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턴 투 서울>_2022
살다 보면 꼭 해야 할 것만 같은 일들이 있다.
그때마다 택했던 바보 같은 선택들. 그때마다 붙었던 현실적인 이유들. 그리고 너무 많이 지나버린 시간들. 그때 내가 그랬다면, 네가 그랬다면. 그래서 지금 내가, 네가 지금과 같지 않더라면. 흔적처럼 남겨진 기억을 붙잡고 후회하고 원망하고 상상하고.
영화 <리턴 투 서울>은 주인공 프레디(박지민)를 앞세워 늘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같은 반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레디는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입양돼 인생의 대부분을 프랑스인으로 살았다. 전형적인 한국인 상이지만 우리가 편견 내지 환상으로 기대하는 ‘프랑스인이라면 갖추어야 할 덕목’ 같은 것들은 아주 잘 갖추고 있다. 와인을 좋아하고 클럽을 좋아하며 원나잇도 좋아한다. 그녀는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이다. 그런 그녀가 서울로 오며 시작되는 이야기란 그녀만큼이나 예측 불가하다. 어쩌다 도쿄행 비행기가 취소되어 서울을 왔고, 우연히 술자리에서 친부모를 찾을 방법을 알게 되어 찾기로 한다. 그렇게 영화는 어쩌다, 우연히 시작되고 전개된다. 하지만 데이비 추 감독은 ‘그렇게 어쩌다, 우연히 친부모를 만나 화해하고, 만회하고, 행복하고’ 식의 전통적 전개는 거부한다. 이는 곧 영화가 진부하지 않고 흥미로우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지점이다.
프레디는 친부와 친척을 만나 자신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사정과 사과를 듣는다. 그리곤 혼란스러워한다. 그들로부터 알 수 없는 생경함을 느끼고 그 생경함과 불일치되는 자신의 모습을 견디지 못한다. 애당초 그들을 만나 무엇을 원했던 건지 관객도 그녀도 알지 못한다. 그녀는 회피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가장 어리석으면서도 쉬운 그 선택 뒤 다시 한번 긴 시간이 흐르고 혼란이라는 명분 아래 또 다른 거지 같은 일들을 양산하고 반복한다. 그 모든 거지 같은 일들의 원흉이 서울행이었던 것만 같고 그 원흉을 좇다 결국 ‘한국은 내게 해로워’ 따위의 자기위안적 결론에 정착하기로 한다.
반복하고 번복되고. 그러다 프레디는 깨닫는다. 영화를 보는 우리 모두가 그렇듯 그 모든 일이 실은 별거 아닌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에서야. 회피는 일시적인 효과만 지닐뿐이라는 것을. 기어코 벌어지고야 말 일을 정공법으로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그 과정만큼이나 지나온 시간들이 잔인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무언가에 이끌리듯 오랜 시간 고민한 둘 중 하나가 아닌 제3의 결론에 다다른다. 되돌아가면 달아나고 달아나면 되돌아오는 서울이 아닌, 프랑스도 아닌 제3의 나라에서.
<리턴 투 서울>은 이어붙이고 싶고 돌아가고 싶고 달아나고 싶은 '거지 같은 반복'의 과정과 결말을 신선하고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 나와는 어떠한 개연성도 없어 보이는 프레디로부터 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건. 결국 ‘운명’이라 두루뭉술히 칭하는 자의적, 타의적 선택과 결과로부터 우리 모두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엉뚱한 제3의 결론으로 정착하는 것까지. 우리는 기필코, 기어코, 어쩌다, 우연히 반복하고야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