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하나, 인생 첫 독립 - 취향을 가진다는 것

무작정 배려는 이제 그만

by NN

새벽에 잠이 깼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일까, 낯설어서 깊게 잠들지 못했다.


예전에는 눕기만 하면 어디서든 잘 잤는데, 언제인가부터 낯선 공간에서는 잠이 잘 안 온다. 매사 덤덤한 편이라고 자평하지만, 확실히 과거의 나와 비교해서는 좀 더 까다로워진 것 같다.


며칠 전 이사하고 나서 오랜 친구를 집에 초대했다. 집을 둘러본 그녀가 ‘고심해서 물건들을 고른 티가 난다’면서, 본인은 취향이 없어서 고민이라고 했다. 십 년을 지켜봐 온 친구인데, 문제는 자신의 취향조차 숨기는 과한 배려 때문인 것 같았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넘치는 나머지 타인에게 모두 다 맞춰주는 것에 익숙하면 ‘취향’이 생기기 어려운 것 같다. 진심으로 이것도 저것도 괜찮을 수는 있지만, 때로는 썩 내키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 솔직하게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필요하다.


타인에게 모든 선택을 하도록 결정권을 주는 경우는 보통 그 상대가 자신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오히려 ‘아무거나 다 괜찮아’라는 태도가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호불호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상대에게 정보를 주는 것인데, 선택의 상황에서 좋고 싫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상대방에게 자신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솔직한 마음이 무엇인지를 추측해야 하는 수고를 하게 만들고, 내 경우에는 상대방이 너무 호불호를 드러내지 않으면 자신에 대한 정보가 인지되는 것조차 차단하는 것 같아 선 긋는 것처럼 느껴져 친해지기 어려웠다.


취향은 결국 여러 경험 중에서 자신의 호불호에 대한 빅데이터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고 세상에 대한 경험이 축적될수록 좀 더 정교해지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까다롭고 예민해질 수도 있지만, 취향에 맞는 것이 주어졌을 때의 만족감은 그만큼 커진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에 대한 아이덴티티가 명확해지고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나는 이런 사람이다’를 표현하므로 나아가 사회문화적으로 타인과 구별 짓고 계층을 구분하게 되는 표식인 아비투스로 사용되기도 한다.


타인에게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거나 너무 강하게 드러내는 것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할 수 있으므로 둥글게 살기 위해서 자제가 필요하지만, 자신을 표현하고 상대에게 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적당히 호불호를 드러내는 것도 필수적이라는 생각.


세상에 대한 경험치를 쌓는다는 것은 자신의 취향을 좀 더 구체화하고 이를 조화롭게 세상에 표현해나가는 것이고, 때로는 나와 같은 취향을 가졌기 때문에 혹은 나와 다른 취향을 가졌기 때문에 거기에서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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