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유술(柔術)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인문학적 공력

by 코와

커뮤니케이션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들끼리 생각이나 느낌 같은 정보를 '주고받는' 일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일방적인 전달이 아닌 '주고받음'에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주고받음이 가능하려면, 단순히 말을 내뱉는 기술을 넘어 상대의 도식을 이해하고 내 안의 인문학적 토양을 다지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지류 신문이 주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즐거움

예전에는 신물을 보다. 2024년에 들어 종이 신문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보는 뉴스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먹는 '취사선택'의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런 편식은 인문학적 사고의 근육을 약하게 만듭니다. 반면 지류 신문은 내가 관심 없던 분야의 기사들이 불쑥 눈에 들어옵니다. 마치 술자리에 초대받지 않은 친구가 끼어드는 느낌이죠.

때로는 마뜩잖을 때도 있지만, 그 낯선 정보들이 내 고정관념을 흔들고 다면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합니다. 얼마 전 제가 보는 신문에 까치밥은 한국의 톨레랑스다라는 기사가 있었는데 아래 내용은 왜 내가 신문 읽기를 하는지를 정리해서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입니다.

토지를 쓴 펄벅 여사가 경주 근처를 지나다 ”저 감은 따기 힘들어 안 딴 건가요? “라는 질문에 어떤 멋진 이가 ”저것은 까치밥입니다. 배고픈 겨울 철새를 위한 것입니다 “라는 거에서 까치밥이 유래되었다는 것도 재미있고 그 답을 듣고 펄벅이 ”나는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보았습니다. “라는 것도 재미있고, 팩트는 사실 까치가 똑똑해서 자기 집 주변에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면 울어서 가족을 보호한다는 새의 행동학도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까치가 울면 ”손님 오려나보다. “로 어른들이 표현한 것도 이런 과학이 숨어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원래 기사는 설이 온다.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가. 안부 전하자. 이런 내용인데

엉뚱하게 저 두 가지가 귀에 쏙 들어왔습니다.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사실은 가족을 보호하려는 새의 본능에서 기인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이런 사소한 발견들이 모여 대화의 깊이를 만듭니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 말처럼, 내 믿음만 고집하기보다 세상의 '다양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소통의 기본값이 되어야 합니다.


말의 유술, 상대의 힘으로 승부하다

그런데 왜 신문을 읽어야 할까요? 소통의 고수들을 보면 마치 '유술(柔術)'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내 힘으로 상대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가해오는 공격의 방향을 살짝 바꾸어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입니다.

미국의 노련한 정치인 조바이든이나 엘론 머스크 같은 기업인들의 인터뷰를 보면 그 정수를 볼 수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기자가 "선거 나갈 때 나이가 문제가 되지 않냐?"는 질문에, 아니 공격에 "맞아요 나이가 문제입니다. 내 상대는 여섯 살 짜리라 그게 가장 문제입니다"라고 맞 받아치거나, “얼마 전 특검보고서에 당신을 '기억력 나쁜 노인'이라고 표현했다?”라고 하자. 바이든이 ”나는 대통령으로 내가 하는 일을 정확히 알고 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기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당신의 기억력은 얼마나 안 좋은가?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할 수 있는가? “라고 재차 묻자. 바이든이 ”당신이 질문하도록 계속 내버려 두는 것을 보면 기억력이 안 좋은 것 같기도 하다. “라고 말했습니다. 엘론 머스크는 전기차 수요가 줄어든다는 기사에 주가가 폭락하자.

"자율주행이 없는 전기차를 타는 것은 스마트폰을 들고 말을 타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새로운 플랫폼 (무인 차량 호출?)을 보여주면서 회사의 주가를 확 끌어올렸습니다. 두 사람의 말에는 영어로 해도 단어가 어렵지 않습니다. (미국 저 교육층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쓰는 단어가 1만 개가 안된다고 하던데 _ 난 이 이야기를 믿고 영어 단어 공부를 포기하긴 했습니다만.) 그런데 날카롭습니다. 마치 유술과 같다. 내 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상대의 힘을 내가 방향만 바꾸어서 조르고 누르고 하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딱 맞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 뉴스를 많이 본(신문을 읽는 사람들은) 말할 때 저 유술을 하듯이 상대를 누르고 조르고 항복을 받아내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신문을 보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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