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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꺼꿀이 Feb 11. 2023

대전 월평동 동천홍

가장 좋아하는, 그리고 바뀔 일 없는 1순위 맛집

어렸을 때 어디를 사느냐는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이다. 나는 대전에 살았고, 크는 동안 대전에서 맛보았던 수많은 음식들은 성인이 되어서 내가 음식을 평가하는 데에 있어서 기준점이 되었다. 서울에 살아도, 내 영혼의 어떤 조각은 계속 2000년대 대전에 머물고 있고, 그 시공간을 그리워 하고 있다.

월평동은 대전에서 꽤 큰 동네 중에 하나다. 학교와 아파트가 많아서 그만큼 상권이 발달한 동네이기도 하다. <동천홍>이라는 중국집도 굉장히 오래전부터 월평동에 자리잡은 곳이다. 엄마와 아빠가 날 언제 동천홍에 데려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초등학생부터 서울로 대학을 가기 직전까지 나는 꽤 빈번한 간격으로 동천홍에 갔다. 우리 집은 동천홍을 가면 꼭 탕수육을 시켰다. 동천홍에서 탕수육을 시키면, 무조건 소스가 부어져서 나온다. 소스가 부어져서 나왔음에도 탕수육은 바삭하고 맛있다. 진한 갈색을 띠는 탕수육을 하나 집어서 갖가지 야채와 함께 먹으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탕수육을 먹을 수 있다. 서울에서 꽤 유명하다는 탕수육을 몇 번 먹어봤다. 나는 그럴 때마다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나한텐 언제나 동천홍 탕수육이 으뜸이었고, 그건 아마 평생 가도 바뀔 일이 없을 것이다.

혹시나 내가 모의고사를 잘보거나, 우리 집안에 축하할 일이 생기거나 하면 엄마는 양장피도 시켜줬다. 말랑말랑한 흰 당면같은 것과 수많은 야채 더미, 코를 찌르다못해 쑤셔 파는 것 같은 겨자소스를 같이 먹으면 맛의 균형이란 것이 이거구나! 느낄 수 있다. 느끼한 고기와 신선한 야채와 시콤한 소스의 삼위일체. 양장피란 자고로 이래야 한다. 나는 다른 데선 양장피를 절대 안 먹는다. 이렇게 잘하지 못할 게 분명하니까. 탕수육과 양장피에 대한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이런 태도는 동천홍에 대한 나의 애정과 대전에 대한 나의 그리움, 서울을 너무 사랑해버리면 대전이 슬퍼할 것이라는 나만의 의리가 얽혀져서 만들어진 것이다.

요리를 실컷 먹었으니 이제는 식사를 할 시간이다. 동천홍은 운이 좋으면 반(1/2)탕을 시킬 수 있다. 짜장면이나 짬뽕을 동천홍에서 먹어본 일이 거의 없다. 여기의 주력 메뉴는 사천탕면이다. 특히 하얀 사천탕면을 시켜야 한다. 굴이 들어가서 시원하고 매콤하다. 해물을 사골내면 이런 맛이 날 것 같은, 사천탕면. 가끔 작고 빨간 고추를 씹으면 낭패다. 그럼 나는 그것들을 모아서 앞접시에 덜어낸다. 아빠와 함께 그 고추들을 골라내는 일도 은근히 재밌다. 배가 터질 것 같아도 이 국물과 굴과 면을 먹어줘야 집에 갈 기분이 든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직장을 잡으니 대전을 갈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어렵사리 대전에 갈 때마다 엄마는 항상 뭘 먹고 싶은지 리스트를 적어 보내라고 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동천홍을 얘기한다. 그러면 아빠는 퇴근할 즈음에 탕수육과 양장피를 포장해서 오신다. 은박지에 쌓인 음식들을 침흘리며 보면서 나는 사진을 찍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그것을 먹는다. 그러면 엄마는 느끼할까봐 집에 있는 김치를 꺼내주고, 콜라도 따준다. 나에게 동천홍은 그냥 중국집이 아니다. 이런 모든 것을 담아내는 콘텐츠인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이 곳을 절대 변하지 않을 1순위 중국집이라고 하는 이유다.

빨간 테이블보, 낯익은 직원분들, 낡고 오래된 식기, 카운터 앞에 자리한 누룽지 사탕까지 모든 것이 다 그대로다. 언젠간 변할 것이 분명하지만, 아주 느리고 조금만 변하기를. 자꾸 나이가 들어가니까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동천홍도 나도 왠지 변하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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