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아
전시를 감상하고 나와 처음 느꼈던 것은 피로감이었다. 1층부터 3층을 두루 쓰는 작지 않은 전시였고, 전시 후반으로 갈수록 관람자의 피로가 쌓이고 전시가 가지는 힘이 약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1층을 몇 시간에 걸쳐 돌아보고 나니 2층 이후의 장편 영상물들은 대부분 전부 보지 못하고 나오게 됐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1층의 평면, 입체 작품들과 짧은 러닝타임의 흥미로운 영상 작품들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섹션을 테마별로 나누어 구성한 것은 좋았지만, 전시 감상자들이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즐길 수 있도록 감상에 물리적인 시간이 드는 장편 영상물과 타 작품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조화를 맞추었으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40-60분 길이의 장편 영상 작품들을 전시 후반부에 연달아 배치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피로를 느끼게 했던 점이 가장 아쉬웠다. 또 전시장의 테마별로 벽지와 바닥의 색상을 달리하긴 했으나 전반적으로 어둡고 단조로운 분위기가 피로감을 심화시켰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주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일지도 모르지만, 섹션별 테마 간 개연성이 모자랐다고도 느꼈다. 주제들이 전시장 테마 컬러처럼 그라데이션으로 흘러가기보다 군데군데 뚝 끊긴다는 느낌이 느껴졌다.
하지만 별개의 이야기로, 1층 초반부 조지아나 하우튼 작가 연작의 디스플레이는 매우 마음에 들었다. 작가가 화지 뒷면에 적어둔 혼잣말 같기도, 편지 같기도 한 작가 노트를 함께 관람하도록 투명한 가벽을 세운 점이 좋았다. 또 작가 노트가 적혀 있지 않은 작품의 뒷면 아래에도 캡션용 패널을 부착하여 그 공백이 미완성보다 공백 자체로 읽힐 수 있도록 유도한 점도 아주 좋았다고 생각한다.
해당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조던 벨슨, ⟨매혹⟩, 1961. 16mm 필름을 변환한 단채널 비디오(컬러, 사운드, 디지털 복제), 8분(반복 재생) 외 1이다. ⟨매혹⟩에서는 우주의 장엄함을, ⟨명상⟩에서는 명상 시의 내면을 추상적인 형태와 색상으로 시각화한 영상 작품이다. 전시장 초반에 위치한 작품이었고 러닝타임이 길지 않기 때문에 관람하기 비교적 좋았다. 그래서 인상에 깊이 남았다. 소위 ‘불멍’하듯 작품의 제목처럼 명상하는 기분으로 감상하였다.
작품 내적으로는, 그것이 의도한 효과인지는 모르겠으나 검은 ‘무’의 화면과 강렬한 색채를 가진 도형의 대비로 생기는 잔상 효과에 가장 주목했다. 가시적인 요소와 비가시적인 요소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활용되었다고 느꼈다. 또 개인적으로 평면 매체로서의 영상이 가지는 가장 큰 특성이 시간성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십분 활용한 입체적인 작품인 것 같았다. 깜박이는 형태, 순식간에 지나가는 현재였던 과거의 모양이 관람자의 눈 속에 남아 검은 스크린 천 위에 재현되는 그 순간이 좋았다.
기획 면에서는 스크린의 크기와 의자의 배치, 작품 전시 공간의 크기 등이 가지는 중요성을 곱씹어보게 되었다. 다양하고 맥락 없는 불특정한 추상 도형들이 거대하고 어두운 공간 안에서 비추어지니 그것만으로도 작품의 첫인상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고, 이에 따라 후일 작품을 제작할 때 가능한 한 명확하게 전시 가이드라인을 세울 필요성을 실감했다.
⟪강령: 영혼의 기술》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25.08.26. – 2025.11.23.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