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by 아는개산책

세상엔 완전 범죄도, 완전한 비밀도 없다.


즉, 모든 계락의 끝은 실패다.


하물며 사무실이라는 작은 공간에선.



점.


"너네 그거 알아?"

식판을 내려놓자마자 더는 못 기다리겠다는 듯 임대리가 말한다.


가장 먼저 앉아 우물우물 밥을 씹고 있던 나도 자연스레 그녀를 올려다본다.


"강남역에 엄청 용한 도사 연락처 받았어. 아무한테나 안주는 거래."


-오, 뜸들이지 말고 얘기하세요.

오늘은 아-주 흥미로운 주제다.


"도사요? 무슨?"

막내 진주가 수저와 젓가락을 양손에 들고 흔들며 묻는다.


"친구가 다녀왔는데 모르는 거 없이 다 맞추고, 앞으로 일 까지 자세히 알려준대. 우리 가보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끄덕끄덕 하고 있는 진주와 서혜.


"저는 교회 다녀요."

그리고, 나.


"아잉, 그래도 같이 가자. 넌 안 보고 구경만 하면 되잖아."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번진다.

그러면 가도 되겠지.


그날 저녁, 약속대로 칼퇴를 하고 강남역으로 향한다.


화살표 표시대로 지하로 내려가보니 마치 옛날식 다방 같은 분위기의 어두운 공간에 쾌쾌한 곰팡이 냄새도 조금 나는 듯하다.


우리는 이서 나란히 끼어 앉아 소개팅남, 아니 도사님을 기다리며 잔뜩 설레어본다.


꽃다운 나이의 네 명의 여직원들이 가장 궁금할 게 사실 뭐 있을까.


"저는 연애..."

"나도 남자..."

"저도 결혼..."

"저는 유학 갈 수 있을지..?"


우리 셋은 얌전한 고양이 서혜에게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야, 너 뭔데."


"아니 그냥 보는 거예요. 딱히 물어볼 말도 없어서."


"왜 왜, 네가 왜."

서혜를 유독 아끼는 임대리는 점 보는 것도 잊은 채 서혜의 끝말을 잡고 놓지 않는다.


"아니... 난 이제 못하겠어요. 팀장님 매번 욕하는 것도 못 들어주겠고. 심장 떨려서 출근하는 것도 힘들어."

눈을 조용히 내리며 파르르 하는 서혜가 한 떨기 코스모스 같다.


-쪼로록

진주가 남은 음료를 소리 내 마시며 눈만 말똥 말똥 쳐다본다.


"그렇다고 왜 네가 나가."

임대리는 위로하고


"맞어, 절이 싫으면 절을 다 태우고 나가야지."

는 공격하라 명한다.


세명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 향함과 동시에 듣고만 있던 단발머리 도사가 입을 뗀다.


"그럼, 내가 부적하나 써드릴까?"


합의일치에 긴 시간이 필요 없다.


공공의 적을 외부에 두면 내부 결속력은 무척 강해는 법.



방울 달기


자리에 앉아있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오늘은 거사를 치르는 날이다.


어젯밤 우리는 팀장의 욕을 줄여주는 부적을 받아왔고,

잘 자란 성인답게 가위바위보를 했다.

다행히 막둥이가 주먹을 내어, 당첨이 됐다.


이런 게 세상의 순리란다 아가-


그리하여 진주는 아까부터 안절부절 빈틈만 노리고 있다.

팀장이 항상 정시출근을 하지 않는 건 좋은 일이지만,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니 가슴은 쉴 새 없이 두근거린다.


우리는 메신저 창을 열어 단체 대화를 시작한다.


-(진주) 으앙,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 제일 손 많이 닿는 곳. 다이어리?


-(임) 야, 팀장이 언제 다이어리 쓰냐.

-(서혜) 야만인


-(임) 책상 아래에 몰래 붙이자.

-(진주) 안 떨어지겠죠? 뭘로 붙여요.


-(나) 차라리 필기구 어때, 볼펜 같은 거 맨날 쓰잖아. 돌돌 말아서!!


우와!

작은 감탄이 들리며 우리는 모니터에서 고개를 들어 서로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이내 막내를 쳐다보며 단체 끄덕끄덕.


(넌 할 수 있어.!)


-(진주) 저 잘리면, 책임져 주세요.

-(임) 아우 알았어. 걱정 마. 꼬대리가 책임질 거야.


썅...


조심스럽게 진주가 두리번거리며 엉덩이를 뗀다.


(으아, 미치겠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감싸 쥐며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른다.


(이건 걸리면 짤리는 게 아니고, 그 자리에서 사망이야.)


진주는 허리를 최대한 숙이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팀장의 자리로 다가간다.


-(임) 쟤는 일부러 사고 치는 중이라고 소문내려고 저러는 거야?

-(서혜) 크크크.


살짝 몸을 일으켜 파티션 너머 팀장의 자리를 훔쳐본다.

진주는 쉬지 않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팀장의 볼펜 통 안에서 볼펜 하나를 집어 든다.

그녀의 손이 멀리서 보기에도 달달달 떨고 있는 게, 누가 봐도 몹시 수상쩍다.


(제발, 빨리.)


이미 머릿속엔 영화 '미션임파서블'의 BGM 이 깔리고 있다.


(넌 걸리면 내 이름도 불 꺼니?)


조마조마.


그때, 진주가 고개를 쑥 들고 씩 웃는다. 그리고 총총 총총 자리로 빠르게 돌아온다.



실패할 뻔.


다시 집중하는 모니터 채팅장.


-(나) 성공?

-(임) 역쉬 찐주.

