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
금세 하늘이 붉은 것 같기도 노란 것 같기도 한, 고운빛으로 물들어가던 어느 오후.
나는 홀로 교실에 남아 담임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다.
-어? 서랍이 열려있네.
급하게 닫으려 했는지 어린아이 손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열려 있던 서랍.
그 사이로 꼬깃 접혀있는 천 원짜리 한 장이 갑자기 눈에 들어온다.
-선생님은 여기 천 원이 들어있는 걸 알고 있을까?
(빨리 닫아. 너 것이 아닌 것을 뭘 생각하고 있어.)
찍-찍-찍-찍-
슬리퍼 끄는 소리가 조금씩 교실 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문 앞에서 소리가 멈춘다.
시간이 없다.
손이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7살, 국민학교 1학년때의 일이었다.
환전
은행 기업용 창구-
소파에 앉아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40번)
빨간 숫자가 찍히자마자, 벌떡 일어나 창구로 다가간다.
"환전하려고요. 엔화로요."
일주일 뒤 일본 출장이 잡혀 있다.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휴대폰을 보는 사이에 친절하게 봉투까지 넣어 전달해 주는 은행직원.
-엄청 어려 보이는데. 열심히 공부했나 보네.
봉투를 받아 드는데 잔뜩 긴장해 있는 직원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힘을 줘야지.
"빨리 처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씩-)
직원도 서툰 미소를 지어 보인다.
모르는 번호
어김없이 칼퇴.
출장비도 받았겠다, 오늘은 편안히 택시를 타고 집에 가야지.
"아저씨 역삼동, 00 오피스텔로 가주세요"
문을 닫고 곧바로 의자 속에 깊이 몸을 묻는다.
너무 열심히 일했는가 몹시 피곤하다.
-지이잉, 지이잉
택시를 타기 전부터 울리던 전화가 다시 울리기 시작한다.
(모르는 번호... 귀찮아.)
받지 않고, 다시 주머니에 넣은 후 눈을 감는다.
(아, 벌써 도착했네.)
도착해서 잔돈을 받아 들고 내리며 다시 휴대폰을 확인한다.
이번엔 문자가 와있다.
+안녕하세요, 00 은행입니다. 오늘 환전하신 금액이 잘못 나간 듯하여 연락드립니다. 보시면 연락 주세요.
(응?)
놀란 마음에 바로 수신번호로 전화를 걸려다 멈칫한다.
그리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며 문자를 보낸다.
+봉투가 집에 있어서 지금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다르면 어떻게 되나요?
실은, 이미 주머니 속에 봉투는 있다. 하지만.
-지이잉.
+아, 그러시군요 불편드려 죄송합니다. 확인해 보시고 혹시 금액이 다르면, 다시 은행으로 와주시면 됩니다. 마감 시간 지나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엥. 이런 일도 있나?
현관문을 열고 바로 닫혀 있던 창문부터 활짝 연다.
하루 종일 갇혀 있던 공기가 조금은 순환이 되는 듯하다.
(일단, 씻자.)
-아, 아니지. 봉투부터 확인할까? 금액을 다르게 줄 리가 없는데.
책상아래 무릎을 세워 앉아 봉투 속 지폐를 꺼낸다.
-두께가 맞는데.
모두 빳빳한 새 돈으로 챙겨준 은행직원의 배려가 새삼 고맙다.
하나, 둘, 셋, 넷,, 어?... 어?...
내가 요청한 금액은 18만 엔. 즉 원화 백팔십만 원 정도.
그런데.
황톳빛 만 엔짜리 열 장이 더 따라 나온다.
-백만 원이 더 왔어.
심장이 쿵. 쿵. 쿵. 쿵.
택시 안
기다리면서 애태우고 있을 직원 생각에 답신도 하지 않고 일단 택시에 올라탔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천둥과 번개처럼 오간다.
-이렇게 돈이 잘못 나가면 그다음엔 어떻게 되는 거지?
(직원은 이제 갓 졸업한 아이 같던데. 얼마나 당황했을까.)
-액수가 맞다고. 내가 말해버리면. 밝혀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마.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딱히 궁하지도 않지만, 백만 원이라는 돈은 또 하나의 유혹이다.
아마, 마감을 하며 금액이 맞지 않은 걸 알았던 것 같은데, 그게 나라고 확정 짓고 얘기한 걸까?
"아가씨, 아가씨, 도착했어요."
(아. 깜박 잠들었구나.)
급하게 손에 쥐고 있던 현금을 내밀고 봉투를 챙겨 택시에서 내린다.
그리고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가는데, 뭔가 허전하다.
(아, 지갑.)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는 나는 손바닥만 한 작은 손지갑만 덜렁덜렁 들고 다녔는데,
언젠가는 사단이 날줄 알았어. 하는 친구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아, 짜증 나. 정말.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세운 거였고, 따로 영수증도 받지 않았다.
내 정신에 차 번호를 봤을 리도 만무하다.
-아, 내 지갑... 이게 다 그 은행 직원 때문이야.
(2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