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필 <놉(2022)>
영화계에 좋은 의미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겟아웃>부터 <어스>, 그리고 <놉>까지 조던 필 감독만의 기발한 세계는 기괴하면서도 정신을 홀리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나 그의 영화에서 한결같이 다뤄지는 현대 미디어 산업에 대한 비판과 인종문제 등은 단순히 '사회문제'를 넘어서 한 시대의 문화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나타난 정보가 무분별하게 주어져 사람들이 더 이상 정보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 시대처럼 지금의 미디어는 멋진 신세계와 같다. 무분별하게 주어지는 자극에 대중들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고 무지성하게 소비한다. 조던 필은 이러한 업계의 문제와 인종, 그리고 무시되었던 역사까지도 끄집어내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가상의 시트콤인 '고디가 왔다' 중 한 에피소드의 음성이 나오며 universal의 로고가 나오고 세트장에서 피투성이로 사람을 내려치는 침팬지가 나온다. 섬뜩한 장면 뒤로는 숨을 죽인 관객들이 있다. 그리고 고디가 시선을 돌려 우리를 바라본 순간 화면이 암전되며 아래의 문구가 등장한다.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니
(나훔 3:6)
오싹한 경고문 같은 이 구절이 뜨며 오프닝이 시작된다. 영화방송계에서 동물에 대한 학대나 논란은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몇해전 한 사극 드라마에서 말을 엎어지게 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방법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야생의 것을 길들여 굳이굳이 사각형의 조그만 프레임 속으로 등장시키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익이 되니까. 영화'예술', 방송'예술'이라 하며 미디어 산업 뒤에 늘 예술을 덧붙이지만 엄연히 상업이 우선시되는 하나의 '산업'이다. 방송계는 이익을 제하고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고 관심과 화재성에 촉각을 세운다. 이로인해 희생되는 건 도물 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약자, 때로는 일반인도 된다.
놉의 감독 조던 필은 한 인터뷰에서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을 때 사람들이 천천히 운전하는 것을 언급했다. 그의 영화에선 이런 자극을 소비하려는 대중들의 욕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불편하게 한다.
대대로 캘리포니아의 말 목장을 운영하는 OJ는 할리우드에 놀러다니는 동생과 달리 아버지와 함께 조용히 자리를 지킨다. 우연히 비행기에서 떨어진 동전에 맞아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도 집안 대대로 운영한 말 목장을 위해 일을 나선다. OJ는 본인의 직업도, 가족의 역사도, 이름까지도 할리우드와 떼어놓을 수 없다. 그의 이름을 듣자 '정말 이름이 OJ에요?'라고 되묻는 여배우의 말만 봐도 우리는 모두 그 이름을 듣고 OJ심슨을 떠올렸다. OJ심슨 사건은 모든 미디어와 대중들의 관심이 쏠렸던 사건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하나의 길고 긴 '쇼'였다. 각종 방송사에선 그의 재판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신문사나 언론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매주 실었다. 살인사건에서 가장 주목받고 동정받아야하는 피해자와 유가족을 신경쓰기보다 그저 사건 그 자체만을 쇼비즈로 만들고 대중들은 무지성하게 그것을 소비했다. 감독은 OJ가 흑인이라 억울하게 누명을 당했다고 말하고 싶기보다 인종이나 이러한 특성이 가미된 사건에서 우리가 무지성으로 소비하는 미디어에 대한 경계를 말하고 싶은 듯 하다.
OJ의 여동생인 에메랄드는 그와 반대로 할리우드에서 유명해지겠다는 목표가 있다. 조던 필 감독이 직접 녹색을 주의해서 보라는 언급을 했는데 에메랄드는 이름 자체가 녹색의 상징이다. 또한 작중 녹색의 옷을 가장 많이 입고 나오기도 한다. 결말에서 생사가 유일하게 확인된 인물이기도 하다(엔젤 제외). 녹색은 생명력과 풍요, 번영 등을 상징하는데 이러한 뜻처럼 에메랄드는 작중에서 가장 활기 넘치고 유명해지겠다는 목표가 뚜렸한 사람이다. 에메랄드 외에 또 하나, 녹색을 가진 생명체가 있다. 바로 진자켓이다. 진 자켓의 눈 부분은 네모난 카메라 렌즈 같으며 녹색으로 되어있다. 또한 오프닝에서 나오는 진 자켓의 내장 부위도 녹색의 빛을 띈다. 진 자켓이 카메라를 의미하면서도 생명체임을 나타내는 요소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현대의 미디어는 하나의 생명체 같다고 의미하는 듯 하다. 그리고 우리 대중들과 하나의 생명체로써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진 자켓이 괴생명체로 나타난 이유는 의도하지 않고 언제든지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진 자켓의 입장에선 그저 생명활동을 위해 먹이를 먹은 것이나 다름없다. 육식이기 때문에 생명체를 먹고, 인간을 먹는다. 진 자켓을 피하는 방법은 그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 우리가 의도적으로 눈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금세 잡아먹히게 될 것이다. OJ사건과 같이 이러한 불편한 사건들을 소비하지 않으려 우리가 의도적으로 시선을 돌리고, 부정해야만 미디어에 역으로 소비되지 않고 잡아먹히지 않을 것이다.
