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유학 준비기(1)
코로나 3년...
우리 삼형제는 점점 동글동글해진다. 몸이 불어나니 걸어다니는 소리조차 크게 들린다. 층간소음으로 이웃에 피해를 줄까 노심초사. 나의 스트레스가 점점 올라간다. 밖에 나간들 아이들이 놀만한 곳도 마땅치 않다. 차가 오지 않게 막아 놓은 곳은 오토바이가 오고, 경로당이 있어서 큰 소리내며 놀면 간혹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온다. 코로나 2년동안은 아파트 놀이터마저 문을 닫았다. 초등 고학년부터 저학년까지 포진된 우리 삼형제는 어린 동생들이 놀아야할 놀이터 출입도 눈치보이기는 매한가지다. 태권도를 보내볼까? 운동을 시켜볼까? 고민에 빠졌다. 태권도비 한달에 15만원 세명이면 이런저런 비용합해 50만원이다. 다둥이라고 해서 딱히 지원도 없는데 수많은 지출에 학원비를 보태는 것도 부담이다.
이제 실내 마스크도 해제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활동량이 늘 것 같지 않다. 피아노학원 외에 따로 학원을 다니는 것도 아닌데 하루동안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놀이시간이 많지 않다. 매일 답답한 건물 안에 갇혀사는 아이들. 골목골목 잘도 들어오는 차들. 오다가다 만나는 가로수, 조경된 꽃 외에는 자연을 만나기 쉽지 않은 아이들. 그래서 결심했다. 우리 서울을 좀 떠나볼까?
이것저것 찾아봤다. 서울 근처 경기도 외곽이나 강원도 일대에 땅을 좀 사서 농막을 지어 주말에 가서 살아보는 것. 서울로 출퇴근은 가능한 전원주택을 찾아보는 것. 다 좋은데 우리에겐 차도 없고 더 중요한 재정도 넉넉치 않다. 매일 경기도 어디에 있는 멋진 2층집을 둘러보다 잠이 들었다. 갈 수도 없는 그곳 나는 잔디에 앉아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아이들은 공놀이를 했다. 그저 머릿속에서만.
그러다 문득 농촌유학이 떠올랐다. 현지 월세에 준하는 지원금도 준다고 하니 딱이다. 그래 우리 떠나자.
아이들에게 물었다. "농촌유학이 있대. 시골에서 살면서 거기 학교에 다니는 건데 어때?"
"그럼 물고기도 잡을 수 있고 배추도 키울 수 있어? 나 갈래."
삼형제는 다행히 긍정적인 답변을 바로 내놓았다. 학교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에 아쉬움도 없었다. 어차피 여기 있어도 다들 학원을 다니니 놀 시간이 많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페이스톡이나 줌으로 친구들을 만나면 된다며 아이들은 저희끼리 워낙 잘 놀아서(물론 많이 싸우지만) 그런지, 심심하거나 적응 못할까 하는 걱정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래 가자. 아빠는 아직 동의가 안됐지만 나는 이미 마음이 전라도 어딘가에 가 있었다. 틈만 나면 농촌유학을 검색하고 농촌유학 안내 홈페이지, 추진 계획 등을 살폈다. "뭣이 중헌디" 곡성으로 갈까? 한참 꽂혀 읽고 있던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배경지인 구례로 갈까? 고민했다. 가는 방법도 찾아봤다. 버스로 가는 법, 기차타고 가는 법. 걸리는 시간 현지 버스 노선과 시간표까지...
사전 면담은 의무라 배정결정이 나기 전에 현장을 가야 했다. 차가 없는 우리로서는 난감했다. 나 혼자 다녀올까? 그러나 아이들이 다닐 학교의 장을 만나는 곳인데 아이들이 빠지면 되겠나 싶었다. 아이들을 다 데리고 가는 예산을 짜봤다. 기차 다둥이 할인을 받아도 왕복 비용이며 시간이 만만치 않다. 차가 없으니 난감하다. 교육청에 문의하니 사전 면담을 필수란다. 허긴 차 없는 집이 흔치 않은 세상이라.
차가 없이도 가기 좋은 곳을 다시 찾아봤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애들 아빠가 올 때 오기 좋은 노선도 찾았다. 이왕이면 시간도 짧으면 좋겠다 싶어 곡성과 구례에 살며서 X표를 쳤다. 그렇게 나는 전남에서 올라와 전북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