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샤를 합시다

혼밥은 당신의 지갑을 얇게 만드는 이유다.

by 코와

요즘 점심시간 직장가의 풍경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무섭게 치솟는 외식비 탓에 도시락을 싸 들고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크게 늘었다고 하죠. 점심시간이 되면 각자 자리에 앉아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켜두고 홀로 도시락을 먹는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예전에 1인 가구의 식사를 다뤘던 '식샤를 합시다'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온전한 혼자만의 미식을 즐기는 직장인들이 많아진 것도 원인중 하나 일거 같습니다.


45cm 치약과 120cm의 마법


혼자 밥을 먹으면 메뉴를 고민하며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억지로 상사의 재미없는 농담에 웃어주지 않아도 되니 참 편하고 효율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왜 사회생활을 하면서 굳이 부대끼며 밥을 같이 먹어야 하는지, 인간의 '거리'에 대한 심리학 이야기를 먼저 해보겠습니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인간관계의 거리를 4단계로 나누었습니다.¹ 가족이나 연인처럼 숨결이 닿는 '밀접한 거리'는 45cm 이내, 친구나 가까운 지인과 대화하는 '개인적 거리'는 45cm에서 120cm, 그리고 비즈니스나 공식적인 업무를 볼 때 유지하는 '사회적 거리'는 120cm에서 360cm 사이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양치 후 숨결이 닿는 연인의 거리를 의미하는 '45cm'라는 이름의 치약이 출시되어 인기를 끌었던 것도 바로 이 심리학 이론에서 나온 마케팅이었습니다. 마치 연인을 만들려면 그 치약을 써야 할 거 같았죠.


우리가 회사 또는 조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일을 할 때, 주변 사람의 도움 없이는 절대 혼자서 생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무실 책상에 앉아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대개 360cm 밖의 딱딱한 비즈니스 거리를 유지합니다. 이 멀고 서먹한 360cm의 비즈니스 관계를 단숨에 120cm 이내의 '개인적 거리(친구의 거리)'로 좁혀주는 마법의 행위가 바로 '함께 밥을 먹는 것'입니다.


물론 아주 비싸고 고급스러운 식당에 가서 넓은 테이블의 양 끝에 앉는다면 멀어지겠지만, 북적이는 식당에서 하나의 찌개를 나눠 먹거나 좁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밥을 먹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훅 좁혀버립니다. 주변에 크게 성공한 기업인이나 조직에서 유독 인기 많고 잘나가는 선배들을 가만히 관찰해 보십시오. 점심 식사를 매일 혼자서 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나요?


재미와 돈의 냉정한 상관관계


혼밥은 분명 편하고 효율적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가 그렇듯, 내가 편한 것만 해서는 결코 돈이나 성공으로 치환되지 않습니다.


한때 전 운 좋게도 게임 방송 해설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성덕(성공한 덕후)'이 된 셈이었죠. 내가 미치도록 좋아하는 게임을 하면서 돈까지 버니까 정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습니다. 퇴근 후 집에서도 당당하게 아내 앞에서 게임기를 켤 수 있는 떳떳한 명분까지 생겼으니 그보다 좋을 순 없었죠. 당시 다른 직업을 병행하고 있었기에 그 즐거움은 배가 되었습니다. 돈이 배로 들어오니 배가 될수 밖에 없어죠.


그런데 방송국에서 제가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게임이나 처음 보는 게임이나 MC를 맡기기 시작했을 때, 그토록 행복했던 일이 순식간에 지독한 고역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억지로 밤을 새워가며 룰을 공부하고 흥미 없는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렇게 재미가 없을 수가 없었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돈으로 치환되는 일 중에 마냥 재미있고 편하기만 한 일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요.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더라도 그것이 돈벌이가 되는 순간, 결국은 재미없는 짓도 억지로 감내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우리가 맺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이와 똑같습니다. 마음 맞는 친구와 노는 건 재미있지만, 직장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껄끄러운 사람과 밥을 먹고 관계를 맺는 건 당연히 재미없고 피곤한 일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재미없어도 억지로 해야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을 위한 필수 업무입니다.


