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김성환 개인전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인생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우린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던 홍상수 감독의 시사회 인터뷰가 생각난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어떤 것에서 과연 온전히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앎’이라는 것은 실로 무거운 어휘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의 세 개의 방을 가득 채웠던 무수히 많은 아카이빙들은, 이제껏 우리의 관심 밖에 있던 소외된 이면들이 드러나기를 갈망한 김성환(B.1975)의 부지런한 예술적 실천으로 보인다. 이러한 역사적 아카이빙이 박물관이나 역사기념관 등의 장소가 아닌,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전시될 때의 의의는 무엇일까.
김성환(B.1975)이 아카이빙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행위들은 분명 예술적 실천이다. 이를테면, 2017년부터 작가가 천착해 온 다중 연구 연작 〈표 해록(A Record of Drifting Across the Sea)〉(2017~)은 1900년대 초 하와이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이민자들의 서사를 여러 논제들로 확장하며 일반적인 역사에서 서술된 것 너머에 존재하는 이들의 삶을 쫓았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말을 빌리자면, 무지를 자각하는 것이 존재를 이해하려는 계기가 된다. 우리가 ‘앎’이라고 어겨왔던 기존의 지식의 체계가 소외된 개인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재맥락화하는 과정은, 기록된 역사를 기반으로 설명하고 재현하는 역사기념관, 박물관의 성격과 사뭇 거리가 있다. 다만, 그와 동시에 역사로부터 남겨진 물질적 기록과 그 보존 역시 미술관이 공유하고 있는 본연의 책무이기도 하다. 작가는 문화와 역사의 밀접한 관계를 인식하고, 고정된 서사에서 벗어나 다층적인 내러티브를 다루고자 하는 유연한 틀이자, 역사를 새롭게 사유하는 장소적 맥락으로서 미술관의 전시 형식을 빌린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하와이’는 삶, 민족, 역사, 전통, 문화가 복합적으로 혼재하는 지리적인 장소이자, 진취적으로 모색해 보기 위한 개념적인 장소, 실로 무거운 ‘앎’의 의미를 확장시켜주는 은유로서 주목하고 있는 공간이다. 사회 시스템 내에 잠재된 기억과 역사, 감정의 흔적들 간의 관계를 시각화해온 김성환(B.1975)
의 작업은, 지금까지도 일관된 태도를 보여준다. 특히 〈표해록(A Record of Drifting Across the Sea)〉(2017~) 프로젝트의 초기엔 하와이에 직접 체류하며 몸으로 겪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수집하는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나아가 그 결과물을 단순히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잔뜩 덧대어져 얽혀있는 대상을 바라보는 방법론을 제시한 점에서 작가의 다원적이고 실천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액츄얼리나의 막걸리 만들기〉(2020)은 '액츄얼리나'라는 가상의 크리에이터가 동영상 공유 플랫폼의 개인 방송을 통해서 막걸리 제조 과정을 설명하는 비디오 작품이다. 작품에서 액츄얼리나는 ‘누룩’, ‘고두밥’ 같은 단어를 능숙하게 쓰고한복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한국성과 어딘가 어긋나 있는 외양이다.
이 어색한 간극은 그녀가 반복과 모방 속에 놓여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렇듯 작가는 서로 다른 두 문화를 나란히 병치하고 상호 비유하는 방식을 자주 활용하는데, 그는 “하나의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의미를 옮기기 위해, 은유를 통해 양 문화 간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방법이 있다"라고 말한다. 나아가, 한 문화는 다
른 문화의 은유가 될 수 있으며, 그 반대도 가능하다고 덧붙인다. ‘하와이’는 그의 시선에서 역사를 이해하는 은유적 장치로 제시된다.
아울러, 그의 문화 병치 전략은 개인의 행위에서 공간의 흔적으로까지 확장된다. 예컨대,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 변화해온 광화문의 모습, 영화 속에서 불타는 장면 등의 기록을 함께 엮어, 역사 속에서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졌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대상들을 통해 작가는 ‘무엇이 남겨졌는가’라는 공통된 흔적 속에서 우리가 주목하고 성찰해야 할 지점을 묻고 있다. 그렇게 20세기의 얽히고설킨 역사와 권력의 교차점들을 제도와 인식의 틀 속에서 다시 바라보는 이 작업들은, 동시대 미술관이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지식의 생성과 순환의 매개로 작동할 수 있음을 환기시키며, 미술관의 기능에 대한 성찰적 계기를 마련한다.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정보와 해석이 범람하는 동시대 사회 속에서, 김성환(B.1975)은 대척점에 서서 날카롭고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기존의 인식 틀에 균열을 내고, 이질적인 지식 체계들이 교차하는 지점을 끊임없이 탐색했으며,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어보기 위한 시도에 집중했다. 손을 뻗고, 낯선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에 망설임이 없었다. 전시라는 실험적 구조를 통해 ‘앎’이 유동하고 생성되는 속성과 방식을 은유하며, 역사라는 지식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되묻고 있다. 이러한 과정 자체가 그가 말하고자 했던 진정한 앎의 의미였다. 관객은 더 이상 완성된 장면의 수동적 감상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 개인의 사유가 ‘앎’이라는 형식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목격자이자, 창작의 일부로 개입하는 적극적 행위자로 작동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를 염두에 둔 그의 기획 의도는, 김성환(B.1975)이 정답보다는 질문을 지속하는 태도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김성환(B.1975)의 작업은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던 소크라테스의 이 오래된 역설적 진술과 긴밀히 맞닿아 있다. 작가는 완성된 진리를 제시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멈추지 않는 질문을 통해 앎의 구조를 뒤흔든다. 그에게 있어 ‘앎’이란 무지를 자각한 상태에서 시작되는, 고정되지 않는 진실을 향한 실천적 태도이자 살아 움직이는 사유의 운동이다. 관객은 그 탐색이 공간화된 사유의 장을 통해서 어떤 결론도 없이 공존하는 사유의 현장을 목격하며 스스로 질문의 주체가 되어간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으로부터 기꺼이 다가갈 수 있다는 몸짓으로,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로부터의 이해를 관철하려는 의지로.
김성환 개인전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서울시립미술관, 2024.12.19.~2025.3.30.)의 설치전경 일부,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