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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꺼꿀이 Jun 26. 2023

xx역 라이브카페

육포 + 깡그랑깡그랑 소리가 나는 병맥주들

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친구 세 명이 있다. (실제론 더 많지만 오늘은 셋에 대한 이야기, 다들 서운해하지마요)

그들을 부르기 쉽게 m, d, t 라고 칭하겠다.

우리 네 명은 같은 대학을 다녔고, 같은 직장에 잠시 있었고, 직장 동기가 되면서 엄청나게 친해진 그룹이다.


남 남 녀 녀 혼성친구로서 참 친해지기 어려웠지만, 그 난관을 뚫고 우린 서로에게 단짝 트로피를 내어주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이유들로 우리는 지속적으로 싸워댔고, 6개월에 한번씩은 서로 눈물콧물을 쏟으면서 염병을 떨었다.

지금은 생업으로 인해 물리적 거리가 갈기갈기 찢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나 서로를 그리워하며 카톡방에서 울부짖는 사이다.


그런 우리가 xx역에서 직장을 다닐 때 자주 갔던 라이브카페가 있었다.

사실 거기에서 라이브 공연을 열리지 않기에, 라이브카페라는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는 않지만 그 곳의 분위기는 라이브카페라는 업종이 더 어울리기에 그냥 그렇게 부르고 싶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문에 달아놓은 종소리가 띵그르르 울린다.

그럼 치와와를 닮은 안경쓴 사장님이 우리를 쳐다보시고는 환하게 웃어주신다.

초록-갈색-붉은색이 온데 섞여 마침내 우아해져버린 천소파에 자리를 잡고, 냉장고에서 병맥주들을 꺼내온다.

비틀즈라든지, 오아시스라든지, 엘라 피츠제럴드라든지, 유명한 롹밴드나 재즈가수들의 앨범 표지가 사방팔방에 덕지덕지 붙어있다.

가끔씩 오드리 헵번같은 클래식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고전 여배우들의 사진도 붙여져 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카운터에서 종이 한 장을 가져와서 신청곡들을 마구 써낸다.

신청곡을 제출하면 사장님은 우리의 곡들을 틀어주신다.

자, 이 분위기에 얼마의 가격을 매길 수 있겠는가?


간주가 나오면, 우리는 깔깔대면서 누구의 곡인지를 맞췄다.

남자 래퍼들이 드글드글 나오는 노래는 t

갑자기 edm 비트가 전개되는 노래는 m

느리고 엇박이 넘실대는 노래는 d


맘에 드는 노래는 몰래 각자의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해놓기도 하고, 너무 신이 나버리면 그냥 그 자리에 일어나서 춤을 추기도 했다.

넷이 있으면 세상에 대해 무서울 것이 없어진다.

나는 가끔은 혼자 있는 상황이 무섭고 긴장되면, 우리 넷이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럼 바로 무서운 게 없어진다.


수입맥주들을 깡깡 소리내면서 엄청나게 마셔대고, 육포들을 마요네즈에 찍어서 먹어대고, 누구 생일이 되면 양주를 미친듯이 먹어보기도 했다.

케이크도 먹어도 된다고 해주시고, 심지어는 생일축하노래까지 틀어주시는 치와와 사장님은 이 가게의 일부이면서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이 곳엔 우리의 기쁨과 흥분과 즐거움이 구석구석 묻어있다.


어쩌면 이런 곳은 맛과 상관없이 맛집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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