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 미술관
동행과 어색하게 헤어진 뒤, 별다른 대화 없이 아침을 맞았다.
원래 계획은 아울렛에 함께 가는 것이었지만, 같이 쇼핑을 한다는 게 더는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늦잠을 자고 시간을 보낼 테니, 언니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첫날 가보려다 긴 웨이팅 때문에 포기했던 브런치 카페를 다시 찾았다.
아침 일찍, 출근 전의 한산한 시간이라 이번엔 줄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음료는 제법 괜찮았지만, 브런치는 다소 아쉬웠다. 그래도 이런 시간을 여유롭게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잠시 머물렀던 카페를 나서며, 나도 내 방식대로 쇼핑을 해보기로 마음먹고 길을 나섰다.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하게 빛나는 백화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 같았다.
첫날 거리를 가득 채운 파리지앵들을 보며 ‘트렌치코트나 머플러는 꼭 하나 사야지’ 다짐했던 터라, 자연스레 코트와 머플러에 눈이 갔다. 그러나 코트는 내 몸엔 너무 크고, 가격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대신 머플러를 고르려 여기저기 둘러보는 순간, 문득 떠오른 건 내 동생이었다.
‘동생이랑 같이 왔으면 참 좋았겠다. 편한 사람이 최고인데… 여기 데려왔으면 분명 좋아했을 텐데.’
여행이 길어지고, 새로운 인연들이 스쳐갈수록 오히려 소중한 사람이 더 그리워졌다.
동생에게 꼭 어울릴 것 같은 딸기우유빛깔 캐시미어 머플러를 고르고,
과일을 조금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무화과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파리의 과일들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부드러운 과육 속에 은은한 단맛이 녹아내렸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여유롭게 마치고 밖으로 나섰다.
쌀쌀한 공기 속에서도 공원 중앙 분수 앞 의자에 앉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한참이나 머물렀다.
‘이런 여유가 얼마 만이지?’
여행 와서 이렇게 오래 앉아본 적은 없었다. 기차 안에서 흘려보내던 시간과는 달리, 풍경을 마주하며 앉아 있는 건 처음이었다.
떨어지는 물소리,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뒤섞여 공기 속을 채웠다.
신기하게도 외국에서 들리는 말소리는 전혀 시끄럽지 않았다. 아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 사실은 한국에 돌아와서야 더 선명해졌다. 두 달 만에 시끄러운 버스 안에 앉아 있자, 익숙한 언어가 쏟아지는 소음이 귀에 꽂혔다. 그때 깨달았다.
시끄러운 소리도, 알아듣지 못하면 그저 배경음이 된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조금은 못 알아듣고 살아도 된다는 단순하지만 큰 깨달음을.
한참을 앉아있다가 약속한 시간이 되어 언니와 함께 오르세 미술관에 가게 되었다.
작품들은 더할 나위 없이 신비로웠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그림들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러자 20년 가까이 지난 과거, 미술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기억이란 참 묘한 거구나.’
나는 오랫동안 발걸음을 멈추고 작품들을 바라보았다.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는 더욱 천천히, 실컷 눈에 담았다.
직접 마주한 작품들 중, 유난히 가슴에 남은 건 모네의 그림이었다.
특히 까미유의 죽음을 그린 작품 앞에 서자, 그림 속에는 슬픔과 사랑이 동시에 가득 담겨 있었다.
죽음이 드리워진 순간에도, 저토록 평온하고 행복한 표정일 수 있을까.
까미유의 진짜 마음은 영영 알 수 없겠지만, 나는 그저 그녀가 마지막까지 행복했기를 바랐다.
이곳에서 가장 기대했던 건 단연 고흐의 작품들이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별 시리즈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몇몇 작품만으로도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오기 전, 닥터 후 빈센트 반 고흐 편을 보고 왔다.
현시대에 나타난 고흐가 자신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장면이 떠올랐고, 실제 작품을 보니 그 장면과 겹쳐져 더 큰 감동을 주었다.
그 순간 바랐다.
지나간 과거도, 지금의 현재도, 다가올 미래도 모두가 행복했으면. 고흐도, 나도, 이곳을 찾은 모든 이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