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출발선을 찾기 전에, 일단 침대에서 나와라
마라톤의 풀코스 거리는 42.195km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이 아득한 거리를 달리는 마라토너들에게 "전체 코스 중 어느 구간이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가?"라고 물으면, 십중팔구 뜻밖의 대답이 돌아옵니다. 30km 지점의 '마의 구간'이나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오르막길이 아닙니다. 바로 '아침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어나, 침대에서 벗어나 현관문 앞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큰맘 먹고 끊은 PT도 막상 헬스장에 도착하면 어떻게든 해내지만, 집에서 운동화를 신고 헬스장 문 앞까지 가는 그 과정이 제일 고통스럽습니다. 각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삶에는 이런 예가 수도 없이 많을 겁니다.
우리의 인생도, 직장 생활도 이와 똑같습니다. 우리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돈을 벌며 일하는 기간은 대략 40년 남짓입니다. 인생이라는 40년짜리 마라톤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단연코 '시작'입니다.
"무조건 폼 나는 대기업에 들어가야 해", "내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곳이어야 해", "나는 이런 일 할 때가 제일 좋으니까 완벽히 맞는 직무만 할 거야."
이런저런 완벽한 조건만 재고 있다면 출발선에 서지도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게 됩니다. 졸업 후 가장 중요한 것은 다 잊고 무슨 일이든, 어떤 형태든 일단 '시작'하는 것입니다. 취업 문턱이 높다며 언론에서 쏟아내는 청년 위로 기사에 취해 스스로를 연민할 시간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 당장 무의미해 보였던 그 작은 일 하나하나가 결국 내 커리어의 뼈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버릴 경험이 하나도 없습니다. 흔히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간다'며 군대에서의 시간을 그저 허비하는 시간으로 치부하곤 합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태어나서 군대에 가기 전까지, 대개 비슷한 지역, 비슷한 경제적 수준, 비슷한 학력을 가진 사람들과 온실처럼 묶여 지냅니다. 그러다 군대라는 통제된 공간에 던져지면, 난생처음 겪어보는 온갖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살을 부대끼며 지내야 합니다. 억지로 갇혀 있는 그 시간 덕분에 우리는 진상 선임을 버티는 법, 말 안 통하는 후임을 무시하거나 내 스타일로 구슬려 바꾸는 법을 배웁니다. 훗날 사회에 나와 마주할 수많은 인간 군상에 대처하는 진짜 생존 근육이 그 의미 없어 보이던 시간 속에서 길러진 것입니다. 그러니 일단 부딪혀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시작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자신만의 거대한 방어기제를 구축하며 살아갑니다. 이는 크게 세 가지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첫째, 온갖 의혹과 불안을 훈장처럼 달고 삽니다. "어차피 연금은 고갈돼서 못 받을 거야", "코로나 때 맞은 백신은 사람을 죽이려는 음모였어", "선관위가 조작을 해서 이 나라는 망할 거야"라며, 확인되지 않은 공포 심리를 키워 세상에 대한 불신을 정당화합니다. 그것이 논리적인 팩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거대한 확증 편향³에 빠져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이 한없이 불행하다고 단정 짓고 끊임없이 불만을 쏟아냅니다. 불만을 자극적으로 포장해 SNS에 올리면 수많은 '좋아요'가 달리고 비슷한 불만을 가진 친구들이 모여듭니다. 나와 비슷한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만 증폭되어 들리는 이른바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현상⁴'에 갇혀버리는 것이죠. 그 안에서 불만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불행은 일종의 트렌드이자 관심의 수단이 되어버립니다.
셋째, 결국 모든 원인을 외부로 돌립니다. 취업이 안 되는 건 정부 탓, 급여가 적은 건 쪼잔한 회사 탓, 내가 이렇게 된 건 부모와 학교 탓이라고 말합니다. 당장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땀 흘려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남을 탓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훨씬 편안한 해법이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서 정작 부자를 욕하고, 성공하고 싶다면서 성공한 사람들의 치열한 노력을 관찰하기보다는 손가락질부터 하며 깎아내립니다.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을 다룬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¹는 이를 정확히 꼬집습니다. 인간은 과거의 환경이나 남들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기 위한 핑계(목적)'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불행이라는 감정을 선택해 입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평은 결국 자기 발등을 찍는 행위일 뿐입니다.
