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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꺼꿀이 Feb 20. 2023

누구나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특히 이직할 때)

나의 좌절이 당신에게 위로가 되기를.

나는 사회적으로 당당한 캐릭터다. 공부도 잘했고, 대학도 잘갔고, 성격도 쾌활하다. 어쩌면 나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맞을 수 있겠으나, 실제로 그러한 것보다 더 나의 쾌활함과 자신감을 전시한다. 그런 사람인지 여부는 확인하기 어려워도 확실한 점 하나는, 나는 그렇게 보여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최근 나는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 모두가 나에게 비슷한 얘기를 한다. 너는 골라갈 수 있지, 널 데려가는 직장은 진짜 복받은거야, 네가 가고 싶은 직장을 가는 건 시간문제야. 고맙고 따뜻하고 힘이 되는 말들. 하지만 자본주의와 능력주의 사회는 많은 사람에게(꽤 고위급 관료들 자제는 편하게 사는 것 같기도 ?!) 보편적이고 공평한 시련을 준다. 나에게도 이직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부끄럽지만 나도 어쩌면 나를 비행기 태워줬던 사람들 못지않게 내가 무난히 이직을 할 줄 알았나보다. 이직, 진짜 지옥같다.


내가 열심히 살았다는 건 모두들 다 알고 있어서, 불합격했다고 말하면 남들이 얼마나 짠해할지를 아니까 이렇게 열심히 지원하고 다닌다고도 말을 못한다. 부모님한테는 더더욱 말을 못한다. 엄마는 나의 사소한 시련을 나보다도 더 못 견딘다. 내가 실패할까봐 겁이 나시는 것 같다. 성장 과정에서 너무 실패를 안해줬나 싶을만큼, 나의 유사 실패에 옴싹달싹을 못하는 우리 엄마 덕분에 나는 좋은 일만 부모님에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이직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부모님에게 들킬까봐 겁이 난다. 유일하게 연인에게만 내 모든 이직 과정을 얘기한다. 무너지고 다시 서고, 굳어지고 이런 모든 과정들을. 다른 말이지만, 이런 어려움을 연인에게만 공유하게 될 때, 내 중심 가족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엄마와 아빠에게는 자랑스러운 딸로서만 살게 되겠지. 씁쓸하면서도 충분히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솔직히 지원한 곳에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결국 생각은 생각을 낳아 파멸에 이른다. 이러다 이직 실패하겠다 -> 월세도 못내게 되겠지 -> 아르바이트하면서 먹고 살아야겠다 -> 아르바이트할거면 등록금 낼 바에 여행이나 다닐걸 -> 엄마아빠가 알게되면 어떻게 될까 -> 나 진짜 이러다 쪽팔리게 친구들도 아무도 못보는 거 아니야? -> 아 진짜 x됐다.

참 나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 유약하고 싶지 않은데,,, 생각은 안좋은 쪽으로 꼬물꼬물 옮겨간다. 남들 앞에선 티도 못내고 아마 엄청나게 쎈 척을 할 것이다. 그게 진짜 최악이다.


이젠 사회를 증오할 차례다. 망할 기성세대. 망할 대한민국. 망할 초경쟁사회. 면접관들도 짜증나 죽겠다. 그 분들도 그저 그들의 업장 분위기에 맞는 사람을 뽑으려고 최선을 다했을 뿐이겠지만, 제가 뭐 어때서요. 이기면 내 편, 지면 남의 편이다. 지금 사회는 내 편이 아니고 적이고 그냥 폭삭 주저앉아버렸으면 좋겠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엄청 속상한 나날들이다. 누구에게도 걱정시키지 않고, 척척 잘해내는 굳센 사람이고 싶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쪽팔리고 우울하다. 쪽팔려 죽겠다는 마음이 온 몸을 지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굳이 무거운 손가락을 이끌고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분명 어느 시공간에 누군가가 나와 똑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을까봐서다. 무너져 내려가고 있는 당신이 이 글을 어쩌다가 보게 된다면, 나의 무너짐이 운이 좋게 당신의 무너짐과 같다면, 조금이라도 위로받기를 원해서 이렇게 글을 쓴다.


인생이 잘 풀린 그 날, 웃으면서 이 글을 다시 보자고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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