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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 MaSill May 29. 2024

시공詩空의 중심에서

국현

  서울시립미술관의 ⟪시공 시나리오⟫전은 미술관의 내외부적 변화를 심도 있게 탐색하며 미술관 건축을 시간을 중심으로 사유하고자 기획되었다. 서울 전역에 분관을 운영하며 시대와 미술의 흐름을 만들어 나가는 서울시립미술관이기에 이 전시를 기획한 의의가 더해진다고 보였다.

  전시는 최근 국공립미술관의 건축적 노후화에 따른 다양한 논의에서 출발한다. 미술관이라는 특별하고도 상징적인 공공건축 속에 함의된 '건축의 생애 주기'에 주목한다. 또한 건축가가 참여하지 않는 건축 전시인 동시에, 미술관에 내재된 시간과 공간에 대한 다차원적인 접근을 통해 미술관 경험의 가치를 일깨우며 미래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본 전시는 '건축과 시간', '미술관의 시간', '상상의 시간'으로 분류되어 총 세 개의 관으로 나뉜다.

  첫 번째 전시관인 '건축과 시간' 공간에서는 건축물이 가지는 공간적 특성만 아니라 건축물 자체로 인간 역사의 기록물이며 시간의 구조물임을 제시하는 작품이 등장한다. 서도호의 ⟨통로:문래동⟩은 사라져 가는 문래동의 금속기계 단지 골목을 촬영하여 3 채널 영상작업으로 모여주어 관객이 실제 걷는 듯한 체험을 하게 만든다. 칸디다 회퍼의 사진 작업들은 시간이 담겨있는 건축물의 일부를 촬영하여 제시하고, 배정헌의 ⟨면벽유객_터널시리즈⟩는 터널의 내부 벽면을 채취하여 낡은 페인트 흔적이나 마모된 자국 위에 산수를 그리는 회화적 맥락을 보여준다. 이희준은 서울시립미술관의 사진 기록물을 이용하여 건축물의 다층적 시간을 접는 조각, 대형 회화로 선보인다.

  두 번째 전시관인 '미술관의 시간'에는 박기원의 설치작업 ⟨수평선⟩과 서울시립미술관의 평면도를 재해석하여 큐브로 재현한 구동희의 ⟨트리플⟩, 세계 각국 미술관의 기념품을 한데 모아 확장된 감상방식을 보여주는 김예슬의 ⟨선물 가게 선물⟩, 해당 전시관의 기존 조형 요소인 유리 가벽과 나무 바닥을 작품으로 재해석한 김민애의 ⟨푸른장벽 a⟩, ⟨ㄱㄱㄱㄱㄱㄱㄱㄱㄱ⟩, 고대 미술관의 배치를 그래픽 설치 작업으로 재현하여 미술관의 분류체계에 대한 의심을 제시하는 윤현학의 ⟨기억술⟩ 등이 전시되고 있다.

  마지막 전시관인 '상상의 시간'. 오디너리 피플의 ⟨불길⟩, 포스트 스탠다즈의 ⟨다목적 미술관⟩, 김도균의 ⟨sf.sel_sema-1⟩로 구성되어 있다. 앞선 전시가 공간, 미술관에 담긴 시간을 서사적으로 보여주었다면, 마지막 관에서는 미술관이 앞으로 지향해야 하는 바를 상상하고 제안해 볼 수 있는 미래 지향적 주제의 작품이 주를 이뤘다.

  관람하며 가장 의아했던 것은 작품의 배치와 관람 동선이었다. 첫 번째 관의 경우 관람 팜플렛에는 서도호의 대형 영상설치 이후에 이희준의 작품을 관람하게 되어있는데 이희준의 경우 전체적인 전시의 맥락과 맞는 작품 이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단독 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나머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관에서 커튼을 지나 이동하게 동선을 구성한다. 또한 영상작업의 설치로 인해 어두운 1관의 조명과는 다르게 매우 밝은 공간에서 전형적인 회화와 조각 전시의 형태로 전시되고 있다. 이는 칸디다 회퍼나 배종헌의 사진, 회화 작업이 영상작업물의 어두운 조명에 가려져 색과 텍스쳐가 제대로 구분되지 않는 것과 다른 양상이다. 또한 관람객의 동선이 1관에서 2관, 다시 1관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점에서 의문스럽다. 또한 서도호와 칸디다 회퍼, 배종헌의 작품들이 '건축'에 담긴 시간을 보여주는 공간을 제시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과 달리 이희준의 작업들은 '미술관'이라는 특정 공간을 재해석하고 이미지화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어 뒤에서 언급할 두 번째 전시관 '미술관의 시간' 주제와 더 부합하지 않나라는 의문이 든다. 이러한 문제점이 전시 전반에 걸쳐 계속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주제 선정의 당위성과 배경은 이해하나 작품 선정과 배치가 주제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끼워 맞춰 모은 듯 아쉽다.

좌) 서도호의 영상설치, 실내조명 및 전경 / 우) 전시관 사이의 통로 커튼 가림막, 이희준의 대형 회화 작업


  두 번째 전시관도 마찬가지로 전체적인 작품의 주제와 맥락이 합을 이루지 않으며 그 다양성을 중점으로 본다 한들 관객이 작품을 개별적으로 받아들이기에 편리한 동선이 아니라는 것이 아쉬운 점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 관보다 실내 시야가 밝아 작품 각각의 매력에 보다 탐구해 볼 수 있었는데 특히 김민애 작가의 ⟨푸른 장벽 a⟩의 경우 서울시립미술관을 방문할 때마다 자주 볼 수 있었던 유리 가벽과 특징적 무늬의 나무 바닥의 질감을 활용하여 해당 공간을 매력적으로 해석한다. 처음부터 공간과 시간을 분리하여 주제를 설정할 수 없었는지, 비슷한 작품을 모아두고 허울 좋은 주제를 붙인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작품 선정의 타당성 면에서 치밀하게 기획된 전시가 아닌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좌측부터 순서대로 김예슬, 구동희, 윤현학의 작품들


  세 번째 전시관은 관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큰 규모의 설치작업이 눈에 띄었다. 전시 공간이 다른 관들과 동떨어진 3층에 위치해 미술관 공간에 대한 서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닌 다른 체험형 전시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포스트 스탠다즈의 ⟨다목적 미술관⟩의 경우 앞선 관의 다양한 작품들 옆에 설치되는 것이 미술관의 공간을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작품의 본 의의를 더 인상 깊게 남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최근 미술관 전시에서 관람객이 앉거나 눕게 하는 공간 설치형 작품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제껏 보아온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개성이나 차이점을 느낄 수 없어 전시의 정체성을 지루하게 만드는 요소들이었다.

  공간이 시간을 담고 있다는 개념에서 시작한 점은 흥미로웠다. 다만 이 서사를 병렬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제시한 부분이 기존의 전시들과 차별점을 두지 못했다. 특히 전시관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전시가 말하고자 하는 최종 메시지인 '미술관의 공간과 기능의 활용, 그리고 그것에 대한 질문'에 대해 참신한 담을 내놓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울 것이다.

좌)오디너리 피플 ⟨불길⟩, 우)전시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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