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어느 하루의 영화

누구에게나 기억하고 싶은 하루의 영화가 있다.

by 이서


당신의 인생영화는 뭔가요?


죽은 시인의 사회

왜 사람들은 인생영화에 집착할까. 영화 보는 게 취미라고 하면 사람들은 인생영화가 뭐냐고 수도 없이 질문한다. 그 질문에 나는 늘 <죽은 시인의 사회>라고 당당하게 답한다. 실제로 내 인생의 가치관을 크게 뒤흔든 영화이기도 하지만, 그 질문은 마치 '네가 본 영화 중 가장 있어 보이는 영화가 뭐야?'라고 묻는 것만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는 인생영화라는 질문에 적합한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숨듣명'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숨듣명은 '숨어서 듣는 명곡'의 줄임말이다. 명곡을 왜 숨어서 듣는 걸까. 이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취향을 떳떳하게 밝히기 부끄러워한다는 뜻이다. 그것을 영화에 빗대어 봐도 똑같다. 분명 자신의 인생을 뒤흔든 영화라도 주변에서 평이 좋지 않다면,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 못하고 숨기는 경우가 대다수다. 예를 들어, 어벤저스와 같은 액션 영화가 인생영화라고 한다면, "영화 볼 줄 모르네, 때려 부수기만 하는 영화가 뭐가 좋아?"라는 둥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SNS에 본인 이름을 숨기고 자신만의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익명성에 기대어 자신을 온전하게 드러내는 것.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SNS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현대사회에서는 만연해졌다.


여기서 '어느 하루의 영화'란 뭘까. 이도우 작가의 산문집에서 발견한 한 구절이다. "<그랑블루>는 내 인생의 영화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하루의 영화쯤은 될 것 같다."라는 작가의 말에 나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경험했다. 살아가는 동안 있는 수많은 날 중 하루를 대표하는 영화라니.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대신 하루가 행복해질 만큼 좋게 본 영화가 있지만, 인생영화가 되기엔 아쉬운 영화를 뭐라고 칭하면 좋을지 생각해본 적이 있었는데, '어느 하루의 영화'라니. 보다 이를 더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잠자코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어느 하루의 영화가 참 많다. 나는 때때로 그날의 감정에 맞는 영화를 찾아보곤 하는데 그런 식으로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우연히 어느 하루의 영화를 만날 수가 있다. 그날의 기분, 날씨 그리고 함께 한 사람들까지 기억에 남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그중에서도 손꼽을 수 있는 영화는 <위대한 쇼맨>이다. 2017년 12월 27일 CGV에서 봤던 그 영화를 나는 아직까지도 기억한다. 영화관에서 일하다 우연히 접했던 예고편에서 처음 흥미를 갖게 되었다. 휴 잭맨에 잭 에프론까지.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온다는 사실에 기대감은 더욱 부풀어만 갔다. 대개는 기대감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아 이후에 실망감이 커지곤 하는데 이 영화는 달랐다. 그날의 나를 온통 지배했다. 영화 속 OST가 내 모든 신경을 건드리던 그 순간을 빠짐없이 기억한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날이었기 때문인지, 손꼽아 기다리던 영화가 개봉했기 때문인지,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그였기 때문인지 영화를 보는 동안 온몸이 전율했다. 다시 그 영화를 여러 번 찾아봤지만 그때만큼 전율할 수 없었다. 아마 살아가면서 그 전율을 다시 느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날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위대한 쇼맨>은 나만의 '어느 하루의 영화'가 되기에 충분했다.


사실 <위대한 쇼맨>은 실제 주인공의 행동이 미화된 내용이라 후에 많은 이들에게 질타를 받기도 했다. 나처럼 음악에 감동한 사람들이 인생영화로 꼽았다가 종종 영화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영화에 있어서 스토리는 중요한 요소지만, 영상, 음악 등에 매료된 사람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법이다. 물론, 미화된 주인공을 무작정 칭송하라는 뜻은 아니다. 비판할 문제는 비판하되, 영화가 주는 감동은 칭찬해도 된다는 뜻이다. 내가 그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에게 인생영화가 있다고는 보장할 수 없지만, 자신만의 어느 하루의 영화는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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