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후배의 방문

by 이혜원

언어와 지적장애로 산다는 것은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장애인 상담소장을 하다가 언어와 지적장애가 있는 장애인가족을 돌보는 후배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후배는 지난해에 자신이 돌보는 장애인가족을 우리 집으로 데려오고 싶다는 청을 하더니 따뜻한 봄날에 손님을 모시고 왔다. 임신을 한 장애인과 그녀의 딸과 후배와 함께 일을 하는 국장과 경증장애를 가졌지만 돕는 봉사를 하고 있는 이가 후배와 함께 왔다. 반가웠다.


후배가 돌보는 장애인은 멀리 강원도에서 어장을 하고 있는 잘 사는 집안의 딸인데 친정으로 갈 수가 없단다. 친정부모는 장애를 가진 딸이 남편도 없이 아이까지 낳으니 이웃 부끄러운 일이라며 멀리서 살면 좋겠다고 한단다. 애달프다.


장애인은 우리 집을 다녀가고 난 뒤에 딸을 낳았다. 아이가 태어난 지 13개월이 되었는데도 말을 하지 못해서 병원에서 정밀 검진을 받았더니 엄마와 두 딸이 꼭 같은 유전자를 지녔다고 한단다. 언어와 지적장애를 두 딸이 물려받은 것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하나 더 생겼으니 국가의 부담이 늘어났다고 했더니 나라에서 잘 보살펴주니 아이를 더 가지겠다고 한단다. 제대로 된 남편도 없는데 성적인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니 언제나 임신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는 것이 장애인의 문제란다. 아이를 책임지고 키워줄 수 있는 이들은 낳기를 꺼리고 키우지도 못하는 사람은 더 낳고 싶어 하니 큰일이란다.


언어장애는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으니 셋이 모두 괴성을 지른단다.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에서 인간의 언어를 발견하여 원하는 것을 해 주는 일을 후배가 한다. 예전에는 한꺼번에 소리 지르는 것을 듣는 것이 힘들었지만 계속 공부를 하다 보니 이제는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단다.


장애인은 언어 소통이 되지 않으니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으면 폭력적으로 변하는데 그때는 물리적인 제압이 필요하단다. 여성장애인만 돌보게 된 것이 참으로 다행이란다. 어떤 일이든 긍정으로 보는 후배를 보며 웃는다. 참 고맙다.


후배는 함께 일을 하는 국장과 동행했다.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해 왔을 때 오전행사가 있다기에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더니 일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 식사를 하고 나서 우리 집에 오겠단다. 생강차를 준비하고 다과를 차려 놓았다.


도토리 묵을 좋아하느냐고 물어서 엄청 좋아한다고 답했더니 묵을 쑤어서 가져왔다. 도토리가 생겨서 직접 만들었다는 데 전문가를 능가하는 솜씨이다. 후배가 청국장 가루를 먹고 있는데 속이 거북했던 증상이 사라졌단다. 한통을 가져와서 선물할 테니 언니도 먹어보고 좋으면 주문해서 드시란다. 그러겠다고 했다.


약속한 대로 오후 2시에 도착한 후배가 별관의 테이블에 가방을 올려놓고 주섬주섬 선물들을 꺼내는데 도토리묵과 청국장통과 마트에서 구입한 부추와 상추와 명태포가 들어 있는 봉지까지 나온다. 마지막으로 작은 어묵 봉지를 꺼내며 초록마을에서 구입한 좋은 것이란다.


돈 나와라 뚝딱! 요술주머니에서 하나씩 꺼내는 것 같아서 웃는다. 언니에게 맛난 저녁밥을 지어드리려고 준비했는데 같이 온 국장이 상담이 잡혔다네요. 오후 6시 상담이니 4시에는 자리에서 일어서야 한단다. 저녁밥을 먹지 않으니 잘된 일이라고 해 주었다. 저녁에 먹는 생식에 청국장가루를 타서 마시겠다고 했다.


