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곶감 깎기
장례식장 201호실 입구 양쪽에 화환이 즐비하다. 국화꽃으로 장식된 한가운데 집사님의 웃고 있는 사진이 정겨웠다. 그래 저렇게 웃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었지.
그는 부모님이 살던 거창의 기와집에서 3년 정도 귀촌생활을 했다. 믿음이 좋은 아내를 따라서 진주까지 주일예배를 다녔는데 어느 날 목사님이 함께 심방을 가자고 하더란다. 그가 치료해야 할 환자가 있단다.
목사님, 저는 그런 능력이 없는데요~그가 손사래를 쳤지만 목사님은 그냥 치료하면 된다고 하더란다. 목사님을 따라 심방을 간 집에는 나이가 든 여성이 꼼짝을 하지 못하고 자리에 누워있었다. 어떻게 치료를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긴장한 가운데 땀을 뻘뻘 흘리며 환자의 등을 만지고 뼈를 만져주고 돌아왔단다. 그는 유도를 하여 어긋난 뼈를 제자리로 돌려주는 법을 알고 있었다.
다음날도 목사님과 함께 그 집을 방문하여 벨을 눌렀더니 안주인이 문을 열어주었다. 꼼짝도 못 하고 누워있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준 것이다. 안주인은 계속 치료를 받아 정상인이 되고 나서 자신의 주치의로 남아 주기를 원하더란다. 진주에서 알아주는 부잣집이어서 원하는 만큼의 돈을 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거절하고 그때부터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고전 12:9)
목사님이 그에게 치유의 은사가 임했다고 했단다. 사람들이 그를 '마이다스의 손'이라고 부르기 시작하고 걷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기적이 일어나니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는 일이 참 재미있었단다. 한참 동안 환자들을 치료하며 지내는 동안에 아내에게 우울증이 왔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시골생활이 그녀와 맞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의 우울증을 고치기 위해 처가가 있는 곳에 둥지를 튼 곳이 작가가 찾아간 아파트였다.
도시로 옮겨왔지만 여전히 아픈 사람들이 그를 찾았다. 작가가 전화했을 때 잠시 망설였던 것은 새로운 환자를 받아줄 수 있는 틈을 내기가 어려워서였단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치료기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작가가 할머니 종아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치마를 입으면 뽄때가 나는 날씬한 종아리가 자랑이었는데~몇 달 동안 치료를 받았고 치료 중에 떠난 해외여행에서는 피로한 줄을 몰랐다. 무거운 것 들지 말고 몸을 아끼며 잘 관리하세요~작가에게 당부했지만 정작 자신의 몸은 아끼지 못했다.
그가 간암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고 치료를 잘 끝냈다는 소식도 들었다. 몸이 나으니 무료하다며 환자를 받고 싶다고 하더란다. 아내 되는 권사님이 미루고 미루다가 하루에 한 사람씩만 치료해 주자고 답했단다.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그는 다시 몸이 아파서 투병생활을 하다가 자신이 치료해 준 이들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막냇동생 목사님과 복국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서 전화를 했더니 벌써 식당에 도착해 있단다. 주인장부부에게 우리 목사님이라며 소개를 했더니 반갑다며 손님접대로 바쁜 중에도 남자 사장님은 앉은자리까지 찾아와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는 안수집사이다.
졸복을 주문해서 먹고 나서 종업원에게 5만 원권 석장을 건넸더니 6만 원을 도로 내어준다. 메뉴판에 별도로 붙여놓은 2만 원짜리 생복을 먹었단다. 생복은 재료가 있을 때도 있지만 없을 때가 많아서 메뉴판 아래에 안내문이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반복한단다. 냉동이 아닌 생복을 먹을 수 있었으니 참 감사한 일이다.
막냇동생 목사님과 따로 차를 타고 마산의료원 장례식장 1층에서 다시 만났다. 절을 하지 않습니다. 안내문이 붙어 있다. 영정사진 앞에 서서 잠시 묵념을 한 뒤에 화병에 꽂혀있는 국화꽃 한 송이를 뽑아서 단 위에 올려놓았다.
식사를 했다고 하니 다과를 잔뜩 차려준다. 막냇동생 목사님이 기도를 해 주고 나서 권사님과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또 다른 문상객이 도착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이다스의 손'을 지닌 그를 천국으로 배웅하는 잔치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가가 갈아입을 옷을 달라고 한다. 두툼한 윗도리와 함께 채칼을 건네며 웃는다. 닭장에서 알을 꺼내왔더니 선물 받은 상자에 들어 있던 대봉감의 절반을 깎아 놓았다. 저녁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대봉감 한 상자는 곶감이 되기 위해 채반에 담겼다.
곶감으로 말리고 있는 대봉감의 크기가 줄어들어서 다시 배치를 했더니 채반하나가 온전히 남았단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따끈한 햇살이 쏟아지니 곶감 말리기에 딱 알맞다. 한 주 동안 비소식이 없어서 더욱 맛난 곶감이 될 거다.
월토반 영어공부가 있는 날이어서 한 시간 동안 컴퓨터 화면을 켜서 공부를 했다. 저녁 7시 30분에서 8시 30분까지 공부시간에 하품이 나온다. 이웃들은 벌써 꿈나라로 갔을 거다. 시골의 시계와 도시의 시계는 따로 움직이는데 겨울이 깊어 갈수록 격차가 더욱 커진다.
어제도 참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