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크골프를 쳤다.
일찍 일어났더니 추위가 느껴졌다. 원피스형의 따뜻한 잠옷이지만 이대로는 추울 것 같아서 옷장을 열고 융단으로 된 잠옷바지와 원피스를 덮쳐 입었다. 내려다본 옷차림에 웃는다.
요즘은 시골에 사는 왕언니들도 옷을 잘 입는다. 세련된 옷이라기보담 제철에 맞는 옷을 제대로 입는데 예전의 시골 할머니들은 겨울이 되면 옷에 옷을 겹쳐 입었다. 하나를 입었는데 추워서 또 하나를 더 입다 보니 몸에다 옷을 쌓아놓은 듯했다. 작가가 그 모습을 닮았다.
옷을 왜 입을까? 연약한 인간에겐 추위와 더위를 피하고 피부를 보호해 줄 옷이 필요했는데 살기가 나아지고 나니 옷을 입는 이유도 여러 가지가 되었다. 잠을 잘 때는 잠옷이, 운동을 할 때는 운동복이, 일을 할 때는 일복이, 외출할 때는 외출복이 필요해졌다. 세분을 잘할수록 세련된 사람으로 여겨진다.
시골살이의 좋은 점은 옷에다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된다는데 있다. 멋진 옷이라고 입어봐야 알아줄 이도 없고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화가가 칠면조라고 별명을 붙여준 때도 있었는데 외출복 겸 일상복으로 옷두벌을 번갈아 세탁하며 여름 한철을 보내었더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수요일은 수영강습이 없는 날이어서 파크골프 운동을 하기로 했다. 조카에게 함께 운동을 하자는 부탁을 해 두었더니 하루전날 전화가 왔다. 지난 2월에 조카와 파크골프를 쳤으니 거의 8개월 만이다.
화가가 바깥 창고에 넣어두었던 파크골프 용구를 부지런히 챙기더니 이쁜 아이가 사준 올록볼록한 점퍼를 입겠단다. 어떤 옷인지 알겠는데 화가의 옷장을 죄다 뒤져도 점퍼를 찾을 수가 없다. 별관으로 가서 옷장 바닥에 숨어 있는 점퍼를 찾고 나니 금광에서 금맥을 발견한 기분이다.
화가가 지정한 옷을 찾기 어려울 때는 많고 많은 옷 중에 왜 하필 그 옷만 고집하느냐며 다른 옷을 추천했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화가는 옷에 한번 꽂히면 반드시 그 옷이어야 한다. 오래도록 함께 살다 보면 부딪힘을 피하는 기술이 늘어나는데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의 기침소리만으로도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채었더랬다. 언제쯤 그런 경지에 오를까.
이쁜 아이에게 달걀을 택배로 부쳤다. 작은 스티로폼 상자 두 개에 15개짜리 달걀통 3개와 10개짜리 1개를 나누어 넣었더니 상자하나에 빈 공간이 생겼다. 냉동고에서 작은 보리찹쌀빵 다섯 개를 넣었더니 상자가 꽉 찼다. 마음이 꽉 찼다.
파크골프장에 도착하여 조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도착 1분 전이란다. 처음 가보는 곳인데 조카는 그곳에서 두어 번 운동을 해 보았단다.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고 잔디관리가 잘 되어 있어서 운동하기 좋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다.
한과를 만들어 판매하는 부부가 사설골프장을 만들어서 1만 원의 사용료를 받고 운영하는데 지역민은 5천 원이다. 조카가 미리 계산을 해 두었단다. 화가가 18홀을 돌고 나서 쉬겠다고 하여 조카와 둘이서 18홀을 더 돌아 36홀을 모두 돌았다.
남자사장과 대화를 하고 있던 화가가 인사를 하란다. 남자사장은 화가와도 잘 알지만 조카의 남편과는 학교동창이며 절친이니 시간 나면 그냥 와서 운동을 즐기란다. 계산은 제대로 해야지요~ 라며 조카가 벌써 사용료를 입금했다는 말을 전했다. 돈관리는 집사람이 한단다. 그럴 줄 알았다.
