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돈으로 실패할 결심
책 <명견만리>를 읽다가 흥미로운 내용을 접했습니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의 '개 실험' 이야기입니다. 그는 개를 두 집단으로 나눠 전기 충격 실험을 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코로 레버를 누르면 전기 충격을 멈출 수 있었고, 두 번째 그룹은 몸이 묶인 채 전기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두 그룹을 모두 '담을 넘으면 피할 수 있는' 상자로 옮겼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첫 번째 그룹은 전기 충격이 오자마자 담을 넘어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그룹은 피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고통을 그대로 감내했습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 그들을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자조 섞인 말로 쓰이는 '사축(회사의 가축)'이라는 단어는 이 실험 결과와 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월급이라는 마약에 취해, 혹은 거대한 시스템에 압도당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모든 것이 통제되어 안전해 보이는 회사의 울타리가, 역설적으로 우리를 야성을 잃은 무기력한 존재로 만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지점에서 반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회사가 정말 우리를 가두는 우리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레버를 누르는 법을 잊은 걸까요?
관점을 조금만 비틀어 봅시다. 회사는 사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유용한 '테스트베드(Test-bed)'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창업을 하든 투자를 하든 내 돈을 쓰면 피가 마릅니다. 제 친구 중에 S그룹에 다니다 대표가 된 친구가 "직장인일 때는 월말이 그렇게 안 오더니 대표가 되고 나니 매일매일이 월말이다." 정말 겪어보지 않으셨다면 말을 마세요. 매일매일 생각하는데 실패하면 길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다. 나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하지만 회사에서는 다릅니다. '남의 돈(회사의 자본)'으로 공부할 시간이 주어지고, 내 아이디어를 실현해 볼 수 있는 거대한 인프라가 있습니다. 수억 원짜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집행해 보면서 얻는 경험치, 그 과정에서 겪는 실패조차 회사는 '월급'을 주며 보장해 줍니다. 이보다 더 완벽한 보험이 어디 있겠습니까?
간혹 "나는 조직 생활이 안 맞아서 창업하겠다"는 후배들을 봅니다. 저는 그들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최소 3년은 회사에서 버티고 배워라." (이래 봐야 업무로는 6,000시간도 안됩니다. 일만 시간의 법칙에도 못 미치는 시간입니다.)
창업과 회사 생활은 본질적으로 똑같습니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프로젝트 예산을 따내기 위해 설득하는 과정은, 창업 후 투자자에게 돈을 끌어오는 과정과 판박이입니다. 팀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Motivation), 한정된 자원(인력, 재화)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법을 배우는 것. 이 모든 경영의 핵심을 회사는 월급을 주면서 가르쳐줍니다. 상사 한 명 설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냉혹한 시장의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절대 불가능합니다. 요즘 길거리 한번 나가보세요. 넘치는 게 커피숍입니다. 바로 옆에서 망해도 나는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마구잡이로 생겨납니다. 2000년 초반에 노래방이 중반에는 조개구이집이... 최근에는 탕후루가.
하다못해 작은 매장 하나 세울 때 그저 프랜차이즈점의 이야기만 믿고 여기가 명당이라고 점지해 주면 그냥 시작합니다. 공부도 안 해보고 경험도 안 해보고 그러니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커피숍 창업을 할 거면 최소한 3년은 알바도 해보고, 자기가 창업하려는 곳에 1년 전에는 가서 매일 유동인구도 살피고 해야 하는데 그냥 남들이 성공하면 무조건 불나방이 되어서 쫓아갑니다.
세상은 빠르게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익숙함에 속아 고통을 견디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실험 속 두 번째 그룹의 개처럼 구석에 웅크려 있지 마십시오.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그 자리는 사축의 우리가 아니라, 당신의 야성을 훈련하는 정글짐이자 실험실입니다. 남의 돈으로 마음껏 실험하고, 깨지고, 배우십시오. 회사를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억울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회사는 당신의 실패를 용서받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자, 당신이 코로 레버를 눌러 탈출구를 열 수 있는지 확인하는 최고의 훈련장이니까요. 그러니 웅크리지 말고, 오늘 당장 당신 앞의 레버를 누르십시오. 최소한 그럼 임원을 달던 스타트업의 대표를 하던 전기는 피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