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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 MaSill May 25. 2024

망고에서 욕조를 먹는 반 데 벨데

윤 진


  리너스 반 데 벨데의 전시는 아트선재센터와 스페이스 이수에서 3 월 8 일부터 5 월 12 일까지 개최한다. 리너스 반 데 벨데는 회화, 설치, 조각, 영상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는 순환적 내러티브를 탐구한다. 평행 우주이론에 관심이 많은 반 데 벨데는 이번 개인전에서도 자신을 찾아가는 작가 특유의 상상적 여행을 회화와 조각 그리고 영상으로 펼쳐 보인다. 전시에서 작가는 미술사를 가로지르며,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에밀 놀데(Emil Nolde, 1867–1956),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 등을 만나는 예술의 모험을 떠난다. 특히 마치 자신이 태양광선 아래서 자연을 그리고자 했던 20 세기 초의 외광파 작가가 된듯한 ‘허구적 자서전’에 기반한 작업들을 중심으로 전시가 구성되어 작가의 최근 작업 세계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조각, 영상, 평면 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자신의 작업 세계를 보여준다. 2층 전시장 입구에는 그의 alter ego를 보여주는 라텍스 가면이 보이고 영상 작업에서 쓰인 다양한 오브제들 이 전시되어 있다. 벽면에는 그의 평면회화들이 걸려있다. 3층도 동일하게 전시되어 있다. 그는 인 간의 상상과 공상을 바탕으로 작업 세계를 이어간다. 2 층의 영상 작업은 ⟨라 루타 내추럴⟩로 아트선재센터에서 발행한 전시 도록에서는 ‘작가가 자신의 다양한 분신을 만들고 결국 사라지게 하 는 순환적 이야기‘라고 설명되어 있다. 영상은 시작과 끝이 없다. 관람객이 어느 타이밍에 들어가서 보아도 상관없는 구조로 짜여있어서 몰입하기 좋았다. 영상 작업에 쓰인 오브제들은 주로 나무나 골판지로 만들어져 멀리서 보면 실제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허접함이 드러나 허구성을 잘 보여준다.  

  작가가 굳이 골판지로 재창작한 이유는 상상과 허구를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실제 사이즈의 오브제도 있지만 미니어처 건축 모형도 있다. 작가는 굳이 실제와 똑같으려 노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허술함과 이질감을 상상의 도구로 활용한다. ⟨라 루타 내추럴⟩ 속 주인공(반 데 벨데의 alter ego)은 골판지 자동차를 타고 험준한 언덕길을 올라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미니어 처 모형이 그 장면을 채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엄청난 그래픽 기술로 해결하거나 실제 장소를 찾아 촬영할 텐데 어딘가 엉성한 모형이 그 자리를 대신하니 불쾌한 골짜기 같은 느낌이 들면 서도 작가의 상상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영상 속 반 데 벨데의 또 다른 자아는 순환 구조 아래 계속해서 자아를 죽이게 된다. 티몬 칼 레이타의 글에서는 ‘우리는 반 데 벨데의 도플갱어가 영구적인 순환의 미로에서 탈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따라갔다. 계속 제자리로 돌아오는 출구 없는 순환 회로 속에 갇힌 인간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시작 장면과 똑같은 장면으로 끝나게 되는데, 이로써 존재의 무의미 함에 대한 우화로 거듭난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글을 인용한 이유는 반 데 벨데의 alter ego를 영상의 순환 구조 아래 계속해서 죽여나가는 부분에 의문이 들어서인데, 칼레이타는 가면 뒤의 인물은 결국 우리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나는 다른 자아가 또 다른 자아를 쫓고 죽임을 반복함으로써 작가는 개인적 성찰 혹은 상상의 반복을 의미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3층의 영상 작업 ⟨하루의 삶⟩에서는 반 데 벨데가 과거 외광파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는 것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있다. 세잔과 닮은 가면을 쓴 인물이 등장해 그에게 서류가방을 전달해주는데 주인공은 그것을 자신의 금고에 보관하는 장면이 있다. 서류가방은 곧 외광파 화가들의 삶과 작업방식을, 금고는 반 데 벨데의 머릿속을 의미했다고 생각한다. 장 팅겔리의 톱니바퀴, 세잔의 정물화, 데이비드 호크니의 수영장, 모네 모습의 조각, 마티스의 인용구, 뒤샹의 로즈 셀라 비 등 다양한 화가들의 작업이 그의 영상 작업뿐만 아니라 평면회화, 조각에서 드러난다. 나는 처음에 이를 ‘전유’라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반 데 벨데가 그들의 작업 세계를 모방한 것보다 계승했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 느꼈다. 미술사를 배우면 19 세기 폴 세잔을 시작으로 사진처럼 그리던 화풍에서 벗어나 작가 개인의 시선과 새로운 표현 기법이 중요시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작가 들은 유명세를 얻고 새로운 미술사를 써 내려간 것처럼 반 데 벨데도 새로운 미술사적 흐름을 만 들기 위해 작업에 많은 고민을 녹여내었고 그 과정에서 전유와 계승의 흔적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단순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점에 자신의 상상력을 구체적이게 구현하여 설득력을 높임과 동시에 관객들의 흥미도 사로잡은 점이 인상 깊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렸을 적 상상과 공상을 많이 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커가면서 그 능력은 더 이상 쓸모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상상의 나래는 여전히 어렸을 나이에 머물러 있다. 공상을 많이 하는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지 못한 괴짜라는 인식과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이라 생각하는 인식이 많았던 것 같다. 적어도 내 주변엔 상상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 입시와 수능은 더더욱 상상을 할 필요를 없게 만들었다. 그저 완벽히 암기하고 있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 이 중요했는데 대학에 입학하고 나만의 예술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 놓이니 부족한 상상력을 끌어다 쓰는 게 힘들고 특히나 이를 작업으로 구체화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느껴졌다. 필자는 졸업 전시를 앞두고 좋은 작품을 뽑아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요즘 반 데 벨데의 전시가 미약하지만 전환점이 되었다. 상상을 담아내는 방식은 다양하고 오히려 모든 부분을 구체적으로 구현시 키기 어렵다는 점을 인지하니 좀 더 편하게 내 작업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상상은 되려 현실을 뚜렷이 비추는 역할을 자처한다. 망고에서 욕조를 먹는 상상은 더 이상 우리에게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각주]

 출처 : 아트선재센터 홈페이지 전시 소개글 

https://artsonje.org/exhibition/%EB%A6%AC%EB%84%88%EC%8A%A4-%EB%B0%98-%EB%8D%B0-%EB%B2%A8%E B%8D%B0-%EB%82%98%EB%8A%94-%EC%9A%95%EC%A1%B0%EC%97%90%EC%84%9C-%EB%A7%9D%EA%B3% A0%EB%A5%BC-%EB%A8%B9%EA%B3%A0-%EC%8B%B6%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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