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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x Mar 06. 2023

[삼형제 도시탈출기] 08. 느리지만 천천히

농촌유학 실전기(4) - 햇살 아래 바짝 마른 빨래처럼

처음 맞이했던 주말은 사실 정신이 없었다. 해결해야 할 일이 산재해 있고 일단 낯선 곳에 대한 적응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내려온지 열흘이 흘렀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지만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그런지 어느새 나도 적응해 가고 있다.


사실상 처음 맞이한 주말. 

우리는 밥 먹고 틈틈이 동네 산책에 나섰다. 논두렁을 에둘러싼 길을 걸어가며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길가에 핀 보라색 도라지 꽃도 보았다. 작은 도라지 꽃들 이곳저곳을 오가는 더 작은 꿀벌도 만나고 논에 뿌려진 퇴비에서 풍겨오는 냄새도 실컷 마셨다. 아침과 오후에는 집 마당에서 배드민턴(?)도 치고 대나무를 주어다가 가지치기도 했다.  

장난감 하나 없는 이곳에서 아이들도 저마다 놀거리를 찾아 나섰다. 대나무를 잘라 이것저것 만들기도 하고 돌을 주어다가 다듬기도 한다. 논두렁을 따라 걸으며 샛길도 만들어보고 작은 꽃잎을 관찰하며 따뜻한 봄이 어서 오기를 기다린다. 예쁜 꽃이 들녘에 피면 꺾어다가 엄마에게 꽃목걸이와 왕관을 만들어 준다고 약속했다.


차로 10분여를 달려 도서관에도 다녀왔다. 이곳의 시스템은 서울과 비교할때 한 5년정도 늦은 듯한 느낌도 든다. 책이 많지 않은 도서관이었지만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했다. 함께 대출카드도 만들고 보고 싶은 책도 잔뜩 빌렸다. 마트를 가는 일도 모두 차를 타고 가야 하다보니 아이들이 늘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이웃집 할머니께서 주신 쪽파와 무로 반찬도 해 먹고 아직 세탁기가 설치되지 않아 손으로 직접 옷을 주물러가며 빨래도 한다. 손으로 짜서 탈수를 하다보니 힘이 약해서인지 이 좋은 햇볕아래에서도 빨래가 하루를 넘겨 이틀은 지나야 마른다. 

마트를 가는 것도 도서관을 가는 것도 빨래조차다 바로 바로 이뤄지지 않다보니 서울에 비해 참 느리다는 생각을 하지만 느린만큼 천천히 둘러볼 수 있고 천천히 생각할 수 있어 좋은 점도 있다.


오늘도 우리는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열심히 달려본다. 천천히 느리게 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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