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
우리는 모두 비슷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렇지만 오해를 해선 안된다. 이 말이 ‘모든 사람은 천편일률적 인생을 살아간다'라는 뜻은 아니다. 눈을 뜨면 하루를 시작하고, 늘 화려하진 못해도 나름대로 고심한 메 뉴로 식사를 한다. 또 사람들과 즐거운 안부를 주고받거나 대화를 나눈다. 이러한 보편적인 모습 속에서 도 우리는 각자의 마음 속에 특별한 순간들을 간직하고 있다.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개개인의 삶 은 독특하고 다양한 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어떤 날은 우리가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것들이 갑 자기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 당기기도 한다. 매일 당연하게 불어오는 바람이라도, 찰나의 시원한 촉 감에 문득 큰 미소가 지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유근택: 오직 한 사람》에서는 작가 유근택의 시선으로 포착한 일상들을 엿볼 수 있다. 특별하지 않은 일 상 속에서 모순적인 특별함을 발견하고, 그것을 하얀 배경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 면 익숙한 천변 풍경도 색다르게 다가온다. 내가 발견한 색다름은 앞서 작가가 발견했을 그것이다. 성북 천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을 그린 〈풍경 시리즈〉에서는 일상을 대하는 작가의 시선이 잘 느껴진다. 성북천을 거닐는 사람들과 풍경을 이루는 배경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작가는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성북 천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풀 더미’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시간에 따라 무성한 풀들은 곧게 서있기도, 이리저리 흔들리며 뒤엉켜있기도,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일부만 드러내기도 한다. 가장 변할 것 같지 않 지만 수많은 변화를 통해 존재를 드러내는 자연에서 작가는 일상의 특별함을 발견했다. 누군가는 이 풀더 미들을 당연시하며 지나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당연한 일상의 요소를 꾸준히 관찰하고 그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했다. 〈풍경 시리즈〉를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아닐까 싶다. 일상의 특별함 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마음을 주고 바라보며, 나타나는 변화들에 저마다의 의미를 붙여주는 것. 그리고 나만의 의미를 가진 특별한 것들이 쌓여 풍요로운 일상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감상에는 작가만의 독특한 표현 기법도 큰 몫을 한다. 유근택 작가의 작품은 한순간 강렬 한 자극을 느끼는 그림이 아니다. 한지를 짓이기고 마티에르 기법을 사용하는 등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그의 표현기법은 그림을 오래도록 바라보게 한다. 뭉개진 듯, 혹은 정교하게 쌓아진 듯 알쏭달쏭하다. 천 천히 음미하듯 감상하며 그림과 대화를 하는 듯한 기분까지 든다. 종이의 거칠고 튀어나온 질감을 통해 작가의 붓질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다. 작가가 특정 대상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들이 보다 선명하게 다 가온다. 이러한 독특한 질감을 통해 작가의 시선을 함께 따라가며 그가 담아낸 특별한 세계를 찬찬히 경 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