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일어난 이야기들
잘했는데, 왜 죽고싶어?
잘했어 라고,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위로해준 사람에게 툭 나온 말이었다.
그 후 한동안 소리내어 울기만 했다.
19년 2월, 집을 나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중 가장 큰 생각이자 목표는
“내가 집에 돌아갈 땐 무조건 성공해서 돌아가야지” 였다.
어린 생각이었지만, 진심이었다.
돈도, 학벌도, 특별한 재능도 없던 나에게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최저시급 가까운 돈을 받아가며 많은 돈을 저축하는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러 일을 전전하기도 했고, 돈과 성공에 대한 불편한 강박 때문에
점점 더 나를 몰아 붙이기만 한 시간이었다.
처음 집을 나오던 24살 어린 청년의 생각은 언제부턴가 잊게 되었다.
열심히 살 수록 내 자신이 많이 망가져 감을 알게되었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로 했다.
이제는 망가진 내 자신이 더 자연스러울 때 즈음
사회에서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아주 작은 첫 걸음을 내 딛는데 성공했다.
그게 내겐 1억이라는 돈이었다.
나름의 성공, 목표달성을 했음에도 성취감이 들거나, 다음 목표가 생기진 않았다.
아마 그 과정에서 겪은 많은 일 때문인 것 같아,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려 했다.
그리고 삶은 언제나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사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언제나 경제적 어려움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지내시던
이제는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의 경제적인 어려움 이었다.
그리고 어렸던 나에게는 부담일까봐 철저히 숨겨온 어른들의 사정이 있었다.
정답은 간결했다.
그러나 그 정답을 내가 제출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엉터리같은 말이지만
적어도 시험지 밖에서 내가 맞이한 문제들은 그랬다.
문제의 정답 여부와는 관계 없이 언제나 시간은 제한적이었고
활짝 핀 꽃이 다 떨어질 때 즈음 답을 적었다.
내 지난 노력의, 성공의 절반을 포기하기로 했다.
답을 내리는 데에도, 내린 답을 실행하는데에도 꽤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그만큼 나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최선이라 생각했기에 천천히, 담담하게 마음을 정리했다.
적은 답을, 내 결정을 실행에 옮긴 순간.
그대로 나는 무너졌다.
다시 내 집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 다른 무엇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당장에 해고라도 당해서 만취할 때 까지 술을 마신 사람처럼
지하철 난간에 기대거나 바닥에 쭈그려 앉아 한참의 시간을 보냈다.
불꺼진 반지하, 어둑한 나의 보금자리에 도착했을 때
아무것도 보기 싫다는 듯 그대로 침대에 그대로 숨어 들었다.
의식이 꺼지길 바라며 약을 삼키고 눈을 처음 감았을 때 부터
몇 번이나 잠에 들거나 깼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이 지났다.
꿈 마저도 현실이 불쾌하게 뒤틀린 듯한 영상들이 계속해서 재생 되었지만
그 보다 더 불쾌한 현실의 감정 때문에 억지로 다시 잠에 들 수 밖에 없었다.
쿵쿵
누군가 현관 문을 두드렸을 때, 짧은 도피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던져 놓은 휴대폰을 보니 오전 11시가 넘었고, 가스 검침원 아주머니였다.
아주 잠깐의 외부인과 소통을 끝내고 다시 현실과 단절 되려던 순간
연락 한통이 왔다.
창문으로는 빛이 잘 들지 않은 반지하 방에 두번째 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리고 내게 위로를 건냈다.
잘했어 라고.
그 날 울음으로 다 쏟아내서 인지
아니면 내 지난 절반의 노력의 빈자리인지
빈 가슴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내뱉은 숨이 공기를 하얗게 얼어붙이던 계절은 지났다.
그 사실을 눈으로도, 피부로도 깨닫고 있지만
오로지 내 가슴만 아직 깨닫지 못했는지 들이마신 공기가 시리게 차갑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다시 숨 쉴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