조카가 맛집을 알고 있단다. 초등동창의 부인이 운영하는 식당인데 낙지볶음이 맛나더란다. 조카가 설명하는 초등동창의 인상착의가 화가가 알고 있는 이와 닮아서 이름을 물었더니 바로 그 사람이다. 복싱운동을 했는데 기분대로 살다 보니 사람 여럿을 때려서 소문이 파다하게 났던 이란다.
낙지볶음을 먹고 있는 중에 조카가 동창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화가와의 사이를 알렸더니 부리나케 달려왔다.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사무실에서 차 한잔 나누고 가시란다. 식당의 뒤쪽에 마련해 둔 사무실에서 배달되어 온 생강차를 마셨다. 보온병에 생강차를 배달해 온 이를 보며 신기해한다. 아직도 차 배달을 하는 다방이 있다.
사무실의 벽에 건투선수 박종팔과 찍은 사진이 붙어있어서 왕년에~ 얘기로 꽃을 피웠다. 트위스트 김과 춤대결에서 2위를 했던 친구가 춤을 추는 영상을 보여주며 5년간 춤추러 다녔단다. 춤출 때 신는 신발과 혁대를 찾아서 보여주며 여기에 명품시계까지 곁들이면 억대를 걸치고 춤을 추게 된단다. 장화 같은 신발에 평범한 혁대이고 시계는 시간만 맞으면 그만인데~웃는다.
집으로 오기 전에 병원에 들러서 교통사고로 입원한 이웃의 병문안을 했다. 트럭을 타고 읍내로 오는 중에 작은 USB승용차와 부딪혔단다. 승용차운전자는 여성인데 시골집에 들렀다가 대구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다가 중앙선을 침범하여 과실 100:0을 받았단다. 트럭은 교통사고가 나면 운전자가 절단 납니다~ 차량의 앞이 절벽이어서 그렇습니다. 트럭이 힘이 센 줄 알았는데 더욱 위험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사고가 나고서 5시간을 구급차를 타고 뺑뺑 돌았단다. 부산의 대학병원에서 받아 준다고 하여 갔을 때는 밤 11시가 넘었더란다. 구급차 안에서 죽는다는 소식이 실감이 나더란다. 상급병원에서는 수술만 끝나면 1주일 만에 퇴원을 하라고 하는데 자신은 중상이어서 2주간 있다가 집이 가까운 시골병원으로 옮겨 왔단다.
골반뼈가 으스러져서 회복되려면 1년은 족히 걸린단다. 처음엔 눈물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평생에 아파본 적이 없는데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꼼짝을 할 수가 없으니 지금도 집사람이 고생이 많습니다. 그의 얘기에 너무 일을 많이 해서 좀 쉬라고 그러신 것 같다고 해 주었다.
이웃은 건축 관련 일을 하는데 낮에는 건축일을 하고 오후 늦게 과수원으로 와서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농사일을 했더랬다. 그가 돌보던 대봉감밭의 감들이 익어가는 데 수확은 누가 언제 할 것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도맡아서 해 줄수도 없는 일을 물어보면 마음만 아프다.
힘내라고 박카스와 금일봉 봉투를 두고 나오며 어서 낫기를 기도드렸다. 동네 아지매들이 병문안을 와서 울어서 난리가 났더란다. 아지매로 불리는 왕언니들의 면면을 떠올리며 웃는다. 애틋한 마음이 보인다.
서리가 내리니 그네옆에 군락으로 심어 놓은 보라색의 작은 국화꽃이 핀다. 이른 봄부터 푸른 잎으로 지내다가 추울 때가 되어서야 꽃을 피우는데 번식을 잘해서 풀이 자라는 곳에 심어두면 그저 그만이다. 어릴 때부터 보아오던 꽃이라서 피어나는 꽃이 더욱 정겹다.
어제도 참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