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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저씨(최종)

저도 잘 지내요.

by 아는개산책


(1,2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우리의 시간


나는 이미 달달히 취했다.

원래 고깃집 식당은 환기가 안되는가?

자욱한 연기에 눈이 반쯤 감기지만, 이쯤 되면 연기 때문인지 알코올 때문인지 분간이 어렵다.


그래도, 술은 마음을 들뜨게 하니 업체 담당자들의 표정도 달떠있고, 업체들 기분이 좋으면 주관한 협회도 기분이 좋아지는 법.

성공적인 만찬회다.


뿌듯해하라고 성희과장에게 말하고 싶은데 아직도 이 업체 저 업체 손에 끌려 한잔씩 더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바쁘시네. 그래도, 잘됐어요. 밤새 걱정하더니.


마르고 이쁜 아가씨는 상처받을 일 없을 것 같으니, 그만 가봐야겠다 싶어 시계를 보는 순간.


그 조용하고 평화로운 내 순간이었다.


"아우씨, 조선족 새끼가, 내가 너 못 죽일 거 같아?"


TV는 없다.

라이브 였다.

바로 옆자리.


오과장은 소주병을 쳐들고 쳐일어나 있고, 아저씨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 소주잔만 만지작 거리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자리가 현관문 바로 앞으로, 업체들 테이블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 저 소주병 휘두를 수 있을까? 난 소리를 질러야 할까?


아저씨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 현장 목격자 되는거야?


" 어우 오과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내일부터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 드리겠습니다"

아저씨가 차분한 말투로 고개를 숙인다.


"아니, 내가 못 죽일 거 같냐고? 어?"


탄력 받아 언성을 높이는 오과장.

혀는 꼬여 제대로 알아듣기도 힘들다.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나 알까?


아저씨는 테이블에 얹어 놓았던 검은색 파우치를 집어 들고 다시 인사를 하려한다,


그떄다,

어우씨- 소리와 동시에 소주병을 뒤로 젖히는 오과장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을 잡아야해-


-내가 잔이라도 깨서 소리내야겠다!

싶어 나도 소주잔을 조심스레 쥐어보는데,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오과장님!"

분명 높지고 크지도 않은 목소리지만 단호하고 날카롭게 말하는 성희과장.

어느새 오과장 뒤에 서서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


(딸국)

술이 다깬다


"미쳤어요? 업체들 다 있는데서 뭐 하는 거예요?"

다시한번 낮은 목소리.


그제야 정신이 드나 보다. 오과장은.


" 아 과장님, 죄송합니다 그게 아니고 아휴.. 제가 오늘 업체분들 보기 죄송해서."


" 아무도 컴플레인 안 한 일 가지고 혼자 왜 그래요? 지금 많이 취했으니 내일 얘기해요"


이 정도면 사건 현장이 되진 않겠다.

나도 조용히 쇼핑백을 집어 들고 허리를 반으로 숙인 채 문 밖으로 향한다.


"하..."

시원한 밤공기가 확 밀려든다.

이래서 사람은 환기가 필요하나-


삐삑-

맞은편 차에 라이트가 번쩍 들어온다.


(아저씨?)


쇼핑백을 움켜쥐고 자갈밭 위를 뒤뚱 뛰뚱, 차로 뛰어가본다.


다행히 창문이 열리고,


"주임님, 지금 들어가십니까?"


"네, 네에."


"타세요 태워드릴께요"


웃으며 조수석에 놓은 파우치를 뒤로 옮기는 아저씨.

망설임 없이 올라탄다.


"많이 놀라셨죠?"


"괜,찮으세요?"

걱정스레 되물었다.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씩 웃으며 다시 앞으로 향하는 얼굴.


"괜찮지요. 이런 일 저런 일 있는 거예요"


끄덕거리기만 할 뿐.


"저는 바로 방에 가서 짐 좀 집에 옮겨놓고 오려고요. 괜찮으시면 방에서 맥주 한 잔 더 하실래요?"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끝까지 나를 변명으로 삼지 않은 아저씨에게 어떤 동지의식이 생겨난 건지도 모르겠다.