-(서) 엄지 척


그런데 막상 진주는 말이 없다.

뭐지?

아직 정신이 안 돌아왔나?


살짝 일어나 그녀 자리를 살피는데 마침 팀장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여느 때처럼 화와 짜증이 가득 나 있는 표정이다.


성큼성큼 자리로 가 신경질 적으로 의자를 빼어 재킷을 벗어 건다.


-(임) 벌써 화나있어. 설마 보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팔에 소름이 돋는다.


-(나) 그랬음 오자마자 호출이죠. 아직 몰라.

-(서) 전 무서워요. 조퇴하고 싶어.


팀장이 자리에 앉는 줄 알았더니 벌떡 일어나 두리번 거린다.


"천과장, 어디 갔어? 야, 천과장 어디 갔냐?"


우리 정대리가 또 빠르게 일어나 스캔을 하고 대답한다.


"잠깐 화장실 가신 거 같은데요."


아이씨, 하며 시 자리에 앉는다.


자동으로 나는 진주를 쳐다보는데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다 못해 닿으면 터질 것 같다.


눈이 마주치자 나는 입모양으로 얘기해 본다.


너. 왜. 그. .


울상을 짓는 그녀는 다시 팀장 자리만 바라본다.


팀장이 갑자기 벌떡 일어다.

의자가 도르륵 밀리며 뒷 창가벽면에 부딪힌다. 아랑곳 없이 욕 비슷하게 중얼거리며 다시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그.


그러자 진주가 벌떡 일어나 다다다다 팀장의 자리로 시 달려간다.


"뭐야, 뭔데"


잠시 후 다시 자리로 돌아온 진주가 그제서야 메신저를 보낸다.


-(진주) 저 진짜 죽을 뻔. 아까 여기에 글 쓴다는 게 팀장 대화창에다가 써가지고. 하.


-(나) 뭐어어? 뭐라고.

-(임) 크크크크 내가 미쳐.


-(진주) 고양이 목에 방울 달고 왔다고..

-(서혜) 진주...늘까지만 근무...


-(진주) 그래서 짐 컴퓨터 가서 지우고 왔어요.. 로그인해 놓고 나가서 다행이지 흑 죽을뻔했네.


나도 한마디 보태려는데 어느새 정대리가 옆으로 다가와 내 앉은 키에 맞춰 쭈그려 앉는다.


"일. 날 거야. 지금 도망가."


-헉, 우리가 한 짓 봤나?


"뭐? 왜 또"

짐짓 모른 체하고 물었다.


"어제 천과장이 윗분들 몇이랑 술 먹다가 취해서 팀장 때문에 일 못하겠다고, 분위기 흐리고 어쩌고 다 일러바치고 난리 폈대. 거기 팀장이 없었거든"


그놈의 술.. 아니 그놈의 주둥이들.


"그런데 그걸 팀장이 어떻게 알아? 천과장이 어제 그렇게 한걸?"


"아 꼬대리 몰라? 팀장, 사장 친척이잖아"


뭐어라아고?????


왜 맨날 나만 몰라.!



대실패


입을 가리고 숨을 참아보는데, 천과장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고, 그 모습이 그렇게 위태로워 보일 수가 없다.


역시.

회사 내부만큼 드라마틱한 장소는 없다.

바로 뒤따라 들어오는 분노한 팀장이 보인다.


채팅창을 모두 끄고 고개를 숙여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팀장은 내 뒤를 쑥 지나가 자리로 가 앉을 듯하더니 뒤돌아 천과장을 부른다.


"야, 너 일루 와 봐"


친척이면 게임 끝난 거 아니냐고.


"네."

천과장은 뭐가 또 당당하다.


얼마 전 대기업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시켜 기업뉴스에도 나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깨가 하늘로 솟을 만큼 솟았겠지.


"야, 너 사장한테 뭐랬냐?"

작은 목소리지만 회사는 그보다 더 고요하다.


"할 말 했습니다"

기죽지 않는다.


"뭐 이 색히야?"


주머니에 양손을 꽂고 말하던 팀장이 손을 들어 천과장의 한쪽 어깨를. 밀어버린다.


부적이고 나발이고 오늘은 날이 아니었다.


그런데, 천과장도 참고 있진 않는다.


"아니, 제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십니까?"


강과 강이 싸우면 이런 그림이 나오나 보다.


개싸움.


옆에 있던 직원 몇이 일어나 낮은 직급들은 과장을 잡고 윗분들은 팀장 주변에 서서 말리기 시작한다.


욕과 함께 처음 시작된 발길질.


양팔을 포박당해 거의 눕다시피 발길질을 아무리 해도 대리급들이 끌고 가는 천과장 몸에는 닿을 리 택도 없고 천과장도 말로 도발시키는 것을 쉬지 않고 있다.


은 세기의 명장면이 될 것이야.

놓치면 안돼.


-나도 일어나서 자세히 볼까.


하며 주춤거리는데,

팀장 표정이 약이 잔뜩 올라있다.

손짓 발짓이 안 먹히니, 이번엔 책상 위 볼펜통을 집어 들어


-앗 안돼! 부적!


던진다.


알루미늄 동그란 볼펜통은 강속구로 벽에 받혔다가 깡-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안에 들어있던 모든 사무용품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THE 볼펜도 찾을 길이 없다.


-아니, 사람한테 던져야지, 왜 벽에다 던지고 그래?


그 뒤를 따르는 펄럭이는 하얀 종이들과 스테이플러, 그리고 슬리퍼 한 짝까지...


그리고...

진주의 표정은.?


하.

역시 오늘도 하나 맘대로 되는 것 없는 하루이다.


대실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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