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은
예술 작품의 토대는 무엇일까?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 전시는 그 질문에 매우 흥미로운 대답을 제시한다. 그의 작품 ‘하루의 삶’ 속에는 작가의 얼굴을 본뜬 마스크를 쓴 남자, 즉 작가의 도플갱어가 그가 만든 상상의 세계에서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구현된 세계는 현실과 닮아 있으면서도 이질감이 든다. 물이 없는 바다 속, 장난감 같은 자동차, 새가 지저귀지 않는 숲 속 등 합판과 골판지 따위로 만들어진 그 세계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작가의 상상력에 동화된 채로 그의 꿈속을 거닐고 있다. 그는 바깥에 나가지 않고 상상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것으로 충분히 작품의 튼튼한 밑바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공상은 매우 강력한 도구이다. 작가는 이 도구를 통해 관람객들을 자신의 세게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누군가가 떠나는 상상 속의 여행을 목격하고, 그 세계 안의 오브제들을 현실에서 마주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다. 마치 나도 함께 그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기 때문이다. 작가의 투박한 손길을 보고 웃음 짓기도 하고, 어렸을 적 골판지를 가지고 놀던 경험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 전시가 주는 또 다른 매력으로는 ‘쉽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음역대가 낮고 흥얼거리는 듯한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 음악이나 사용자의 편의에 맞춰 매우 적은 양의 학습을 제안하는 이지 러닝(Easy Lerning)등이 인기가 많은데, 이 전시야말로 그러한 흐름에 잘 맞는 전시인 것 같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고, 사용한 재료의 물성 등을 가늠해보는 것은 고도의 몰입을 필요로 하고 때로는 고단한 과정이다. 그러나 이 전시는 몰입이 매우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를 반기는 도플갱어의 마스크, 그가 떠나는 여행의 다큐멘터리, 그가 보고, 만졌던 오브제들은 하나의 연극처럼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시 팜플렛을 들고 전시장을 둘러보는 내가 마치 초대장을 받고 온 손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자른 나무 합판과 골판지, 꼼꼼하지 않은 채색 등이 어린 아이의 손장난 같은 작품들을 보며 나는 의외로 편안함을 느꼈다. 아마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이기에 솔직하고, 다가가기 쉬웠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점점 편리함에 익숙해져 간다. 그리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많은 것을 얻길 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시는 매우 적극적이고, 편리한 전시였다. 항상 잘 다듬어지고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던 나의 강박관념이 이 전시를 통해 수그러들었으며, 긴장을 풀게 되었다. 전시를 즐기지 않는 나의 친구들도 리너스 반 데 벨데의 전시를 ‘망고’라고 부르며 매우 좋아한다. 이러한 전시가 더 많아지고 또 이것을 편하게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