업체와의 술자리도 잘 가지 않는 내가 내 옆옆 방에 위치한 아저씨 방을 따라 들어가고 있다.


방은 깔끔했고 짐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저씨는 괜히 문을 닫지 않고 활짝 열어 고정해둔다.


"집에서 왔다 갔다 해도 되는데, 오과장이 새벽부터 밤까지 언제 부를지 모른다고 잡아놓은 거입니다"


고개만 끄덕이며 작은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았다.


"저는 겉옷만 좀 갈아입고 올게요, 아까 술이 튀어서"


옷장 쪽으로 가는 아저씨의 뒤로 시선이 쫓아가는데 철없는 생각이 든다.


-점퍼 벗으면, 혹시 팔뚝에 잉어 한마리.?


다행히 반팔 안에 흰 생살이 보인다.


차칵-

맥주를 따서 혼자 홀짝 해본다.


잠시 후 앞으로 와 의자를 빼며 아저씨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아저씨가 괜찮으세요? 왜 그걸 다 참구.(계셨어요)."


"저는 괜찮지요. 오과장도 취해서 그런 겁니다."


"개. 던데."


"하하 아니요. 그분도 누군가의 아버지에요"


말이 왜 그쪽으로 가나요.


"잘하고 싶은 마음이 급하면 그럴 수 있어요. 하하"


예상치 못한 답변에 할말을 잃는다.

맥주나 마시자.

그도 따라 맥주를 들이키더니 곧, 느린말투로 질문한다.


"주임님은, 제가 뭐 하나 물어도 될까요?"


-뻔하지. 나이?

사람들은 왜 처음보면 나이부터 묻는지.


네, 끄덕이자,


"주임님은 꿈이 뭐입니까?"


나도 모르게 끔뻑 끔뻑 한다.


그는 그저 미소 지으며 천천히 맥주를 들어 올린다.

내게 시간을 주는 거다.

대답할 시간.


"저는. 글 쓰는 사람이 꿈이었어요."


하고 말하는 내 팔에 소름이 돋는 게 느껴진다.


-왜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지?


중학생 때, 서로 넌 꿈이 뭐야 하던 철없던 시절 말고는 누구에게도 얘기해 본 적이 없다.


입으로 꺼내버리면,

꿈을 쫓지 못하고 현실에 타협한 내가.

서글퍼질 것 같았었다.


나는 그의 따뜻한 미소를 물끄러미 본다.


"그런데, 이 일도 좋아요. 글은 언제든 쓸 수 있으니까요. 나이를 먹어도."


이제 묻지도 않은 말도 덧붙일 줄 안다.

그것도 따라 웃으면서-


조용한 시간을 내어주던 그가 새 맥주를 차칵-뜯으며 말한다.


"주임님 마음엔 이야기가 많아요. 저는 그게 보입니다. 아마 재미있고도 깊은 글을 쓰실 수 있을 겁니다"


아저씨의 말이 더 이상 느리게만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운율을 가진 시처럼 쉬이 떠나지 않고 오래 머문다.


의도가 뭐라도 좋다.

깊게 파묻혀 있던 내 이야기를 꺼냈고

처음 응원받았다.


민망함에 맥주만 들이켠다.


"주임님, 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 내일 또 일 가보셔야 하잖아요. 잠깐 저랑 드라이브하실래요? 집이 여기서 가깝습니다, 짐만 놓고 다시 올꺼라서요."


평소의 나라면 절대 따라가지 않을 귀찮은 제안이다.

하지만 술이 달큰하고, 마치 진짜 작가의 심상이라도 된 듯이 하늘의 별도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의 집은 정말 멀지 않았다.


입구의 하얀 철문이 열리고도 한참을 운전해서 들어가는 중이다.


"무슨 집이 이래요? 이거 다 아저씨 거예요?"


"하하, 아니지요, 여기는 그냥 타운입니다. 제 집은 저 안쪽에 있어요. 조금만 가면 됩니다"


멋 모르는 내가 봐도 고급 차량이 집집마다 주차되어 있는 고급 주택가다.

