 신
(2) 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고3 어느날, 엄마는 동생이 담배를 피는것 같다고 걱정스럽게 얘기했다.
-너가 잘 좀 얘기해봐, 그래도 걔가 너 말은 잘 들으니까.
그리고 곧 동생방으로 떠밀려 들어간 나는,
담배를 끊으라는 말 대신, 엄마 알면 마음아파 라고만 전했다.
말린다고 될 것도 아니었고, 숨어서 더 많이 피고 오지나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시작도 끝도 결국 본인에게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도박에 사로잡혔던 그 순간 조차도.
바카라 알아?
그는 사십여분을 달려 한적한 곳에 위치한 한 카지노로 나를 데려갔다.
입구에서부터 카지노가 뿜어내는 기운에 나는 이미 압도되었다.
조명은 비할데 없이 화려하나 눈이 피로 하지 않은 적정의 조도로 장내를 환하게 하고, 쉬지않고 띠링띠링 울려대는 슬럿의 소리들은 거슬림 없이, 오히려 소리에 맞춰 심장을 뛰게 했다.
따뜻한 불빛 아래 규칙적으로 배열 된 듯한 빨강과 녹색의 조화!.
그리고 한편으로, 어딘가에선 생생한 욕망이 계속 끓어오르는 것 같은 미묘한 느낌.
"와..이런데가 카지노? 잠이 싹 사라졌어요"
두리번 두리번 하며 중얼 거린다.
"자지 말고 게임하라고 산소를 계속 넣어주거든"
(아.)
"창문도 없잖아. 시간 가는 줄 모르라고.훗."
(그렇구나. 과학이구나)
"너 바카라 알아?"
여러대의 머신과 테이블을 지나, VIP 라고 적힌 별도의 공간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술의 신?"
"그건 바쿠스 겠지."
"아, 네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는 손님은 하나 없이 잘생긴 딜러 혼자 지키고 있는 테이블로 다가간다.
쓰윽-
자연스럽게 가져온 돈을 딜러 앞에 밀어 놓는다.
딜러는 한장한장 테이블에 지폐를 놓고, 곧 금액에 맞는 칩들을 가지런히 세운다.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딜러는 한 손을 들어 누군가를 부르는 몸짓.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곧 그의 등 뒤로 다가온다.
게임 오픈을 허락받은 딜러는 칩을 사장님 쪽으로 밀어주며,
"굿 럭"
탁탁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친다.
영화 '도신' 속 한장면 같은 셔플이 펼쳐지고, 나는 영화 속 구경꾼 중 하나가 된 듯하다.
딜러는 카드 한장을 뽑아 사장 쪽으로 내밀지만, 사장은 내쪽으로 고갯짓을 한다.
딜러는 곧 '너가 할래?' 눈빛으로 나에게 카드를 내민다.
긴장하지 말라는 듯이, 빙글 미소지으며.
"꽂고 싶은데 꽂아봐"
사장이 말한다.
난 카드를 받아들고 가운데 어느 즈음에 카드를 쑥-
그는 꽂힌 자리를 갈라 다시한번 카드를 섞고는 카드통(슈박스)에 집어넣어 탁탁 가볍게 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의 손을 앞 뒤로 펼쳐 보여주고는 한손은 슈박스에 한손은 테이블에 올린다.
(와. 이런게 전문가야...멋있어.)
테이블에 카드가 깔리자 사장은 뱅커라고 쓰여있는 곳에 칩을 잡히는대로 올려놓고, 자세를 바로잡는다.
"플레이어 윈-"
딜러는 깔려있던 칩을 쓸어간다.
그렇게 몇번을 열심히 카드와 손짓을 쫓다보니, 오늘도 여지없이 슬슬 잠이 오기 시작한다.
하-품.
"지겹지? 너도 해볼래?"
그는 $25가 박혀있는 녹색칩 열개를 엄지와 중지로 집어 내앞으로 옮긴다.
"너도 걸어봐"
"저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데요"
"그냥 너가 놓고 싶은데 놓으면 돼"
뱅커와 플레이어라고 써 있는 두 곳을 번갈아 가르키며,
"카드 까서 합이 9에 가까운 쪽이 이기는거야. 너 산수하지?"
산수라...
조심스레 녹색칩 하나를 들고 문질문질 하다가 플레이어쪽에 살짝 내려놓는다.