땅콩과 밤을 삶고 태추단감과 라면땅과자와 망고비스킷을 차렸는데 과자는 한 개씩만 먹고 태추단감이 정말 맛나다며 계속 먹었다. 후배가 감을 껍질째 먹는다고 하여 냉장고에서 다시 꺼낸 태추단감을 잘라 껍질째 내었다. 삶은 밤을 겉껍질과 속껍질까지 벗겨서 하나씩 주었더니 언니~ 나는 속껍질을 벗기지 말고 주세요. 한다. 제대로 된 건강식을 하고 있어서 웃었다.


화가의 휴대전화기에 밴드화면이 이상해졌단다. KT고객센터로 가서 고쳐오겠다고 외출했던 화가가 별관으로 들어서니 후배가 무척 반긴다. 밴드화면에 이상이 있는 것을 고치지 못했다고 하니 국장이 자신의 밴드도 같은 현상이 생겼는데 회사에서 화면을 업그레이드해 준 모양이란다. 화가는 예전의 화면이 더 좋단다. 익숙함이 친근함이다.


후배에게 선물을 잔뜩 받았지만 마땅히 줄 것이 없다. 닭들이 알을 적게 낳아서 냉장고에는 딱 네 알의 달걀이 있을 뿐이어서 오색국수선물세트를 주려고 했는데 후배는 국수를 먹지 않는단다. 국수뿐 아니라 밀가루음식 자체를 즐기지 않는단다.


퓨처셀프 책을 읽어보았느냐고 물었더니 읽지 않았단다. 참 잘 되었다. 앞으로 10년만 더 일하겠다는 후배에게 책을 줄 테니 읽어보라고 했더니 고맙게 받겠단다. 10년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을 하라고 했다. 10년 뒤에 일을 끝내면 뭘 하고 싶으냐고 했더니 등산도 하며 즐기고 싶단다. 10년 뒤에 즐기고 싶은 것을 지금 즐기라고 권했다.


방문기념사진을 찍을 때 후배는 퓨처셀프책을 가슴에 안았다. 집에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내오며 책에 사인을 받지 못해서 아쉬우니까 다 읽고 습득하고 난 다음에 받겠단다. 작가가 쓴 책도 아닌데~ 작은 선물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참 고맙다.


닭장에 다녀오는 동안 사부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화가가 얼른 사부인에게 전화를 해 보란다. 달걀을 잘 받았다고 전화를 했다며 바빠 보이기에 몇 마디 주고받고 통화를 끝냈는데 왜 그렇게 성의 없이 통화를 하느냐며 화가가 안타까워한다.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달콩이가 감기기운이 있어서 아침 일찍부터 집에서 함께 지냈단다. 우리 사부인 많이 힘들었겠다.


후배가 가져온 도토리묵을 차려서 저녁식사를 했다. 메밀묵의 매끌매끌한 감촉이 정말 좋아서 맛나게 먹고났더니 화가가 바깥사돈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단다. 알콩이달콩이 목욕을 시키고 계신 것은 아닌지 물었더니 알콩이도 약간의 감기기운이 있어서 목욕을 하지 않기로 했단다.


알콩이가 전화기를 건네받아서 지금 머리가 좀 아파서 침대에 누워있는 중이란다. 우리 알콩이 힘내라~ 화가의 응원에 곁들여서 작가도 힘내라고 외쳤다.


오늘은 점심반찬으로 돼지고기고추장볶음을 만들었다. 수영강습을 마치고 농협마트에 들러서 총알같이 달려 돼지고기만 사 왔더니 화가가 세계에서 제일 빨리 시장을 보고 온 사람이란다. 기네스북에 오르게 되었다.


제주산흑돼지고기를 사 왔더니 비계가 참 많다. 두꺼운 고기를 잘라서 양념하여 조금 남겨두고 구워서 프라이팬 그대로 식탁에 올렸더니 예전에 먹었던 고기가 아니란다. 고기의 두께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설명을 했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돼지고기고추장 볶음인가~ 화가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이다.


동네입구에 논들이 하나씩 비어 간다. 아직 타작을 하지 않은 논의 벼는 잘 익은 노란색이다. 무덤에 누워있는 영장도 일어나서 도운다는 바쁜 농사철인데 학교에서 일손 돕기 휴학을 하여 아이들에게 보리베기와 벼베기를 도우도록 했다는 얘기를 하면 알콩이달콩이는 어떤 반응을 할까?


어제도 참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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