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베르니와 고흐마을
오늘은 유럽 여행 중 가장 손꼽아 기다린 날이었다.
지베르니와 고흐 마을, 그리고 마지막 한 곳까지 총 세 군데를 돌아보는 긴 여정이 시작된다.
투어는 새벽부터 출발이었기에, 전날 우리는 20분 먼저 모임 장소에 도착해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즐기며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침은 또다시 계획대로 흐르지 않았다. 어제에 이어 동행은 부랴부랴 준비하느라 약속한 시간에 맞춰 나오지 못했고, 우리는 허겁지겁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여유로운 아침은커녕, 제시간에 버스에 올라탄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정도였다.
가쁜 숨을 고르고 자리에 앉자, 동행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생각해 보니 일정 보니까… 유람선을 오늘 타야 할 것 같아. 투어 끝나고 밤에 가자!”
나는 잠시 멈칫했다. 시간 약속도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예고 없는 일정 변경이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게다가 창밖으로는 잔잔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밤 강바람은 분명 매서울 터였다.
“아… 나 겉옷 안 챙겨 왔어. 이렇게 추운 데 갔다간 감기 걸릴 것 같아. 나는 그냥 내일 갈게.”
내 대답이 끝나자, 동행은 잠시 당황한 듯 유랑에서 동행을 급히 구하기 시작했다.
‘거절해서 미안한데... 그냥 같이 갈까…?’ 하는 마음이 잠시 스쳤다.
하지만 아침부터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은 데다, 그에 대한 미안함조차 느껴지지 않는 표정을 보니 선뜻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침을 못 먹어 예민해진 부분도 있었다.
결국 어려운 마음을 털어내고 지금의 여행을 즐기기로 했다. 창밖 풍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오늘의 투어에만 집중했다.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지베르니 마을
아침 첫 타임이라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그림 속에서만 보던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기대했던 쨍하고 맑은 날씨는 아니었지만,
흐리고 비가 오는 하늘도 나름의 운치를 더했다.
모네의 정원은 세대를 이어 정성스럽게 가꿔지고 있다고 했다.
형형색색의 꽃들과 잔잔히 흐르는 연못은 사진 속 풍경보다 더 생생했고,
그토록 보고 싶던 장면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잠시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모네는 지금으로 치면 감수성이 풍부한 ‘대문자 F’가 아니었을까.
까미유가 세상을 떠난 뒤, 간병인과 그 자녀들을 함께 돌보며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정원이 한층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마음 같아서는 연못 구석에 앉아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두 곳을 더 가야 했고,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짧은 시간 동안 기념품 가게와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돌아와야 했다.
가이드는 뒤에 일정이 있으니 절대 늦으면 안 된다고,
어쩔 수 없이 늦는 사람은 놓고 가겠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우리는 기념품 가게를 빠르게 지나쳐 미리 봐둔 식당으로 향했다. 남은 시간은 약 20분.
아침을 못 먹은 탓도 있어 음식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시간이 5분 정도 남았을 때, 내가 먼저 “이제 일어나야 할 것 같아”라고 말했다.
약속된 장소로 향하려는 순간, 동행 언니가 “화장실만 다녀올게.”라며 자리를 떴다.
그러나 시간이 다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늦어서 민폐가 되는 게 싫었던 나는 “미안한데, 언니 우리 놓고 갈지도 몰라! 내가 먼저 가서 얘기하고 있을게!” 하고 뛰기 시작했다.
‘화장실은 좀 미리 가지… 왜 이렇게 시간을 안 지킬까. 진짜 어쩔 수 없다고 두고 가면 어쩌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허겁지겁 도착해 사정을 설명했고, 가이드는 5분 정도 기다린 뒤 인원을 확인하고 다시 출발했다.
그때 동행이 “에이, 설마 진짜 두고 가겠어? 봐봐, 아니잖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라고 말했는데, 그 한마디가 유난히 미웠다.
'모두와의 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단체생활인데,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행동하는 건 정말 싫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고 있는 걸까.'
점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 사이가 삐걱거리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 투어 중이었기에,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또 2~3시간을 달려 도착한 두 번째 장소는 고흐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고흐 마을이었다.
영화 러빙 빈센트 속 장면들이 떠올라서인지, 발걸음이 묘하게 무거워졌다.
마치 스크린 속에서 보던 붓질이 현실 속 풍경 위에 겹쳐지는 기분이었다.
마을 곳곳에는 빈센트의 그림과 함께 그가 남긴 흔적들이 설명되어 있었고,
길가에는 해바라기가 피어 있었다. 그 곁을, 고흐를 닮은 듯한 노란 고양이가 묵묵히 우리를 따라왔다.
나는 그 어느 투어보다 깊이 몰입해 걸었다.
해설을 들으며, 빗속의 하늘과 건물, 들판이 모두 고흐의 색채로 물드는 듯했다.
그 순간만큼은, 고흐의 영혼이 곁에서 함께 투어를 하는 것 같았다.
갈대밭을 지나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빈센트와 테오의 무덤이었다.
그곳에서 가이드가 Starry Starry Night, 영화 러빙 빈센트의 OST를 틀어주었는데,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그는 얼마나 처절하게 외로웠을까.
또, 얼마나 오랫동안 자기 자신과 싸우며 버텼을까.
그걸 바라보는 동생의 마음은 어땠을까.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삶과 작품을 사랑하고 있다.