딜러가 또다시 빙긋 웃으며 눈을 맞춘다.
"자, 고고"
사장은 본인이 올려놓았던 칩 옆에 칩 하나를 나란히 놓는다.
"헤이, 하나는 딜러 당신꺼야, 초심자의 행운, 가보자고-"
그리고는 테이블을 탕탕-
딜러는 싱긋 웃으며, 오른 팔을 들어 왼쪽에서 부터 오른쪽으로 부드럽게 허공을 가른다.
승률
시계를 보니 약속한 6시가 맞긴 하다.
막 해가 떠오르는 6시.
팔도 다리도 한근은 되는 듯 무겁게 끌고 VIP 룸을 나와 로비로 빠져나간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했어 정말. 이렇게 늦게 까지 될 줄 몰랐네.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그 시간 다 제 돈 인걸요..)
집에 도착한 나는 바로 침대에 풀 썩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침대에 풀 썩 쓰러지는 날은 계속 되었다.
"카지노 갈래?"
"네, 네"
하던 대화는,
"오늘 게임하러 가면 안돼요?"
"오늘, 또?"
라는 대화로 바뀌었다.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카드 두장까지는 기본으로 받고, 때에 따라 한장을 더한 세장의 합이 9에 가까운 쪽이 승.
인물이 그려져 있는 카드(일명 10짜리)는 0으로 카운트 되고, 에이스는 여기선 숫자1.
한슈에 약 70~82회 정도의 승부가 일어난다.
한 게임을 할때마다 평균 75회의 희비와 전율이 교차 하는 것이다.
실적싸움도, 갑질도 없는 그곳에서 난 진심으로 바카라에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잠을 더 줄이더라도, 바카라를 제대로 알아보고 싶어졌다.
관련 영상을 모두 찾아보고, 책도 사서 읽었다.
바둑에는 복기가 있듯, 내가 하는 모든 게임을 기록하고 분석했다.
카지노에서 매일 마주치던 중국인들을 통해 그림을 그려 규칙을 읽어내는 법을 배웠다.
어느새 한 판 한판 그림까지 그려가며 패턴을 분석, 승률을 높여가고 있었다.
하지만 카지노를 이기기 위한 진짜 필승법은 다른데 있었다.
-바로 욕심내지 않는것.
하루 목표액은 오백불. 물론 그 이상 딸때도 있었지만 약 4시간의 게임 후 성적이 오백불이 넘으면 바카라는 더이상 하지않고 간단한 슬롯에나 어슬렁 거리며 시간을 떼웠다.
또한, 연속으로 패하거나 본전에서 깎이는 한 판을 하고 나면 역시 미련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한 게임, 한게임마다 얼마를 잃었고 얼마를 땄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카지노 문을 나올때 내가 얼마를 가지고 나오느냐가 중요했다.
나는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을 하고 있었고,
그것이 나와 카지노의 승부에서 나의 승부수. 라고 생각했다.
(비장하게도-)
그렇게 산타 모자를 쓴 딜러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함께 카운트다운을 하며 새해를 맞았다.
베가스에서의 4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휴가가 끝나는 시점
-과장님, 언제오세요. 보고싶어요... 팀장 때문에 다들 죽을라해요...
바로 아래 직원이었던 은희대리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한다.
하지만, 답신을 하지않고 휴대폰을 닫는다.
아린과 늦은 점심을 하는 중 이었다.
"꼬, 정말 한국 안갈꺼야?"
나는 파스타를 돌돌 말아 입안에 집어 넣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잇, 묻었다.
"너 정말 게임만 하면서 살라고?"
"응. 안돼? 흐흐"
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철없는 듯 웃어버린다.
팀장은 가끔씩 미국 에서 열리는 전시 출장건에 알바로 뛰어주길 요청했고,
나는 그렇게 카지노를 출근하는 것 외에도 회사와의 끈을 완전히 놓진 않고 있었다.
"여기선 누가 뭐라는 사람 없이 너무 좋은데. 난 이렇게 살았어야 할 팔자인가봐"
"누가 좋아서 맨날 일하냐. 다 그냥 하다보니 하는거지."
아린은 어린나이에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야 했고, 겪어야 할 스트레스도 훨씬 많다.
그렇게 일찍 어른이 된 그녀가 나는 친구로써 늘 든든했다.
