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에서 생긴 일
(1) 편의 내용과 이어집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너가 잘 모르겠다면, 내가 직접 너 앞에 펼쳐 보여줄께.
알고, 보듬고, 사랑해봐.
너와 다른 모든 인생도 충분히 아름다울 껄.
다만, 그 속에 발을 담궈보고 싶다면 - 충분히 숙고 해야 할꺼야.
알바 또는 일일 용역
"나 이제 슬슬 일을 구해보려고"
채워질 기약 없이 줄어드는 잔고를 확인한 베가스의 오후였다.
"그래에"
드라마가 아니다.
현실 친구는 그다지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모니터만 보며 일하는 아린에게 난 또다시 손바닥을 내밀어 보인다.
"보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짓물렀던 나의 피부는 온데간데 없고 거뭇거뭇하니 흔적만이 남아있다.
"어떻게, 맨날 잠도 안자고 술만 먹고? 진짜 미친거 아냐?ㅋㅋ"
아린은 깔깔댄다.
정말 이곳에 도착 후 2주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달렸다.
술로 달리고 노래로 달리고, 낮과 밤은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인을 알 수 없다던 나의 병은 나아가기 시작했다.
마음으로 부터 나오는 치유의 능력은 상상했던 그 이상이었다.
한국 의사는 명의다-
"손 나았으니 접시라도 닦을까봐"
나도 노트북을 키며 말한다.
"너한테 접시 안 맡기고 싶을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
아린은 의자를 빙글 빙글 돌리며 무심히 덧붙인다.
"내가 아는 사장님 한분이 청소할 사람 구한다는데, 그거라도 해볼래?"
"청소?"
"무료 봉사래"
턱 밑에 난 작은 여드름을 더듬으며 그녀를 노려본다.
"ㅋㅋ 농담농담. 그냥 오고 싶을 때 오고, 가고 싶을 때 가도 된대. 그런데 시급이 8불이야."
"8불? 높은거야 낮은거야? 그럼 나 24시간 있으면 곱하기 24야?"
"아저씨 집에서 24시간 뭐하고 죽칠래?"
무조건 해!
이곳에서 나도 할 수 있는 일 이 있다는게 기뻤다.
문득 제발 책상 좀 정리하라고 잔소리 하던 정과장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떨쳐버린다.
그리고 나만큼이나 행동력 빠른 아린 덕분에, 곧바로 다음날 출근이 확정되었다.
정체모를 사장님
버스에서 내려 보도블럭 과 차선의 경계를 아슬 아슬 밟으며 두팔을 벌리고 한 줄 걷기를 해본다.
"아, 저기였구나.."
청소를 원하는 곳은 다름아닌 그의 멘션.
햇살 좋은 날 나는 보라색 티를 입고 출근하며 다시 돈을 번다는 기대감에 차있다.
문이 이미 약간 열려 있다.
빼곰 열며 들여다 보는데,
"아 벌써 왔어요? 내가 좀 늦었네"
깜짝-!
나를 스치고 지나가 집으로 성큼 들어가는 아저씨.
셔츠 부터 바지까지 올 블랙 차림이다.
"오늘부터 청소한다는?"
꾸벅,
인사겸 동의를 한다.
집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구조 인데다가, 올 블랙 데코.
그리고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여러대의 모니터가 벽에 붙어 있고 주식 차트같은 것이 보인다.
-고양이도 걷다 미끄러질 것 같이 깨끗한데,,, 청소를?
반질 윤이 나는 대리석 바닥과 대리석 식탁.
그 식탁에 열쇠를 탁 던지듯 놓은채 , 냉장고를 열어 생수 한병을 딴다.
그리고 한모금 들이키고 나서야 나를 돌아보는 사장님.
"학생은 집안청소만 하면 돼. 다 하고 나면, 가고 싶을 때 가면 돼. 난 거의 없으니까 신경쓰지말고."
-정말 신경쓰이는 발언인데요...그리고..
"저, 학생은 아니고요,,"
굳이 나이까지 밝히진 않는다.
사장은 생수 한병을 마저 비우더니 다시 열쇠를 들고 문 쪽으로 향한다.
"아 저, 무슨 청소.. 어떻게.."
"어? 저기 안쪽 보면 청소기 있어, 그거 돌리고, 어 , 바닥에 떨어진 동전이나 주워서 올려놔, 그리고 나갈때 문자 해요"
멀뚱히 서 있는 나를 혼자 남겨두고, 그렇게 문도 닫지않고 나가버린다.
-청소.. 30분이면 끝날 것 같은데...그냥 생각말고 하자.
그렇게 시키는대로 나는 아침에 출근하면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동전을 주워서 선반에 올려놓았다. 사장은 정말 얼굴 한번 보기 힘들었고, 나도 말없이 청소만 했다.
이러다 하루 8불씩 벌겠네.. 싶었지만,
특별한 대안도 없었고,
집에 간다고 할 일은 더욱 없었다.
그냥 청소를 하고, 가끔은 창문을 바라보며 멍을 때렸다.
그렇게 사일 째 반복되던 어느날.
막 청소를 끝내고 메모지에 도착 시간과 끝난 시간을 적은 뒤 나가려는 중이다.
갑자기 문이 확- 열리며 사장이 들어온다.
아, 깜짝아-
집주인 보고 놀랬다.
"어? 아직 있었네?, 잘됐다"
그는 들고온 두툼해보이는 갈색봉투를 툭 내려놓으며 말한다.
"학생 아니라고 했었지? 나 나가야하는데 안바쁘면 같이 갈래?"
"어디를요?"
냉장고를 열어 빨간색 말보로 담배를 꺼내 문다.
(저게 왜 저기서 나와?)
"어디? 카지노. 카지노라고 알아?"
"아니요. 전 괜찮습니다."
후- 담배연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다시 내뿜는다.
웬지 시원한 향이 나는 것 같다.
-나? 아무나 가잔다고 모르는 길 따라다니고 그런사람이 아닙니다.
"갔다가 6시 되기전에 올건데,. 다 시간당 페이 해줄께."
빛보다 빠르게 지갑이 든 작은 파우치를 들며 대답한다.
"지금 출발하면 되나요?"
겨우 세모금?
그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 둘둘 말린 봉투를 옆에 낀다.
"가자"
"네,"
-그런데 ...카지노에선. 뭐하고 놀지?
(3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