만약 이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다면, 과연 그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빈센트 반 고흐가 왜 이리도 끌릴까.
아마도 마음이 쓰이는 것 같다.
그는 끝내 마음을 꺾지 않았다. 세상의 손가락질 속에서도 자신만의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치열한 이야기가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여기 이 동네는 다음에 꼭 숙박을 하며 천천히 음미해야겠다. 언젠가 네덜란드에도 가봐야지.’
그런 생각들을 품으며, 공원 한쪽 벤치에 앉아 다음 장소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다음 여정은 베르사유 궁전과 정원이었다.
이곳에서는 가이드의 설명 없이, 스스로 발걸음을 옮기며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상상 이상으로 넓고 웅장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기자기하고 고요한 마을 풍경을 보았기에, 이 화려함이 더욱 낯설게 다가왔다. 오히려 마음 한편에 반발심이 일었다.
아마도 나는 전생에 굶어 죽은 평민이었을까?
비단과 금붙이로 뒤덮인 궁전, 끝없이 미로처럼 이어진 정원은 누군가의 꿈이 아니라, 이기적인 사치품처럼 느껴졌다.
로마에서도, 파리에서도 그랬듯이 나는 이런 화려한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임을 새삼 깨달았다.
마지막 코스라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끝없이 넓은 정원 풍경은 웅장했지만, 오히려 힐링이 되기보다 압도적으로만 다가왔다. 머릿속엔 ‘투어만 끝나면 곧장 숙소로 돌아가 쉬고 싶다’는 생각만 맴돌았다.
버스에 올라 따로 돌아다니던 동행과 다시 함께 앉았다.
동행은 유람선을 안 탈 거라면 에펠탑이라도 같이 보자고 했지만,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단번에 거절했다. 그러자 동행은 “에펠탑도 안 볼 거면 미리 좀 말해주지!”라며 서운한 기색을 드러냈다.
‘아니… 언니도 아침에 갑자기 유람선 타자고 했으면서…’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대신 “마지막 투어까지 하고 나니까 진짜 너무 지쳐서… 도저히 못 갈 것 같아, 미안해.”라며 에둘러 말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서로 말없이 갈라섰다.
혼자 길을 건너던 순간, 베르사유 정원에서 잠시 동행했던 또래 친구와 중년 부부를 다시 마주쳤다. 가는 방향이 같다며 퇴근길이라 사람도 많고 위험하니까 같이 이동하자고 했다.
가는 길에 에펠탑이 불쑥 눈앞에 나타났다. ‘이렇게 가까웠나?’ 싶던 순간, 함께 걷던 또래 친구와 중년 부부가 잠시 들러 구경하고 사진만 찍고 가자고 했다.
나는 난감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저 사실 아까 동행 언니한테 에펠탑 안 본다고 했는데, 그러다 마주치면…”
그러자 또래 친구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답했다.
“아니, 잠깐의 동행인데 왜 그렇게 눈치를 봐요? 사람이 싫다고 했다가 좋을 수도 있죠. 또 가다 보면 마음이 바뀌는 게 당연한 거예요.”
그 말에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맞아. 이건 내 여행이지, 남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어.’
그렇게 잠깐 동안 파리의 상징 에펠탑 앞에 서서 점등식을 보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짧은 추억을 남겼다.
지하철에 올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래 친구는 다른 동행들과 한식을 먹으러 간다고 했고, 중년 부부도 한식을 찾고 있다며 함께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에게도 저녁 계획을 묻자, 나는 웃으며 말했다.
“저는 너무 피곤해서 숙소 들어가서 빨리 먹고 자려고요.”
부부는 처음에는 아쉬워했지만, 내릴 때쯤엔 “그냥 같이 먹어요. 이 먼 곳까지 와서 혼자 대충 때운다니 신경 쓰여.” “우리 딸도 30대라서 그런가, 자꾸 생각이 나서”라며 따뜻하게 설득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그래, 이왕 이렇게 고생했는데 든든하게 먹고 마무리하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부부와 함께 저녁 자리를 향했다.
얼큰한 뼈해장국을 내주는 한식당. 젓갈을 쓰지 않은 김치는 깔끔했고, 한국에서 먹던 맛과는 전혀 달랐다.
낯선 땅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오래 기억될 맛이었다.
‘정말, 아까 숙소로 돌아갔다면 크게 후회했을 거야.’
그런 생각이 들 만큼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함께한 중년 부부는 자식들을 다 키운 뒤에야 비로소 여행을 시작했다고 했다. 투어 내내 두 손을 꼭 잡고, 왼손잡이 아내를 위해 자리를 바꿔주는 남편의 모습은 다정했고,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 저런 사랑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품었다.
늦은 나이에도 서로를 아껴주고 다듬어 줄 수 있는 관계. 내가 늘 동경하던 이상적인 모습이었는데,
이런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걸까.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부부는 자식을 대하듯 따뜻하게 밥을 사주셨고, 나는 그 다정함이 오래도록 이어져 두 분께 행운과 행복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국에서 미리 구한 동행과는 삐걱거리고 어긋났지만, 또 이렇게 새로운 인연이 스쳐 지나가다니.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것 같았다. 계획이 늘 정답은 아니라는 걸, 이건 여행이 계속되면 될수록 많이 느껴지고 점점 더 커다랗게 다가왔다.
짧지만 이런 순간들이 결국 가장 오래 남는 기억이 되겠지.
헤어짐이 아쉬운 채 그렇게 길고 길었던 하루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