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내게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갈망이 있다. 어째서인지 어쩌다인지 찌들고 까진 이미지인 나로서는, 이 갈망이 정말로 간절하다. 나르시스트나 좋은 사람 병이랑은 다르다, 확신할 수 있다.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누굴까, 뭘까, 뭐지. 아마도 이렇다. 무심결에나마 뱉은 말에도 반드시 책임을 지고. 사람이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으로 진심을 재단하지 않고.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알고. 타인을 위해 자존심을 굽힐 줄 알고. 누구든, 언제든 인간 대 인간으로의 예의를 우선시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바닥을 바라보고 앞으로를 고민할 줄 아는. 상대의 부끄러움을 위트 있게 넘겨줄 수 있는. 상처가 되었을지 모를 말을,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오늘까지는 이런데, 내일이면 또 뭐가 추가될지 모른다.
밤마다 뜨겁게 다짐하고 아침이면 새까맣게 까먹어버리는 나는,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식당 아주머니에 친절하고 우리 엄마에 툴툴대는 내 이중성이 상스럽다. 좋은 사람의 기준이 좀 유하다면 좋을 텐데, 편할 텐데. 현실은 그럴 수 없다. 좋은 사람의 기준이 유해서는 안 된다.
좋은 사람 병에 걸린 사람들을 여러 만났다. 매번 그들에 호감을 가졌고, 의문을 가졌다. 그들의 말에 어폐가 있다는 걸, 내가 눈치챘다는 걸, 상대가 들켰다는 걸, 서로가 알게 된 순간. 서서히 관계는 멀어지고 반감을 가진 채 관계가 끝났다. 말은 번지르르한데 행동은 개털인 그들에 속고 헌신적이었던 일방관계가 슬프다. 일방책임으로 끝날 헌신적일이 슬프다. 좋은 사람은 그래서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아무에게나 허락되어서는 안 될 타이틀이다.
좋은 사람이란 그래서 무엇인가, 라는 화두에 <나의 아저씨> 박동훈(故 이선균) 만한 레퍼런스가 없다. 이 시대가 선망하는 좋은 사람쯤으로, 많은 사람에 위안을 줬다. 많은 사람에 환상을 줬다. 마음만 먹으면 나도 누군가에 위안을 건네줄 수 있다는 환상을 줬다. 하지만 그건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말만 한다고, 글만 쓴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가족을 해친 이들에 망치 들고 찾아갈 용기가 있는가? 아이 한 명 지키려 떡대 좋은 건달에 뚜까 맞을 용기가 있는가? 호구라는 소리를 견디며 줏대 있게 행동할 수 있는가? 타인의 실수쯤 눈 감아 줄 수 있는가? 억울할지라도 모든 걸 감내하고 책임질 수 있는가? 정말 그럴 수 있는가? 좋은 사람이란 멋있고 근사한 모양새가 아니다. 추하고 쪽팔릴 줄 아는 사람이다. 감내할 줄 아는 사람이다.
선량한 어투만으로 좋은 사람 타이틀을 살 수 있다는 기대가, 추하다. 나는 이미 좋은 사람이라는 선민의식이, 역겹다. 나는 좋은 사람 몇 보지 못했는데 우리들은 좋은 사람이라는 풍광이, 꼴사납다. 그들의 자기효능감이 망친 개인과 조직과 일과 상황과 감정과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난잡하다.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 믿는 알량한 믿음들이 많은 것들을 망쳐간다. 번지르르한 말을 앞장세워 얍삽한 행동을 숨기는 알량함이 많은 것들을 망쳐간다. 그것이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라는 간접교육이 더 많은 것들을 망쳐간다. 아이들이 배운다. 나는 분명 좋은 사람인데, 너는 왜 나에게 그러냐는 황당함이 당황스럽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스스로를 객관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 좋은 사람은 그래서 몇 없다. 객관화는 시종일관 남녀노소 평등하게 잔인하다. 잠시라도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을, 인간은 대개 견디지 못한다.
긍정적 사고는 나르시스트가 되기 십상이고, 부정적 사고는 자기연민에 빠지기 십상이다. 내 일거수일투족이 얼마나 모질고 모냥 빠지는 일이었는지를. 너라면 어떻게 느꼈을까. 애먼 사람에 상처 주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좋은 사람인가? 그래도 너는 나쁜 사람인가? 아몰라 그냥 좋다고 쳐. 굳건하다는 믿음들이 사실 알량히 양산된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이냐면. 나 같은 건, 좋은 사람 되기 글렀다. 무심결에나마 뱉은 말을 까먹기도 하고, 결과를 의식하다 사소한 것들을 놓치기도 한다. 육두문자는 잘만 지껄이고 나 잘되려고 물불을 안 가린다. 잘못을 인정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리고 상대의 부끄러움을 놀리는 건 내 삶의 낙이다. 매일 밤 다짐하고 아침이면 새까맣게 까먹어버리는 지능을 보면 글러 먹었다.
그래서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고, 그래서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쓰고 그래서 말한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쓰고 말하고 남기고. 그래서 지키고. 이런 반복만이 그나마 근접할 수 있는 방법론이기를 바랄 뿐, 별수 없다. 좋은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쁜 사람은 되지 않길 바랄 뿐, 빌 수밖에 없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매일 아침 까먹어도 매일 밤 생각한다. 어제처럼 처음처럼 마실 날일지, 저 배불뚝이 아저씨처럼 시바스 리갈 마실 날일지, 폭탄주일지 무슨 날일지 무슨 날이든. 술에 쩔어 비틀비틀 읽어볼 어느 날에도 어느 날이든 당당할 수 있다면 좋겠다.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