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칼국수 + 무생채 + 겉절이
면접 시험을 앞두고 친구들이랑 면접 공부를 같이 했다. 덜 추운 날이 있고, 더 추운 날만 있을 뿐 겨울은 항상 온 몸이 시리다. 면접 공부를 같이 했던 스터디룸에선 천정형 히터가 바닥까지 충분히 오지 않아서 더욱 추웠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중간중간에도 얼어붙은 손가락을 허벅지에 넣으면서 참 춥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저녁은 따수운 걸 먹고 싶었다.
뭘 먹을지 희대의 고민에 빠졌다. 김밥은 혼자 간단하게 요기하기 좋은 메뉴다. 그럼에도 겨울날 김밥은 땡기지 않는다. 겨울엔 김밥이 차가울 것 같다. 순대국밥은 요새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된 메뉴다. 분명 어느 시기에는 순대국밥이 너무너무 맛있었는데, 최근 먹었던 순대국밥 모두 내 기대를 충족해주지 못했다. 차라리 설렁탕이나 뼈해장국을 먹을걸- 하고 후회한 적이 여럿 있다. 그래도 뜨끈한 국물을 포기할 순 없다. 고민을 하다가, 버스 정류장 앞에서 항상 눈여겨보기만 했던 칼국수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석정칼국수에 대해서 검색했다. 그 곳을 포스팅한 블로그는 5개도 안되었다. 그래서 좋았다. 왠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블로그에 써놓은 음식점은 가기가 싫다. 내 유전자 속에는 ‘비주류’에 대한 이끌림이 있는 듯 하다. 나는 주류들이 아직 관심가져주지 않은 석정칼국수를 가기로 완전히 마음을 먹었다. 일반 칼국수를 먹을지, 들깨 칼국수를 먹을지에 대한 고민이 그 다음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최근에 해물과 함께 보글보글 끓여 먹는 칼국수를 먹어버렸고, 아무리 최선을 다한 칼국수래도 즉석에서 보글보글 끓인 칼국수를 이길 수는 없을 것 같아 들깨 칼국수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들깨 칼국수를 생각하며, 오지 않는 중앙선을 원망하듯 차디차고 굳센 바람을 꿋꿋이 이겨냈다.
식당은 조촐하고 깔끔하고 다정했다. 안에 있는 손님은 2명이었다. 모두 혼자 밥을 먹으러 온 사람들이었고, 나 이후에 온 사람도 혼자 밥을 먹으러 온 사람이었다. 사장님은 혼밥족의 존재를 예상하지 못하셨는지, 식당 안의 테이블은 죄다 4인석이었다. 나무 의자 위에 털썩 내려앉은 방석 위에는 사장님의 다정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들깨칼국수를 시키자 무생채와 겉절이가 나왔다. 참 맛있었다. 무생채는 새콤했고, 겉절이는 아주 조금은 익은 상태여서 더 맛이 돌았다. 칼국수집에서 김치가 맛있는 것이 당연해보일지라도, 꽤나 흔하지 않다.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옆에 앉은 손님이 코를 세게 풀었다. 한 번이면 괜찮았겠는데, 그 이후에도 코를 엄청 많이 풀었다. 어떤 콧물을 풀었을지, 얼만큼의 양이 나왔을지 알 정도로 코를 풀었다. 저절로 테이블에 눈이 갈 정도로 불쾌했다. 음식점에서 코를 개운하게 푸니까 음식 맛에 집중이 안갔다. 그 손님은 코 푼 휴지를 깨끗하게 버리고 집에 갔다. 그 손님이 가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반성했다. 사람들끼리 같이 사는 세상인데 이 정도로 징징대는 나도 웃긴 사람인 것이다. 더러운 상상을 얼른 뿌리치고 다시 무생채를 아작아작 먹었다.
들깨칼국수는 꾸덕하고 뜨거웠다. 맛있었다. 국물이 너무 눅진해서 국물만 먹어도 배부를 것 같았다. 일반 칼국수면보다 조금 얇고 부들대는 면발이 들깨랑 잘 어울렸다. 들깨 한 입 - 무생채 아작, 국수 후룩 - 겉절이 아작. 계속 이렇게 반복하니 추운 겨울이 무섭지 않았다. 칼국수를 몰입해서 먹다가, 대각선에 앉은 코가 빨갛고 행색이 깔끔하지 않은 70대 할아버지랑 계속 눈이 마주쳤다. 처음엔 내 위에 써져있는 메뉴판을 보는 줄 알았는데, 자꾸 눈이 마주치고, 눈이 마주쳤는데도 눈을 피하지 않으니 시간이 갈수록 공포감이 들기도 했다. 들깨칼국수는 맛있었는데, 무섭기도 했다. 무섭다가도 맛있었고…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지만 앞으로는 창 밖을 보는 자리에 혼자 앉아야겠다고 생각하며 후룩후룩 칼국수를 먹었다.
계산을 하려고 했는데, 사장님이 전화통화를 하셔서 좀 늦어졌다. 사장님은 “알겠어유~ 담에 연락할게유~”하면서 전화를 끊고 후다닥 계산을 하러 나오셨다. 나도 충청도 사람인지라 갑자기 그 말 한마디를 들으니 친근감이 훅 몰려왔다. 충청도 칼국수가 유명하다. 공주에는 칼국수 축제가 있을 정도고, 충청도에선 아무데나 칼국수 집을 들어가도 정말 평균 이상은 한다. 내가 서울에 와서 칼국수를 많이 안먹은 이유도, 충청도에서만큼 맛있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맛있게 먹은 칼국수집에서 충청도 사투리를 들으니, 나는 다시 한번 내 편견을 강화할 수 있었다. 역시 충청도가 칼국수를 잘해 - 하면서 말이다. 사장님은 충청도인이 아닐 수도 있지만…
배가 많이 불렀다. 탄수화물을 너무 많이 먹었나 싶은 마음에 조금 뜨끔했지만, 역시 속이 후끈 달아오르니 많이 춥지는 않았다. 소중한 사람들을 데리고 한 번 더 가고싶어졌다. 조그마한 부추전도 있던데, 나중에 그것도 먹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