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파리로
오늘은 스위스에서 파리로 넘어가는 날.
마지막 날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어제 카지노에서 소소하게 얻어낸 30프랑으로 맛있는 디저트를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며칠을 머무르며 숙소 매니저와, 장기 투숙 중인 동생과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어제 함께 카지노에 갔던 그 무리도 바로 그 친구들이었다.
그중 특히 장기 투숙 중인 동생과는 짧은 시간이지만 오늘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스위스에서 가장 맛있는 디저트집이라고 소개해준 곳은 Schuh, 한국식으로는 '슈'라고 했다.
“진짜 자부할 만한 곳이에요. 꼭 가봐야 해요!”
그렇게 이끌려 들어간 가게 안, 먹고 싶은 걸 고르라는데 종류가 너무 많아 한참을 망설이고 있었더니
"고민하지 마요" 하며 그 친구가 덜컥 3개나 주문해 버렸다.
‘돈이 많다더니 진짠가 보네. 어린 나이에 훌륭하군...’
스물다섯, 나보다 어린 그 친구는 이미 사업을 하고 있었고,
스위스에는 일하러 왔다고 했다.
말투나 태도에서 느껴지는 여유는 단순한 여행자의 그것과는 또 달랐다.
우리는 앉아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눴다.
그 나이에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솔직히 꽤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 나이에 뭐 했더라...?’
막 졸업하고 취업하고, 정신없이 일에만 몰두했을 시기였는데.
멀리까지 여행을 떠나온 덕분일까, 이번 숙소에서는 유난히 다양한 삶들을 만나게 되었다.
어학연수로 장기 체류 중인 유학생,
일하러 온 젊은 사장님,
이제 막 식을 올리고 신혼여행 중인 부부,
암 투병 중 시간을 내어 버킷리스트를 이루러 온 언니까지.
모두 다 다른 이유로, 다른 계기로 이곳에 와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깨달았다.
세상 참 넓구나.
그리고 나는 참 좁게 살았구나.
우리는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각자의 길을 향해 헤어졌다.
그 친구는 다시 일을 하러,
나는 파리로 떠나기 위해 짐을 꾸렸다.
기차를 타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내가 꼭 다시 보고 싶었던 그린델발트의
초록 잔디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완만한 언덕들,
어디선가 텔레토비가 나올 것 같은 풍경에
나도 모르게 동심으로 잠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진짜 그림 같았던 스위스… 안녕.”
마테호른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산의 형상을 닮은 초콜릿을 하나 집어 들며 기차 여행을 시작했다.
손 안의 작은 과자가 품고 있는 그 웅장한 풍경을,
입안 가득 달콤하게 상상해 보기로 했다.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다는 건 여전히 낯설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한 나라를 떠나 또 다른 나라로 이동한다는 사실이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음에도
머릿속에서는 자꾸 '이게 정말 가능해?'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국경에서 보안 검색이 있지 않을까?
짐 검사를 하거나 여권을 확인하지 않을까?'
이런 걱정도 잠시,
모든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아무 일도 없었다.
그저 지하철에서 한 정거장을 지나듯,
기차는 손쉽게 프랑스로 넘어갔고
나는 어느새, 파리에 도착해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지…’
'그래서였을까, 나는 꽤나 섬처럼 갇힌 곳에서 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씁쓸한 마음이 스치듯 지나갔다.
밤 8시 반.
한국이라면 늦은 시간이 아니었지만,
낯선 나라,
그것도 악명 높다고 소문 자자한 파리의 밤은 조금 무서웠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처음엔 택시를 타려고 했다.
하지만 퇴근 시간의 혼잡함, 꽤나 높은 요금,
그리고 영어가 안 통할지도 모른다는 걱정까지 겹쳐
용기를 내어 지하철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숙소까지는 단 15분.
갈아탈 필요 없이 한 번에 가는 노선도 있어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생각보다 파리의 지하철은 쾌적했고,
그토록 유명한 소매치기도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기차역부터 숙소까지 모든 구간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 순간,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30유로에 올 걸, 3유로에 왔네?”
“아낀 돈으로 맛있는 걸 사 먹어야겠다.”
파리에서의 시작,
생각보다 괜찮은데?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역시 ‘행운에도 총량의 법칙이 있다’는 말은 맞는 걸까?
파리 도착 후, 첫 위기는 숙소 매니저였다.
알려준 주소엔 문이 두 개나 있었는데, 도대체 어느 문이 숙소로 가는 문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심지어 그 문은 비밀번호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 비밀번호조차 안내받지 못했다.
급하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길거리에서 멍하니 기다릴 수 없어 결국 보이스톡을 걸었다.
매니저는 바깥 약속 중인 듯 시끄러운 배경 속에서 “비밀번호 보내줄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15분 넘게 답이 없었다.
'이 정도는 바로 답장해 줘야 되는 거 아니야?'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결국 누군가 나오는 타이밍을 맞춰 몰래 문 안으로 들어갔다.
“어쨌든, 들어왔으니 이제 올라가 볼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숙소 층에는 복도 양쪽으로 무려 여섯 개의 문이 있었다.
‘… 도대체 어느 집이라는 거야?’
다시 전화를 걸었다.
또 “곧 알려드릴게요”라는 대답만 남긴 채, 매니저는 십여 분이 지나서야 답장을 보냈다.
정말이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어떻게든 숙소에 들어오긴 했지만,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마주한 방에는 침대가 하나뿐이었다.
‘분명 더블베드를 보고 예약했는데 왜 침대가 하나지?’
나는 동행과 함께 쓰기로 한 숙소였고, 함께 비용을 나눠 예약했던 방이었기 때문에 더블 침대가 있는 방을 골랐던 거였다.
매니저에게 바로 연락해 상황을 설명했고, 씻지도 못한 채 한참을 기다리며 피곤함만 쌓여갔다.
매니저는 얼른 상황을 수습하려는 듯, “사장님이 답이 없어서 일단 옆방에 있는 매트리스를 갖다 쓰라”라고 했다.
이 문제는 다음 날 새벽에야 해결되었다.
알고 보니 실제 숙소 사장님은 한국에 있었던 것.
그래서 실시간 소통이 어려웠고, 사전 안내도 부족했던 거였다.
사장님은 “원래 4인 이상 예약일 경우에만 침대를 추가로 넣는 시스템인데, 설명이 부족했다”며
첫날과 마지막 날 추가 숙박에 대한 비용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화도 나고 짜증도 많이 났지만, 빠른 보상과 진심 어린 사과 덕분에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참 간사하다, 나란 인간… 보상 하나에 이렇게 마음이 바뀌다니.’
물론 길 한복판에서 매니저의 답을 기다리던 일은 여전히 화가 났지만,
그래도 다시 여행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파리에서의 우여곡절 입성은 마무리되었고,
정말이지 너무 피곤해서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곯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