진 자켓은 어린시절 에메랄드가 조련하려던 말의 이름이다. 하지만 그 말을 영화촬영에 보내기로 계약되고 아버지는 OJ에게 그 말을 조련하라고 줘버린다. OJ는 그 말을 조련하지 못했고 에메랄드는 자신의 말을 빼앗겨 두 사람 모두에게 상처가 된 것이다. 외계생명체에게 어린시절 두사람의 상처를 이름으로 준 것은 진 자켓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며 자신의 아래에 두기 위함이다. 하늘 위에 있는, 사람의 머리에 존재하는 생명체를 자신의 발 아래에 두기 위해 극복하려는 남매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진자켓=미디어=카메라가 성립한다. 이러한 정의를 두고 인물들을 관찰했을 때 다양한 군상이 나타난다. 진 자켓을 거부한 사람은 OJ, 숭배한 사람은 주프, 이용하려 한 사람은 에메랄드, 그리고 동경하는 사람은 홀스트다. 주프역시 진 자켓에게 먹이를 바치며 자신을 유명해지게 하려고 이용하는 듯 보였지만 마지막에 진자켓의 눈을 보며 황홀한 듯 미묘한 그 표정은 조련보다는 숭배를 한 듯 하다.
나쁜 기적이라는 것도 있을까?
어린시절 고디가 왔다라는 시트콤에 출연하여 인기를 끌었지만 고디의 폭주로 출연진의 몇이 죽고 또래 출연자는 얼굴을 크게 다친다. 유일하게 주프만이 멀쩡하게 살아남았는데 책상 밑에 숨어 있는 상태에서 난폭해진 고디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풍선에 비친 자신의 눈이 고디를 난폭하게 만든 것처럼 주프만이 고디와 눈을 마주치지 않아 살아남았던 것을 자신이 그 생명체와 교감을 했다고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이 때 나쁜 기적은 두개다. 그 난장판에서 똑바로 서 있던 신발 하나와 우연히 눈을 가려 살아남은 것. 그리고 이 일로 주프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해 진자켓을 이용하려던 것역시 평생동안 주프에게 영향을 끼친 나쁜기적임이 틀림없다. 주프는 어린시절의 인기를 그리워하는 듯 하며 다시 유명해지기를 바라고 그런 유명세를 동경한다. 어찌보면 동경보다도 숭배에 가깝다. 먹이를 바치며 그 생명체에게 계시를 받아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는 숭배자처럼 보이는 주프는 결국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이 잡아먹힌다.
주프와 다르지만 또 한명 이 생명체를 경외시하는 인물이 홀스트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OJ,에메랄드,엔젤과 함께 진 자켓을 촬영하는데 도움을 주는 기묘한 인물이다. 홀스트는 카메라로 진자켓을 촬영하며 스스로 잡아먹혀 그 내부까지 촬영한다. 하지만 진자켓의 내장에서 녹은 카메라는 남은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홀스트역시 그 기이한 생명체를 동경했고 이 경우엔 스스로 미디어의 제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홀스트는 애초에 그것을 통제 가능하다고 바라보지 않았던 것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특성에 맞게 존재하는 것을 자체로 촬영하고, 통제하지 않고 방관할 뿐이다.
진 자켓에 대항한 사람은 OJ와 에메랄드다. OJ는 처음부터 미디어와 거리가 먼 사람이다. 카메라를 낯설어하고 좋아하지 않는다. 에메랄드는 반대성향이지만 이를 이용해 유명해지려고 한다. 거부하는 사람은 OJ, 이용하려는 사람은 에메랄드. OJ는 진자켓에서부터 여동생을 구한 영웅이 되었을 것이고, 에메랄드는 본인의 바람대로 유명인이 되었을 것이다. 미디어를 무지성으로 숭배하거나 수용하지 않고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행동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OJ는 에메랄드를 위해 희생한다. 생사가 불분명한 그 때 모래먼지 사이로 말을 탄 OJ의 실루엣이 나타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에메랄드가 말한 최초의 배우가 나타난다. 최초의 배우였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이름도 기억하지 않은 인물이 되어 나타난다. 미디어를 거부하고 스스로 조련하려 했던 OJ는 새로운 영웅이 된다. 감독은 영화의 역사를 다시 써내려가는 대범함으로 다시는 최초의 배우를 잊지 못하게 각인 시켰다. 금세 잊혀지는 미디어 속에서 '최초'만큼은 모두가 기억하듯이 최초가 되려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