하지만 때로는 내가 바보같아 보이더라도 그냥 이해받고 싶을 때도 있다.
이곳에서의 날들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누가 널 말리겠냐.."
그녀는 그렇게 집 키를 맡기며 한국으로 잠시 돌아갔고, 나의 카지노 사랑은 계속 되었다.
후- 후- 후 -
나는 뒤집어진 카드 한귀퉁이를 살짝 들어올려 카드 속에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이미 오픈되어 있는 한장의 카드는 숫자 5.
지금 잡고 있는 카드의 모서리를 살짝 들었을땐 분명 무늬가 두개씩 찍혀 있었고, 가운데 무늬 하나만 없으면 숫자4로 나는 내츄럴 승을 잡을 수 있다.
바로 뒤집으면 볼 수 있는 카드를 왜 이렇게 공들이냐고?
카드는 잘 쪼으면 바꿀 수 있다.
물론 내가 만들어낸 말 이다.
후-후-
볼에 바람을 잔뜩 넣고 불면서 카드를 귀퉁이에서 부터 서서히 들어올린다.
그리고 이내 카드를 확 뒤집어 위로 날려 버린다.
"뱅커 에잇, 플레이어 나인, 플레이어 내츄럴 윈-"
한손으로 테이블을 탕치며 기쁨을 만끽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오늘은 멀리, 일본까지 알바를 가야한다.
비행기 시간에 늦지않게 서둘러 칩을 챙기는데, 딜러가 아쉬운 눈빛으로 나를 쫓는게 느껴진다.
see ya-
입모양으로 응답하며 빙글 미소지었다.
-놀고, 가끔 일하고. 너무 좋은거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
도쿄 전시장-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 방앗간에 들렀다.
스타벅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내리는 햇살에 몸을 맡긴채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다.
-오랜만인데, 피-스 한 느낌.
하며 핸드폰과 함께 주머니에 있던 칩 두개를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이런건 누가 만들었을까?
이제 칩만 봐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두두두두,
(응?)
건너편 건물에서 우르르 직장인 한무리가 쏟아져 나오는게 보인다.
일본 특유의 직장인 문화가 있다고 하더니, 정말 모두가 검정 정장 차림이다.
마주보며 깔깔대기도 하고 오버스럽게 고개를 젓기도 하는 그들도 생기넘쳐 보인다.
낮이라 햇살에 반짝여 그런가?
-소속감 때문이겠지.
불과 얼마전만해도 나도 저들처럼 한 곳에 소속되어 있었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됐었다.
특별한 자극도 없이, 매일 보는 얼굴들과 시시한 농담과 커피를 나누고,
어느날은 예기치 못한 칭찬에 웃다가, 어느날은 마음과 다른 실적에 울다가,
그렇고 그런 보통의 일상이 내게도 있었다.
-보통의. 일상.....?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일상. 보통의. 평범한. 일상.
뭐지? 무언가 두고 온 것 같은 이 느낌..?
아무도 내게 강요하지 않았지만, 문든 떠오른 단어들의 연결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
-나, 돌아가고 싶다.
진정 아무런 특별 할 것 없는, 늘 똑같이 반복되던 그런 하루 였을 뿐이었다.
돌아갈 곳
떨리는 손으로 사표를 내민지 6개월 만에 나는 다시 내 자리로 출근했다.
퇴사가 아닌 휴가야-
했던 팀장의 말은 지켜지지 못했고, 퇴사후 재입사로 처리되었다는 건 뒤는게 안 사실이다.
"과장님, 잘 쉬었어요? 살 찐거 같아요"
오매불망 기다린다던 은희가 반갑게 맞아준다.
"쉬기는- 계속 일했어 큭"
"아 정말요? 장기 출장가셨단 말이 맞나보네요."
"응? 응. 그렇지. 장기출장."
끝이었지만, 끝인 줄 모르고 시작한 미국행.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이 나를 여행자로 만든 것은 아닐까.
여행자의 시점은 생존을 겪고 있는 삶 과는 치열함이 다르다.
그래서 난 모든 순간 즐길 수 있었고, 또한 내 의지로 마감 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시점 이후 여간해선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직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진심에서 나오는 여유는 장기근속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나를 다시 받아준 데 대한 내 나름의 보은 이기도 했다.
오늘 안되면, 내일 하면 된다.
오늘 슬프면, 내일 웃으면 된다.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 이다.
나의 승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