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생존 전략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내가 살아남는 법

by 코와


대략 20년 전, 정확히는 2007년에 하얀거탑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대학병원 안에서 의사들이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분투하는 모습을 그린 드라마였죠. 당시 최고 시청률이 20%를 훌쩍 넘기며 안방극장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6년 전인 2020년에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의학 드라마가 등장해 또 한 번 공전의 히트를 쳤습니다.


이 두 드라마 사이의 간극은 13년입니다.


그런데 참 흥미로운 차이가 있습니다. 하얀거탑의 주인공 장준혁은 외과 과장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반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흉부외과를 담당하는 주인공 김준완은 외과 과장 자리를 안 맡으려다가, 자기 밑에서 고생하는 펠로우 의사 도재학의 실수를 감싸주기 위해 억지춘향으로 과장직을 수락합니다.


불과 13년 사이에 그려진 이 극명한 대비는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성공의 가치와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크게 변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셈입니다. 과거에는 이처럼 시대상이 변하는 데 10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했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한 변화의 속도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는 굉장히 빠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류가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가는 데는 무려 250만 년이라는 까마득한 시간이 걸렸고, 신석기가 청동기와 철기로 나아가는 데도 각각 8000년과 2000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유선 전화기에서 무선 삐삐가 보급된 건 대략 100년 정도 시차가 있고, 그 삐삐를 거쳐 핸드폰과 스마트폰이 우리 일상을 지배하기까지는 고작 10여 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AI가 뜬다고 하더니, 단순히 우리의 질문에 답만 해주고 그림을 그려주던 수준을 넘어 내 대신 컴퓨터의 모든 프로그램을 제어하는 단계까지 오는 데 2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부장님이 저번 달에 이렇게 지시하셔서 내가 그 지시대로 오늘 일을 했다는 말은 이제 정말 핑계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초 단위로 바뀝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초 단위로 바뀌는 삶의 속도에 기꺼이 적응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AI 전문가가 강의 중에 청중에게 AI한테 반말로 지시하시냐고 물었습니다. 사회자가 놀라서 그러면 안 되느냐, 심각한 문제냐고 되묻자, 그 전문가는 나중에 AI에게 지배당하는 세상이 왔을 때 예전에 반말했다고 혼날 수 있다고 답해서 강의장이 참 유쾌해졌습니다.


물론 훗날 AI가 세상을 지배할지 어떨지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초 단위로 바뀌는 세상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그 방식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바로 AI를 철저하게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과제에 AI를 활용한 일로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적이 있습니다. 부정행위를 한 학생들에게 정학 등의 징계를 내리겠다고 경고한 걸로 압니다. 하지만 그 방향이 과연 맞는지 깊이 고민해봐야 합니다. 학생은 사회로 나가기 위해 교육을 받는 겁니다. 이미 사회는 AI를 활용해 수많은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데,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사고력 평가 목적이 아니라면 오히려 AI를 도구로 쓰는 걸 장려해야 맞지 않을까요.


30년 전 제가 대학생 시절에도 오픈북 시험을 보자고 하는 교수님들이 계셨습니다. 그 교수님들이 늘 하시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픈북 해봐야 평소에 공부 잘하던 애들은 막힘없이 문제를 다 풀고, 평소에 수업 안 듣던 애들은 책을 펴놔도 어디에 답이 있는지 몰라 빈칸으로 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AI 활용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AI를 활용하는 것을 일상의 습관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럼 인간은 AI가 아껴준 그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또한 문제 제기를 TV 프로그램에서 시작했으니, 그 해답의 실마리 역시 TV 프로그램으로 풀어볼까 합니다. 바로 최근 화제가 된 흑백요리사입니다.


로봇이 아무리 입력된 레시피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요리를 해내고, AI가 훌륭한 요리 레시피를 무한정 쏟아낸다고 해도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흑백요리사 1편에서 2등을 한 에드워드 리 셰프는 자신을 비빔 인간이라 칭하며, 두 문화 사이에서 겪어온 자신의 정체성을 역대급 요리로 승화시켜 그 가치를 증명해 냈습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1등을 한 나폴리 맛피아 권성준 셰프가 마지막 요리를 내놓으며 이것은 나 자신을 위한 요리이고, 나폴리 맛피아가 아닌 권성준이라는 사람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 고백은 AI가 절대 창조할 수 없는 뭉클한 영역이었습니다.


최근 화제 속에 막을 내린 2편도 마찬가지입니다. 1등을 한 최강록 셰프는 결승전에서 자기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요리로 평소 자신의 특기였던 조림이 아닌 깨두부 국물 요리를 내놓았습니다. 남들에게 잘하는 척 보여주기 위해 썼던 조림이라는 가면을 벗고, 온전히 솔직한 나 자신을 위한 요리를 하겠다는 깊은 고백이 담겨 있었죠. 결국 그 사람만의 스토리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레시피와 정확한 칼질, 완벽한 요리 시간도 그저 기계적인 작업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깊은 자기 성찰은 AI가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 인간은 끊임없이 책을 읽고 경험하며 자기만의 사상과 내면을 단단하게 다져 확고한 가치관을 확립해야 합니다. 인간이 AI와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접시 위의 요리에도 그 사람의 삶이 녹아든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회사의 모든 일도, 그리고 우리 삶이 향하는 모든 방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인간은 스스로 세운 뚜렷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연결하는 스토리텔러의 포지션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다가올 기계의 시대에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인간만의 짙은 철학일 것입니다. AI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