어차피 살아내야 할 40년의 마라톤입니다. 무작정 긍정주의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적어도 의미 없는 불평보다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궁극적으로 나 자신에게 훨씬 더 큰 이익과 통장 잔고를 가져다줍니다.
역사 이야기로 조금 더 입증해 보겠습니다. 삼국시대 이전, 싸움은 잘하지만 농사짓기를 끔찍이 싫어하는 '귀차니스트' 산악 부족이 있었습니다. 수장은 방어하기 좋은 험준한 산꼭대기에 성을 짓고 명령합니다. "가을이 되면 저 아래 평야에서 농사짓는 부족의 식량을 뺏어 오면 된다. 우리는 이 쳐들어오기 힘든 곳에 터를 잡고 편하게 살자!"
초반에는 꽤 훌륭한 전략이었습니다. 하지만 2~3년 내리 약탈을 당한 농경 부족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곳에 계속 머물 리 없습니다. 몇몇이 서둘러 짐을 싸서 멀리 이주해버렸죠. 자, 이제 산악 부족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방어하기 좋은 산에 계속 살면서 싸움만 할 거다"라고 고집을 부리면 부족민들은 그대로 굶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약탈할 곳이 없어 하나둘 떠나는 부락민을 보면서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그 부족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명한 수장이라면 즉시 생존을 위해 산에서 내려와 농경 부족과 타협을 합니다. 자신들의 강력한 전투력으로 농경 부족을 다른 외적들로부터 '보호'해주고, 그 대가로 식량을 정당하게 분배받기 시작한 것이죠. 약탈자가 보호자가 되며 거대한 집단이 형성되고, 이것이 훗날 고대 국가가 탄생하는 기틀이 되었습니다. 상황이 변하면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던 도식(Schema)²도 즉각 바꿔야 살아남습니다.
현대의 비즈니스 환경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 농경 시대의 주기가 1년이었다면, 이제 그 주기는 무서운 속도로 짧아지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2022년에서 2023년 코로나 팬데믹 시기, 배달 플랫폼부터 온라인 서비스까지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며 벤처부터 대기업까지 IT 개발자를 쓸어 담았습니다. 이른바 IT 구인난이 극에 달했고 부르는 게 값이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불과 1~2년이 지난 2024년, 시장은 차갑게 얼어붙었고 반대로 IT 인력 구직난이 심각해졌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IT 프리랜서들은 여전히 과거의 호시절에 갇혀 터무니없는 고액의 개발비를 요구하곤 합니다. 시장은 이미 변했는데 자신의 도식을 수정하지 못한 채 빈 산꼭대기에 남아있는 격입니다.
여기에 AI까지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이제 세상은 1년 단위가 아니라 초 단위로 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변화에 맞게 자신의 일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재조정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일단 빠르게 '시작'을 해야 합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건 약탈만 고민하지 말고 처음부터 그들을 지켜줄 군사를 만드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시작이라는 단어입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부모님 등골 약탈, 정부에서 주는 청년 지원금 약탈에 신경 쓸 시간에 뭐라도 좀 하세요. 출발선에 서서 일단 달리면서 호흡을 맞춰야 이 초 단위 시대에 뒤처지지 않습니다. 핑계 대지 말고 뭐라도 하십시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멍때리며 남들이 뛰니까 따라 뛰라는 뜻이 아닙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자신을 바꾸며 뛰어야 합니다.
침대에서 일어나 억지로 신발 끈을 묶고 현관문을 나서는 것, 그것이 42.195km 인생 마라톤의 가장 위대한 첫걸음입니다.
[주석1] 미움받을 용기 :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가 공저한 베스트셀러로, 아들러 심리학의 '목적론'을 대화체로 풀어낸 책. 인간은 트라우마(과거의 원인)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감정과 행동을 선택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주석2] 도식(Schema) : 심리학 용어로, 인간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의 사물이나 사건을 이해하고 대처하기 위해 머릿속에 형성해 둔 기본 틀이나 인지 구조를 뜻한다. [주석3]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거나 배척하는 심리적 성향. [주석4] 에코 체임버 현상(Echo Chamber Effect) : '반향실 효과'라고도 하며,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만 소통하며 자신의 왜곡된 신념이나 불만이 마치 세상의 진실인 것처럼 증폭되고 강화되는 현상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