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현충원에서
물을 떠내면 다른 물이 그 자리를 채우듯 사람이 떠나면 또 다른 이가 그 자리를 메꾼다.
큰오빠의 마지막 장례일, 이른 아침에 둘째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힘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오빠에게 씩씩하게 말한다. 큰오빠가 떠났으니 이제부터 두배로 힘을 내야지요~부하들이 네 명이나 생겼으니 신나겠습니다. 오빠가 웃는다. 그래~대답에 힘이 실렸다.
큰오빠의 소천소식을 듣고 둘째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나는 안갈란다~1년밖에 안 되는 나이차이에~라고 답했다. 많은 뜻이 담겼다. 1년밖에 안 되는 나이차이에 둘째 오빠는 억울한 일을 많이 겪었다.
새 옷을 두벌사면 큰오빠는 얼른 입어서 헌 옷으로 만들고 둘째 오빠의 새 옷을 꺼내 입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집안 대소사 모두를 큰오빠 대신에 자신이 떠맡아야 했다.
역지사지~입장을 바꾸어놓고 보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 큰오빠는 형제를 책임져야 한다 의무감으로 평생을 살았다. 크고 무거운 짐을 둘째 오빠가 상속받았으니 두배로 힘을 내야 한다.
큰오빠가 소천한 둘째 날, 화가는 일찌감치 목욕을 다녀와서 똘똘이와 함께 우체국으로 가서 달걀을 부쳤다. 마산의료원으로 갔더니 막냇동생 목사님 부부가 둘째 딸과 함께 도착했다. 아점을 먹은 똘똘이가 떠나고 교회성도들이 와서 예배를 드렸다. 찬양하는 여조카도 함께 예배를 드리니 참 좋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서 달걀 세 개를 거두었다. 에게게~
큰오빠가 소천한 셋째 날, 양촌으로 목욕을 가는 차속에서 막냇동생 목사님의 전화를 받았다. 10시에 입관을 하게 되는데 함께 하겠느냐고 물어서 오빠의 모습을 보지 않겠다고 했다. 전성기에 찍은 영정사진 속의 오빠 모습만 기억하고 싶다.
사형부부가 점심반찬을 만들어서 온단다. 비지찌개와 지짐과 파래무침을 차려주며 똑같은 반찬을 매일 먹으니 질릴 것 같았단다. 그래~이게 바로 조문이야~
서울에서 셋째 오빠부부가 도착하여 미국에서 온 조카와 대화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남는 것은 사진이야~ 집으로 돌아와서 달걀을 18개나 거두었다. 어머나~
큰오빠의 장례식날, 화가가 깨워서 몇 시냐고 물었더니 3시 10분이란다. 3시 30분에 알람이 울릴 텐데~조금만 더 자겠다고 했더니 화가는 일어나야겠단다. 함주목욕탕에 갔더니 아침 5시가 되기 전인데도 영업을 하고 있다. 6시 조금 넘은 시각에 마산의료원에 도착하여 막냇동생 목사님의 인도로 가족예배를 드렸다.
태극기가 덮인 관을 리무진에 옮기고 나서 버스에 올라 대전으로 향했다. 리무진은 미국대통령이 타는 캐딜락이란다. 상조회사에서 한 대밖에 없는 차라고 하니 언니는 우리 오빠 멋 부리기를 좋아하는데 참 잘 되었단다. 서울에 사는 언니의 아들은 자신의 차를 운전하여 누나를 태우고 버스 뒤를 따라왔다.
덕유산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현충원으로 가기 전에 식당에 들러 점심식사를 했다. 대전 현충원은 처음 가보는 곳이다.
국가가 큰오빠의 희생을 잊지 않겠단다. 미국에서 조카가 귀국을 하고 난 다음날 훈장과 포장으로 장식한 정복을 입은 조문객들이 도지사 명의로 된 조문 꽃바구니를 들고 와서 조문행사를 했다. 대통령 명의의 조기는 조카가 오기 전에 일찍 가져와서 세워놓았다.
현충원에서 치르진 행사는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엄숙하고 경건한 식을 마치고 봉헌당으로 유골함을 가져가서 124-217 자리에 놓았다. 조카는 우리 아버지, 가족들이 편하게 조문하라고 위쪽이 아닌 아래쪽에 자리를 잡았네요~라고 한다. 봉헌함 앞에 자그마한 화병이 있기에 매점에서 꽃을 사 와서 화병에 꽂았다. 화려한 꽃이다.
모두 모여 사진을 찍고 나서 언니의 아들과 둘째 딸이 언니와 셋째 오빠 부부를 태워 서울로 떠나고 7명이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화가가 따뜻한 국물로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여 장례식장 뒤쪽에 있는 아구탕집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 둘째 오빠 큰아들은 식사를 하지 않고 돌아가겠다고 하여 보냈다.
큰 조카는 엄마를 미국으로 모시고 가겠단다. 올케가 미국에서 사는가~했더니 우리 엄마 미국에서 살지는 못할 것 같고, 왔다~ 갔다~해야겠단다. 떠나보낸 남편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한동안 아들을 따라 미국에서 지내다 오는 것도 좋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속에서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네요'라고 했다.
큰오빠 환송잔칫날들, 어제도 참 행복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