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Safety Lane이 있으면 결코 서핑을 탈수 없다.
미국은 법에서 금지한 것을 제외하면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는 네거티브 규제(Negative List System)를 따릅니다. 반면 한국은 법에서 허용된 것만 해야 하는 포지티브 규제(Positive List System)가 중심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버(Uber)입니다. 한국에 우버가 진출했을 때 "우리는 이미 택시가 있는데 왜 우버가 택시 영업을 하는가?"라는 논란에 부딪혔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매번 규제 개혁 TF를 만듭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규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규제를 해제하기 위한 규제를 또 만들어냅니다.
이런 시스템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는 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를 더 위험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지키려는 야생성과 조심성을 없애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어느 해수욕장에 가도 바다 위에 선을 그어놓고, 해양경찰이 그 선을 넘어가면 호루라기를 불며 "안전한 곳으로 들어오세요"라고 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서핑을 즐기는 자유로운 바다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입니다. 반면 우리는 바다에 선을 그어 놓습니다. 그 안에서는 안전하게 해수욕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선 너머의 파도를 타는 서핑(Surfing)을 즐길 생각은 원천적으로 차단당하게 됩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0년간 한국을 휩쓸고 간 창업 아이템들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대왕카스테라, 핫도그, 앙버터, 흑당버블티, 크로플, 로제떡볶이, 약과, 그리고 최근의 두바이 초콜릿 디저트까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개구이집, 찜닭, 노래방, PC방, 그리고 마라탕 체인점이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제가 살던 위례 신도시에 어느 날 탕후루 가게가 하나 생겼습니다. 장사가 좀 된다 싶으니, 불과 반년 만에 위례 광장에만 무려 6개의 탕후루 가게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1년 만에 그들은 모두 폐업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고환율, 고금리, 인건비 상승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처음 생긴 탕후루 가게에 줄을 서는 것을 보고, 너도나도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내가 들어갈 자리에 유동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경쟁자가 들어왔을 때 매출이 얼마나 쪼개질지, 내가 아무리 맛있는 탕후루를 만들어도 시장 규모상 손실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계산했어야 합니다. 최소한 한 달이라도 그 앞에서 손님 숫자를 세어보는 수고로움이 있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해수욕장의 안전 라인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대기업 체인점이라는 간판에 혹하고, TV 광고에 혹하고, 창업 지원 컨설턴트라는 그럴싸한 명함에 속아 엑셀로 대충 적어 놓은 예상 수익표만 믿고 덜컥 몇 억을 투자합니다. 그리고 망합니다. 그놈의 "사장님" 소리 한번 들어보려고 말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잘 면역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경계하는 감각이 무뎌졌습니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면 시차가 없는 곳이라도 잠을 설치는 경험을 해보셨을 겁니다. 뇌과학에서는 이를 첫날 밤 효과(First Night Effect)라고 합니다. 미국 브라운 대학교(Brown University)의 인지, 언어 및 심리과학부 연구팀이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낯선 환경에서 잠을 잘 때 우리 뇌의 한쪽(주로 좌뇌)은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마치 보초를 서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평소 집에서는 안 들리던 시계의 똑딱똑딱 소리도 들리고, 밖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도 유난히 크게 들려 잠을 못 이루는 것입니다.
사실 정부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주는 건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창업이라는 전쟁터에 들어올 때는 다릅니다. 새로운 영역에서 잠을 자는 것처럼, 좌뇌를 엄청나게 써야 합니다. "사장 소리 듣고 싶다"는 우뇌의 감성이 아니라, 철저한 좌뇌의 데이터로 판단해야 합니다.
비단 식당이나 카페뿐만이 아닙니다. 스마트폰 초창기, 제가 IT 회사를 창업했을 때 수많은 사람이 "이 아이디어 죽이지?" 하며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그중 성공한 건 100개 중 두세 개에 불과합니다. 초창기에 빠르게 선점하고 대기업에 매각(Exit)한 소수만 살아남았습니다. 더 무서운 건, 우리나라는 패자부활전이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은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라고 외칩니다. 한국에서의 사업 (전쟁)실패도 비슷합니다. 실패하면 신용등급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반역죄인만큼이나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미국처럼 실패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를 은행이나 투자사가 높게 평가해 주는 문화와는 거리가 멉니다. 아쉽게 영화에서는 전두광이 성공하지만, 사실 전쟁터에서 희생 하나 없이 승기를 잡기는 힘듭니다. 그리고 영화가 아닌 실제 역사에서도 그 끝이 참 비참했듯, 준비 없는 창업의 말로도 다르지 않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아이들 사이에서 감기가 유행한다고 합니다. 면역력이 떨어져서라고 하죠. 독감이 A형, B형을 넘어 Z형까지 유행할 기세입니다. 정부가, 혹은 사회가 쳐 놓은 안전선 안에서는 보호받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 돈과 인생을 건 사업은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지켜야 합니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안됩니다.
호루라기를 불어줄 안전 요원은 없습니다. 지금 당신의 좌뇌는 깨어 있는지 확인하고 시작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