우리의 뇌는 '인지적 구두쇠'다


그렇다면 요새 젊은 직장인들이 회식이라면 질색을 하고, 사내 행사라면 꼰대들의 문화라고 비판하는 이 와중에도, 왜 회사들은 굳이 돈을 써가며 다 같이 영화를 보거나 송년의 밤이나 1박 2일 워크숍 같은 걸 자꾸 기획하는 걸까요? 단언컨대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조직원들 사이에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함입니다. 사람은 서로 공유하는 추억이 있어야만 '동조 현상(Conformity)²'이 생깁니다. 맛집 앞에 긴 줄이 서 있으면 왠지 무조건 맛있을 것 같아 나도 줄을 서게 되고, 남들이 다 대치동에 살아야 좋은 대학에 간다고 하면 무리해서라도 대치동으로 이사를 가려는 마음. 이것이 바로 타인의 행동과 판단에 나를 맞추려는 동조 현상입니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³'라는 재미있는 용어로 표현을 합니다. 우리의 뇌는 기본적으로 복잡하게 생각하고 에너지를 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그래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모든 정보를 꼼꼼히 분석하기보다는, 과거의 경험이나 친숙함을 바탕으로 가장 쉽고 빠른 지름길을 택하려 하죠.


조직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밥을 먹고 워크숍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은 '추억'이 쌓이면, 훗날 업무적으로 부딪히거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의 뇌는 인지적 구두쇠처럼 작동합니다. 복잡하게 득실을 따지기 전에, "아, 저번에 나랑 같이 술 한잔하며 웃었던 사람이지. 그래, 내가 도와주자"라고 무의식중에 동조하며 돕는 것을 꺼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말이 의심스럽다면 지금 당장 스마트폰을 열어 최근 통화 기록을 확인해 보십시오. 당신은 편하고 친한 사람과 통화를 많이 합니까, 아니면 데면데면하고 안 친한 사람과 통화를 많이 합니까? 사람은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필연적으로 그 사람을 더 찾게 되어 있습니다. 더 가까운 사람이랑 할 이야기도 더 많아집니다.


에스컬레이터는 없다, 두 다리로 올라라


우리가 높은 곳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려면 당연히 허벅지가 터질 듯이 아프고 숨이 차야 합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싫은 사람과 밥 한 번 먹지 않고 위로 편안하게 올라갈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 따위는 우리 인생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 정정하겠습니다. 딱 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존재합니다. 부모를 아주 잘 만난 금수저들 말입니다. 실제로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어릴 때부터 상위 3% 이내의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가진 부모 밑에서, 유치원부터 명문 사립대까지 입시 경쟁 한 번 없이 프리패스로 진학하며 고급 과외와 승마를 즐기는 아이들을 가리켜 '에스컬레이터 걸, 에스컬레이터 보이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다리가 아플 일이 없습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부모가 만들어둔 에스컬레이터가 그들을 최상층으로 올려다 주니까요.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에스컬레이터가 없습니다. 편하게 내 책상에 앉아 넷플릭스를 보며 혼자 도시락을 까먹고 싶겠지만, 그 유혹을 떨치고 일어나야 합니다. 다리가 아프고 마음이 피곤하더라도 억지로 밥 약속을 잡고, 싫은 회식 자리에도 참석해서 얼굴을 비추십시오.


가서 억지로라도 드십시오. 그리고 마시십시오. 회사 사람들을 굳이 45cm의 연인 거리까지 끌어들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물론 사내 연애를 굳이 말리려는 뜻은 아닙니다만.) 하지만 적어도 120cm 안으로는 기꺼이 거리를 좁혀야 합니다. 그렇게 지지고 볶으며 땀 흘려 계단을 오르는 사람만이, 내 급여와 직급이 올라가도록 기꺼이 도와줄 든든한 우군들을 늘려갈 수 있습니다. 훗날 진짜 성공이라는 달콤한 식샤를 즐길 자격은 바로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주석
1. 근접학(Proxemics) :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T. 홀(Edward T. Hall)이 제시한 이론으로, 인간이 타인과 맺는 심리적·사회적 관계를 물리적 거리에 따라 밀접한 거리(0~45cm), 개인적 거리(45~120cm), 사회적 거리(120~360cm), 공적인 거리(360cm 이상)로 분류했다.
2. 동조 현상(Conformity) : 집단의 압력이나 분위기에 의해 개인의 행동, 신념, 태도 등이 다수의 방향으로 변화하는 심리적 현상.
3.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 : 심리학자 수전 피스크(Susan Fiske)와 셸리 테일러(Shelley Taylor)가 주창한 개념. 인간의 뇌가 정보 처리 과정에서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복잡한 사고를 피하고 단순하고 직관적인 지름길(휴리스틱)을 택하려는 성향을 뜻한다.
4. 에스컬레이터 걸/보이 : 일본에서 최상위 3% 이내의 부유층 자녀들이 특정 사립 재단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별도의 치열한 입시 경쟁 없이 중·고등학교를 거쳐 명문 대학교까지 자동으로 직행하는 '에스컬레이터식 진학(エスカレーター式 進学)' 특권을 누리는 아이들을 빗대어 부르는 말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