그렇게 멈춰 선 2층짜리 주택 앞에는 슬쩍 봐도 고급져 보이는 외제차 세대가 나란히 줄지어 주차되어 있다.


"아저씨, 뭐 하는 사람이에요?"

갑자기 진지한 물음이 된다.


"하하하"


단순 여행사 가이드는 아닐 것이다.

그마저도 오늘 짤린 걸로 아는데-


"잠깐 들어와보실래요?"

"아니요, 전 여기서 기다릴래요"

"안에 물고기도 많고 강아지도 있습니다. 구경하고 계시면 됩니다"


이토록 깜깜한 밤에.

수조 안에.시체.?

실종. 신고?


"괜찮아요 전 진짜 그냥 차에 있을께요"


"아 네 그럼 제가 더 서두르겠습니다"

다행히 환히 웃으며 운전석 문을 닫고 짐을 챙겨 집 현관으로 걸어가는 아저씨.


-난 언제쯤 이런데 살아보나.


그런데, 대체 아저씬 뭐하는 사람이지?



떠나야 할 시간


끄응- 일어나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지만.

마지막 날이니만큼 할일이 많다.

그래도 조금만 더-

눈만 껌벅껌벅하며 이불 끝자락을 잡은채 천정만 바라본다.


"고주임, 어젠 뭐하느라 늦게 왔어? 식당에서도 일찍 나가더만."


기척을 느낀 성희과장이 말을 건넨다.

그녀는 예뻐지는 마법을 부리는 중이다.


"네. 제가 그랬나요."

(비몽사몽이라고 생각해줘)


톡톡

분주한 손놀림으로 베이스 화장을 마치고 파우더가 시작된다.


연예인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단계가 많아.


"나 어제 정산하고 나오는데 식당 주인이 그러더라"


"안깎아준대요?"


"하하 아니이, 그 우리 조선족 가이드, 그사람 가이드 아니래"


(여행사 사장이었어. 역시.)


"작가라는데?"


이불을, 말 그대로 하이킥 하며 일어났다.


"놀랐지? 나도. 그것도 무슨 상 받은 작가라던데. 그리고 엄청 부자래. 가이드는 친구가 부탁해서 이번에 잠깐 봐준거라더만"


눈만 깜빡깜빡하며 다음말을 기다린다.


"사람도 좋고 점잖아서 시끄러울 일이 없는데, 어제 그래서 식당 주인도 놀랐나봐"


그녀의 얼굴이 점점 하얗고 매끄러워진다.


내가 작가가 꿈이라고 했을때.

웃겼을까?

아니.

진짜 응원이었어.

난 아저씨를 믿어.


"스릴러는 아니겠죠?"

"스릴러? 아니, 그건 모르겠네.왜? 사람 죽이는 이야기가 어울려 보였어?"


깔깔대고 웃다가 눈썹을 망칠 뻔 한다.


-아저씨와 더. 이야기해보고 싶은데. 어렵겠지.


어려웠다.

그날 일을 마치고 공항에 도착할때까지 아저씨는 더이상 전시장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굳이, 묻진 않았다.


-연락처도 모르는데.


해외에서 만나는 인연이란건 다 그렇다.

스치듯 안녕 이기에.

아쉬움이 남는 거겠지.


하지만,

귀국후 며칠이 지나 더이상 그날을 떠올리지 않을 때 쯤, 한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이 이름 뭐지?

알지못하는 옛날식 이름.

메일을 열어본다.



주임님. 잘 지내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짧은 시간이 주임님께도 좋은 추억으로 남았기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주임님을 닮은 예쁜 글을 꼭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저 귀 기울이고 자세히 보고 마음이 시키는대로 따라가 보십시오.

지금 하시는 것처럼요.


멀리서라도 늘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모든것이 고마웠습니다.

보고싶을 겁니다.


-000



마음에 무언가 닿는다.


하지만. 회신하지 못했다.


회신하는 순간,

그리움이라는 단어로 정의 될 것 같았다.


나는. 갈 수가 없는데.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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