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이등병의 편지>(1993)
1년 9개월간의 군생활을 한줄평으로 추리자면, 이건 그러니까. 남자라면 응당 마쳐야 할 포경수술을 마친 것과 비슷한 상태다. 고래를 잡아야 남자가 된다던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과 아버지와 어머니의 훈화 말씀과는 달리, 어기적어기적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부끄럽고 천하다. 전역, 이란 그런 것이다. 남자가 되어 돌아오라는 말과 달리, 돌아오는 길은 막상 별 볼 일 없다.
경남 진주에서 6주, 충북 충주에서 나머지 1년 7개월 2주를 살았다. 지구 종말을 막기 위해 제물로 바쳐지듯 훈련소에 들어가, 2분 만에 욕설과 함께 뛰어, 엎드려뻗쳐 헥헥 대다 벌벌 떨다 분리수거되듯 정해진 내 직업과(특기) 직장이(자대) 막막하다가 지겹다. 두렵다가 만만하다. 언제 가나 하다 인제 가네 한다. 전역이란 그렇게 올 듯 안 올 듯 천천히 다가온다. 막연히 바라긴 했어도 나라고 이날이 올 줄 알았겠나.
말년휴가로 간접 체험한 전역이 익숙한 듯 생경하다. 비슷한 듯 확확 바뀐 바깥세상과 민간인들 사이 내 꼴이 조금 촌티 나는 거 같기도 그럭저럭 평범한 거 같기도.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합류하면, 조롱이 따라오고. 모든 게 다 달라졌나 조심하면, 동정이 따라온다.
이건 그러니까 아는 척을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알 수도 모를 수도 없다. 그래서 내가 민간인인지 군인인지 뭐가 뭔지 보냈던 말년휴가가 그래서 좋았던 건지 나빴던 건지.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다. 내가 정말 군인이긴 했던 건지. 여직 군인인 건지. 그래서 전역이 정말 오고 있긴 한 건지 아닌 건지.
부대로 복귀해. 복귀 보고를 하고 점호를 받고 라면 물을 받고. 내 일거수일투족이 필요 이상으로 익숙하다. 이젠 정말 여기가 내 집인 듯 여기 사람들이 편하고 여기 시설들이 편하고 여기 스케줄이 편하다. 여기 밥이 소화도 잘되고 여기 화장실과 샤워실이 참으로 아늑하다. 싸구려 침구류와 쓰레빠가 내 인체공학에 딱 들어맞는 느낌이 좋다. 하루하루 커지는 편안함이 매일매일 우려된다. 여기가 너무 편한데, 나가서 잘 살 수 있을까?
여기서 가져가는 건 무엇일까, 라는 기대감이 많은 것들을 허무하게 한다. 어찌 됐건 저찌 됐건 나는 경상남도 진주와 충청북도 충주에서 1년 9개월을 살았는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익숙한 사람이 되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일도 하고 훈련도 하고 이러기도 하고 저리기도 했는데. 1년 9개월간 나는 산 것도 아니오, 죽은 것도 아니오. 나이만 성실히 먹었다 깬 냉동인간이 된 듯한 심정이다. 짬에 대해 알고 웃게 된 대가로 너무 많은 것을 지불한 심정이다. 재밌는데 슬픈 이야기인 셈이다.
전역하고 당장의 계획을 살펴본다. 추상적임은 서서히 걷어지고 현실적임이 서서히 올라온다. 마지막 울타리가 벗겨진다는 기대감이 걱정거리로 치환된다. 이제 정말 진짜인데, 나는 아직 가짜 같다는 걱정거리가 걱정이다. 내가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집을 살 수 있을까.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뭐든 할 수 있을까. 전역이 온 것처럼 다른 날들도 어느 날인가 올 수 있을까.
어쩌면 남자 인생의 마지막 방학이라던, 선배들의 조언이 뼈로 다가온다. 에스파 보다 이쁜 여자친구도 생겼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하나씩 시작하면 되겠지.
어찌 됐건 저찌 됐건 이제 다시 시작이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